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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동결된 순간이며 기억이다. 하지만 사진은 늘 현재의 순간을 담고 있다.” ‘사진가들의 사진가’로 불리는 필립 퍼키스(84)의 말이다. 필립 퍼키스의 멕시코 사진들이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서울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개막한 필립 퍼키스 특별전 ‘멕시코’다. 퍼키스가 20여년 전 찍었고, 공개된 적 없는 사진들이다.
[뉴시스] 조수정 | 2019.01.30
스케이트보드, 힙합, 스트리트 패션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는 작가 강지훈이 서울 충무로 반도카메라 갤러리에서 사진전 '어 플리팅 루야(A fleeting ruya)’를 개막했다. '루야’는 케냐어로 꿈을 의미한다. ‘순식간의 꿈’이 주제인 이번 전시는 케냐와 이집트가 배경이다.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인 아프리카에서 만난 순수한 친구들, 드넓은 초원의 동물들과 교감하며 자연의 위대함과 존재의 의미를 카메라에 담았다.
"제 작품을 민중미술이라고 규정짓기보다는 폭넓게 봐줬으면 합니다. 미술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이고 그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해 여러 경험과 관심사 이런 것들이 섞여 그림에 표현돼 있습니다." 민중미술 선구자로 꼽히는 민정기 작가(70)는 29일 자신을 어떤 작가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합한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추상, 설치, 미디어 등 현대미술의 거대의 물결 속에서도 40여년 간 현실을 반영한 풍경 유화를 고수해 온 민정기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했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예술 여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구작 21점과 신작 13점을 선보인다. 민정기는 1980년대초 스스로 '이발소 그림'이라 지칭하는 작품들로 국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국가가 지원하는 국전에 참여하는 대신 1980년부터 '현실과 발언' 동인 멤버로 활동하며 소위 고급예술이나 순수미술을 거부하고 전통과 모더니즘의 간극을 해소하는 작업을 해왔다. 즉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심미적 대상의 미술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처럼 소통을 위한 도구가 돼야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미술철학이다. 정선의 '청풍계'나 안견의 '몽유도원도' 같은 전통 동양화나 고지도를 차용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오늘날의 모습을 그린 그의 그림에는 '예전 것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그린다'는 그의 소통의 철학이 녹아있다.
[뉴스1] 여태경 | 2019.01.30
페인팅 작가 김수연의 개인전 '패러독스 오브 스페이스'가 2월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갤러리 이마주'에서 열린다. 김수연 작가는 시카고의 SAIC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 석사 과정을 수료한 뒤, 현대사회에 만연된 정서인 불안을 주제로 공간을 재해석해서 작업하는 페인팅 작가다. 2월 8일부터 20일까지 갤러리 이마주에서 진행되는 김수연 개인전인 'Paradox of Space'전을 통해, 작가는 공간이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공간 안에 내재된 불안을 보여준다. 공간이란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를 인식하는 기본 틀로써 인간의 활동이 행해지는 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간은 인간과 인간 활동의 존재방식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의 대면상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에만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의 멀고 가까움, 사회적 지위나 환경에 따라 변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마주하는 공간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과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며 그 기저에는 개인의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 세계도 연계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렇듯 같으면서도 다른 ‘인간적 공간’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공간의 의미를 의식에서 나아가 무의식의 세계까지 연계시켜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확장된 공간을 특별히 심리적 공간(Psychological Space)’으로 부르고자 한다. ‘심리적 공간’은 우리의 공간 인식 안에 내재하는 무의식의 근원을 표현하는 하나의 대상이다. 작가가 ‘심리적 공간’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흔히 느낄 수 있는 불안이라는 심리적 현상이자 개념이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작업의 핵심은 차단된 공간 배치 설정과 뚜렷한 명암 색깔들이다. 또한 이를 제3자 시점을 도입해 타인이 다른 타인의 공간을 멀리서 응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같으면서도 다른 인간적 공간이 갖는 패러독스를 표현하고자 한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에서 “우리가 불안을 마주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가오는 2월, 김수연 작가의 'Paradox of Space'전을 통해 관객들은 보편적 불안을 공감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을 고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뉴스1] 김형택 | 2019.01.29
