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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WHEN THE INVISIBLE BECOMES VISIBLE

2016.04.04

[로피시엘 옴므] 이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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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판단, 합리성, 기원, 규범…. 우리 삶에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조각가이자 설치 미술가인 김병호는 그 보이지 않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시각적 혹은 청각적으로 변환시킨다. 그의 작품 앞에 서서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는가는 당신의 몫이다.

김병호 작가의 작품 정원’은 가짜 정원이다. 그의 정원은 우리 삶에 존재하는 비자연적인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조용한 증식’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조용한 증식’ 의 형태는 꽃의 암술과 수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생각과 판단이 모이고 사회에 퍼지면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 꽃의 조용하면서도 강한 증식 작용과 닮아 보였다.”





L’officiel Hommes(이하 LH) 대규모 작업을 많이 하는 아티스트의 작업실치고는 규모가 작다.

김병호 조니워커 하우스 서울에 설치된 ‘프로그레션 오브 사일런스(Progression of Silence)’나 IFC몰 야외 잔디 광장에 있는 ‘조용한 증식(Silent Propagation)’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품을 수 있는 의구심이다. 위스키 제조과정을 표현한 ‘프로그레션 오브 사일런스’만 해도 전체 길이가 25m나 되니 말이다. 의뢰를 받아 만드는 작품 외에,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대개 2~3m이니 작업실에서 만들기에 충분한 크기다. 하지만 작업실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작업실에서는 주로 작품 드로잉이나 설계를 하고 미니어처를 만든다. 때로는 작업실이 넓다는 생각까지 든다.




LH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작품을 완성하는가?

김병호 대부분의 경우 공장이다. 그런데 작품이 완성되는 장소보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작품의 시작은 나의 드로잉과 설계다. 이후에는 그 제작을 가장 잘해내는 엔지니어에게 맡긴다. 그 밖에도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등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일종의 ‘프로세싱 아트’다. 나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사회 현상 등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도 현대 사회의 특징인 산업화, 분업화의 시스템을 적용한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LH 작품 제작 과정에도 자신의 예술관을 적용한다니 흥미롭다. 그렇다면 당신의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는 무엇인가?

김병호 나는 무엇을 보고 묘사하거나 아름다운 것을 재현하기보다는 보이지 않거나 들을 수 없는 것을 작품에 표현한다. 예를 들어, 사운드를 주제로 한 작품이 꽤 있다. 탑에도 관심이 많다. 2013년 완성한 ‘조작(The Manipulation)’은 탑의 모습을 띤다. 탑은 사람들이 안녕과 기원을 소망하는 마음 등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탑을 만드는 데는 사람의 기원은 물론 계획적으로 잘 맞춰진 구조 안에서 쌓는 행위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물리적인 행위 자체 또한 기원이지 않을까. 이러한 탑은 내게 조작 아닌 조작으로 다가왔다. 그런 이유로 작품의 제목을 ‘조작’으로 결정했다. 올해 봄이나 가을 전남 순천시 송광사에 높이 3.6m의 ‘송광사 3층 금속탑’이라는 작품을 1년 동안 전시할 예정이다.

1 김병호 작가는 조니워커로 유명한 영국 디아지오 본사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았다. 조니워커 하우스 서울에는

위스키 제조 과정을 표현한 25m 길이의 대작 ‘프로그레션 오브 사일런스’가 있다.





LH 당신이 꼽는 자신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또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김병호 ‘조작’과 ‘송광사 3층 금속탑’ 등 탑을 형상화한 작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용한 증식’. ‘조용한 증식’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하느냐는 폭탄이 터지는 것보다 더욱 무서울 수도 있다. 생각과 판단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꾸는 패러다임이 되기 때문이다. ‘조용한 증식’의 형태는 꽃의 암술과 수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생각과 판단이 모이고 사회에 퍼지면서 인간의 삶에 영 향을 끼치는 모습이 꽃의 조용하면서도 강한 증식 작용과 닮아 보였다. 이 작품에는 기계음을 내는 회로가 삽입되어 있어 가까이 다가온 사람들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를 낸다. 7톤이 넘는 육중한 구조물과 들릴 듯 말듯한 작은 소리의 대비는 내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잘 이해시켜준다. 대형 조각 작업의 초기작이어서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가 처음 조각을 시작할 때 그려두었던 아주 오래된 드로잉이 현실화된 것이다. 당시 간단하게 연필로 그린 스케치였지만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했었다.




