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연 200만명 외국인 관광객…비결요? 재밌고 신나니까"
열 평 남짓한 사무실 벽면을 둘러싼 나무 책장. 선반마다 잡동사니들이 놓여있다. 북유럽 전통의상을 입은 소년소녀 인형, 일본어가 쓰인 표지로 싸여있는 딱딱해진 쌀빵, 거친 갈색의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까지. 한편에는 손톱보다 작은, 유약을 발라 물기가 만져질 것처럼 촉촉해 보이는 도자기 개구리 3마리도 쪼르르 올려져 있다.
“물건 버리는 걸 잘못해요. 여기 있는 물건중에는 세계 민속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우리 박물관을 찾아오면서 선물로 주고 간 것도 있고, 내가 가져다 놓은 물건도 있고. 아, 이건 미국에 있는 청바지 박물관에서 가져온 건데….”
“뭐가 이렇게 많아요?” 말을 잘못 꺼냈다. 천진기(54)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인터뷰를 시작도 하기 전에 30분 넘게 물건을 소개하느라 바쁘다. 오래된 만물 잡화상 주인처럼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들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는 자신을 “안동 촌놈”이라 말한다. 어렵고 학술적인 것에서 재미를 못 느낀다. 박물관이 좀 더 재미있고, 신 나고, 심지어 맛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걸까. 국립민속박물관은 1년에 약 300만 명이 찾는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외국인이다.
민속자료를 연구·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생활사 박물관인 국립민속박물관. 1945년 한국 민속학의 선구자인 송석하의 수장품을 기증받아 개관한 국립 민족 박물관이 그 시초이나 6·25 전쟁으로 폐관된 후 1966년 경복궁 수정전에 소규모로 다시 지어졌다. 1975년 경복궁 내 현대미술관이 이전하면서 그 곳으로 이전했다가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던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물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이곳에서 28년째 근무 중이다. 그의 말처럼 “관장이 된 5년은 그중 짧은 기간”일 뿐이다.
- 국립민속박물관에 오면 음식도 먹고, 점도 봅니다. 전시가 색다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이 1년 동안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하며 생활하는지를 알려주는 박물관이잖아요? 멋진 유물을 떡 하니 갖다놓고 설명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
우리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나면 우리의 삶이 보여요. 한국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꾸미죠. 박물관에 왔는데 공연도 보고, 재미있는 놀이 체험도 하면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게 되니 말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경쟁 상대는 다른 박물관이 아니고,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테마파크여야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2014년 방문객 수는 327만 명이었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221만 명으로, 전체의 67.5%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국립중앙박물관 방문객 수는 354만 명. 외국인은 14만 명 정도로, 전체의 4% 수준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예산, 인력, 규모(건물) 등 모든 측면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8분의 1 수준이다. 이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대담=신혜선 문화부장, 정리=김유진 기자, 사진=이동훈 기자 | 201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