래퍼 제이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부터 그룹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청하의 '벌써 12시’까지. 2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로비. 클럽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울려퍼지며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 One·56)이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주제로 그려낸 즉석 작품이 완성됐다. 경찰 근무복을 입고 등장한 존 원은 음악소리와 함께 근무복을 벗어 던지고 스포츠 브랜드 상의로 옷을 갈아 입었다. 이내 손에 붓을 쥔 그는 로비에 마련된 거대한 흰색 캔버스에 거침없는 붓질로 색색의 물감을 튀기며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 갔다. 이번 행사는 원경환 서울경찰청장의 '인권 경찰'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원 청장은 지난달 초 취임할 때부터 시민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뉴시스] 조인우 | 2019.01.29
오는 29일은 '미디어 아트 개척자' 백남준(1932~2006) 서거 13주기다.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예술의 매체로 사용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이자 다자간 소통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계와 공존하는 사이버네틱화 된 사회를 예견했던 백남준은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 꼽히고 있다.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서진석)는 백남준(1932~2006)의 13주기를 맞아 오는 29일 오후 12시 30분 서울 봉은사 법왕루에서 '故 백남준의 추모 13주기 추모재 및 문화공연'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봉은사 법왕루에는 2006년 백남준 타계 이후 2007년 2월부터 그의 유골함이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13주기 추모재와 함께 백남준의 정신세계가 온전히 담겨, 백남준의 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길잡이가 되는 책 2권을 발간했다. 기계, 테크닉, 전략, 사람이 오가면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형성해 냈던 과정을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를 8년만에 재발간하는 한편, 백남준과 그의 오랜 친우이자 기술적 동료인 슈야 아베와의 서신 97통을 수록한 '백-아베 서신집'을 출간했다. 재발간한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는 국내 유일한 '백남준의 책'이다. 백남준 연구자 에디트 데커(Edith Decker),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가 미국, 유럽, 한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백남준의 글들을 모아서 공동으로 편집한 앤솔로지 북(원저 『PAIK : Du Cheval A Christo et Autres Ecrits』, 1993)의 한글 번역본이다. 백남준의 미발표 원고, 악보, 에세이, 편지, 인터뷰, 시나리오 등 78편의 글이 담긴 이 책은 2010년 12월 초판이 발간된 이래 국내의 백남준 연구자와 일반 대중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초판에 원문으로만 실렸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시나리오(팩스자료)를 비롯하여 「바이바이 키플링」, 「록음악에 스포츠」, 「비디오 테이프 월간지」 등 5편의 글을 번역해 게재하고 본문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던 「아사테라이트- 모레의 빛을 위하여」의 원문(일문)을 찾아 전문을 교체, 번역했다.
[뉴시스] 박현주 | 2019.01.28
'미술관 부심' 2인자라면 서러울 남자가 있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62) 유니온 약품 회장이다. 조선 말기 왕족 정치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을 품고 있는 미술관이다. 2012년 8월, 4만9500㎡(1만5000평) 지상 3층 지하 3층 규모로 개관했다. 원래는 유니온 약품 사옥 부지를 지으려 했지만 문화재인 석파정 때문에 미술관을 짓게 됐다. 개관 전시에 이중섭 유화 '황소'(1953)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팔렸던 그림으로 안 회장이 국내 'VVIP 컬렉터'라는 사실이 공개되어 주목받았다. 이 때문에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림 산 게 죄가 아닌데' 가슴앓이를 했다. '비싼 황소가 있는 미술관'이지만 '석파정 미술관'으로 더 유명하다. 겸재 인왕산 그림속으로 들어온 듯한 석파정은 보는 그대로 사진작품이 된다. 빼어난 풍광이 압권으로 미술관 관람객이 꼭 찾는 공간이다. 그래서 건물 주변도 신경쓴다. 수백 년 나이를 자랑하는 모과나무, 회화나무, 산수유 등은 안동, 영주, 구례 등에서 공수했다. 사랑채, 별채, 안채 등 건물 4채로 구성된 석파정 한옥엔 안 회장 부부가 산다. 폐가로 변해가던 150년된 고택을 65억원에 인수해 2년간 20억원을 들여 보수 공사를 했다. "문화재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크다. 최근 석파정 아래에 또 하나의 미술관을 지어 개관했다. 총면적 990㎡(300평)에 지상 3층 규모로, 통유리창인 2층 전시장은 석파정이 그림처럼 담긴다. 신관은 청년 작가들에게 기회를 더 제공할 예정이다. 