온갖 파편들이 쏟아져 내린다. 텔레비전, 전화기, 침대, 소파, 시계, 인형, 신발, 책… 당연하지만 소중한 일상이 부서지고 또 다시 부서지며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가라 앉는다.
깨지듯 시끄러운 소리가 요동칠 만도 한데, 희한하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부서지고 흩어지며 사라지는 모습이 고요하기만 하다. 마치 우주의 공간처럼.
‘심리적 사유의 공간’을 그리는 작가 김유성(35)의 신작 ‘부서져버린 시간’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작업노트에 스케치해 둔 것을 바탕으로 그렸다.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과 파괴에 대해, 동시대를 겪으며 간직하게 된 낱낱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 하고있다.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는 그의 작업은 마치 잔혹 동화 같다. 언뜻 보면 예쁜 삽화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몽환적이고 오싹한 기운마저 돈다. 머릿속엔 ‘이상한나라의 앨리스’나 장화홍련전’ 같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저에게 그림은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아요. 그림을 통해 어제까지 알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중이죠. 상상의 공간 조차 무의식 속에서 경험한 실재 공간이라고 믿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오가는 묘한 순간을 포착해 작업하는 그는 관계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뉴시스] 이언주 문화칼럼니스트 | 201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