LH 어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가?

김병호 삶의 모든 것. 지금 인터뷰하는 상황도, 작업실 통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도 영감을 줄 수 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귀 기울이며, 특히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다. 두바이처럼 올드 타운이 잘 조성된 현대적인 도시를 여행할 때 영감의 강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옛날 모습과 미래 지향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정통을 고수하는 사람과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 함께 사는 등 도시의 강렬한 대비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2,7 김병호 작가의 작업실. 봄이면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LH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의 대비, 공존 등에 대해 들으니 당신의 작품 ‘정원(Garden)’이 떠오른다.

김병호 ‘정원’은 가짜 정원이다. 도장 공장을 찾아가 그곳에서 가장 많이 쓰는 색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중 열 가지 색을 골랐다. 그러곤 30cm 길이의 알루미늄 봉 216개 각각에 열 가지 색 중 하나를 칠했다. 알루미늄 봉을 무작위로 선택하고 서로 조립해가며 길이 7.5m, 높이 3m 의 ‘정원’을 만들었다. 관람객은 이 가짜 정원의 봉들 사 이를 넘나들며 산책하듯 감상하면 된다. 우리 삶의 패턴 자체에 비자연적인 것이 많은데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LH 당신의 많은 작품은 금속으로 만들었다. 소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김병호 2005년부터 알루미늄, 구리, 철, 황동 등 금속 재료를 작품에 사용했다. 어린 시절부터 0.5mm보다 0.3mm의 샤프펜슬을 선호해온 내 정교한 성격에 금속이 잘 맞기 때문이다. 엔지니어가 0.01mm까지 체크하면서 엔지니어링해야 하는 금속을 작업 소재로 선호한다. 현대인은 합리성을 추구하며 모든 것을 단위로 구분하고, 구획하려고 한다. 이를 조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나는 모듈과 유닛이라는 단위를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이때 관습과 규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시스템을 작품에 논리적으로 투영하고, 나의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금속을 이성적이고 기하학적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3,4 맥캘란은 2014년과 2015년에 김병호 작가와 손잡고 아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작품을 선보였다. 위스키를 보관하고 마실 때 활용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LH 앞으로의 전시 계획이 궁금하다.

김병호 2월 23일부터 5월 29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DNA’전에 ‘정원’과 ‘소프트 크래쉬(Soft Crash)’를 출품한다. 앞에서 언급한 송광사 탑 프로젝트도 곧 시작된다. 2017년 봄에는 아라리오 갤러리 상하이에서 개인

전을 열 예정이다.




LH 많은 사람이 포스코건설, 흥국생명, 농심과 같은 기업의 본사나 IFC몰 야외 잔디 광장 등 생각지 못했던 공간에서 당신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작가의 품을 떠나 사람들 앞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면 어떤 생각

이 드는가?

김병호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현실 공간에 작품이 놓인다는 것은 작가로서 영광스러운 일이다. 내가 만든 그 작품들은 그러한 공간에서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과연 무엇이 예술인가?’, ‘당신의 작품이 이 공간에 있는 게 적당한가?’, ‘이 작품은 역사와 대중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 말이다.

5 기하학적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 ‘조작’. 6 2011년 작품 ‘소프트 크래쉬’.





LH 마지막 질문이다. 오늘 무엇을 하는가? 내일 무엇을 할 예정인가? 그리고 10년 후 오늘은 무엇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김병호 오늘 저녁 작업실에서 사적인 모임이 있다. 공대를 졸업한 지인들이 방문한다. 나는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나를 포함해 오늘 모이는 모든 사람이 공대 출신이다. 그들과 가상현실(VR)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내일은 아침 7시에 출발해 당일치기로 부산 출장을 다녀오려고 한다. 부산 센텀시티에 새로 설치한 야외 조각 작품에 대한 설치 완료 심의에 참석하러 간다. 10년 후 오늘에도 작품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다.

Editor LEE EUNG KYUNG Photographed KIM MOON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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