전시장도 벽을 툭 터서 작가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게 설계했다. 큐레이팅 욕심도 냈다. "미술관을 유한 마담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감성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초심을 살렸다. 신관 개관전은 안 회장이 직접 기획했다. 김환기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김창열 서세옥 곽인식의 대형 작품을 건 '거인' 전시는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진다. 경매사에서 극진히 대접할 만한 고퀄리티 작품들이다. 당장 팔아도 수억, 수십억은 받을만한 작품값도 튕겨진다. 특히 김환기의 푸른 점화 '십만 개의 점 04-VI-73 #316'이 미술관 설립이래 첫 공개돼 눈길을 끈다. 김환기 작품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한국 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명작이다. 층고 5m로 200호 대작들이 여유롭게 걸렸다. 국내 최고 화가들의 대형 회화는 그림 보는 맛을 제대로 전한다. 달항아리(이천도예명장 권영배)도 함께 어우러져 우리 전통도자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모두 안 회장이 구입한 소장품이다. 미술품 경매시장은 2000억대로 판이 커졌지만 국내 컬렉터들은 베일에 싸여있다. 기업의 비자금 조성 등 돈세탁 이미지 때문이다. 이런면에서 안 회장의 비싼 소장품 공개는 이례적이다. 툭 까놓고 '나 이런 작품 있다'고 하는 자랑이다. 색안경을 끼게 할 빌미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대놓고 작품 공개는 '팔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미술관 운영은 '행복 끝 고통 시작'이다. 소장품 전시와 입장료만으로 유지하기 힘들다. 미술관 개관 후 2~3년도 채 못가서 카페나 음식점으로 변하는 이유다. 서울미술관도 개관 후 3년간 34억원 적자가 났다. 미술관 등록도 안해 정부 지원금도 받지 못한다. 소장품은 500여점이 넘어 미술관 등록 요건은 충분하지만 '자력 갱생'하겠다는 의지가 크다. 미술관으로 등록이 되면 전기세 감면이난 세제혜택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원금에 의존하다보면 자립도가 떨어지고, 요건에 맞춰야 할 간섭으로 정부나 지자체 눈치를 보게 된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큰 손 컬렉터'가 미술관 설립 등, 사회적 공공역할에 적극적으로 기여 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석파정은 권력과 권세의 상징이었다. 갑과 을의 비굴함이 뒹구는 정치와 이념의 공간이었다. 그런 땅을 문화공간으로 바꾼건 30년간 컬렉터로서 누린 기쁨을 나누고픈 마음에서다. '미술품은 공공재'라는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그림의 힘을 안다. 강렬한 경험 덕분이다. 1983년 26살 제약회사 골찌 영업사원 시절, 비를 피해 들어간 액자가게 처마 밑에서 이중섭 '황소' 그림을 보면서다. 뼈만 앙상하게 남았는데도 앞으로 세차게 전진하려는 '황소'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주머니에 있던 7000원을 털어 사진으로 인화된 '황소'를 사면서 이런 꿈을 꿨다. "내가 돈을 벌면 이런 그림 한 점 샀으면 좋겠다." 1988년 의약유통업체 유니온약품을 설립, 연간 매출 5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7년 후인 2010년 52세때 '진짜 그림' 황소를 낙찰받았고, 미술관 건립도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림은 사람들을 부른다. 1년에 2회 다양한 기획전으로 주목받았다. 개관 7년, 연간 15만명이 관람하는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뉴시스] 박현주 | 2019.01.23
청와대 영빈관 복도에 걸린 김구 선생의 쌀 초상으로 크게 주목받은 이동재 작가가 개인전 '짓고 쓰고 그리다'를 개최한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성북동에 기거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을 크리스탈 초상으로 되살려냈다. 초상작업의 주인공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 일제강점기 '님의 침묵'으로 저항 문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한용운, 우리의 문화재를 일제로부터 지켜낸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승무'로 대표되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남긴 근대 단편소설가 이태준 등이다. 이 작가는 쌀, 콩, 녹두 등과 같은 곡식이나 레진으로 제작한 작은 알파벳을 한 땀 한 땀 붙여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2년 전 성북동으로 이사한 작가는 성북동 골목에 흔적을 남긴 수많은 문인과 예인들의 삶에 귀 기울이게 됐고 그들의 삶을 한 장씩 넘겨보며 찬찬히 짓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이번 전시의 계기가 됐다 성북동에는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집을 찻집으로 꾸민 수연산방, 소나무가 펼쳐진 간송미술관 등 예술가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60화랑 김정민 실장은 "지역과 문화인들을 재조명하며 장소특정적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를 통해 성북동이 예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문화가 깃든 장소임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크리스탈 초상 등 10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6월까지 이어진다. haru@
[뉴스1] 여태경 | 2019.01.22
"내 작품의 큰 주제는 치유의 공간입니다. 치유의 공간에서 삶의 치유자 곧 '낯선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한국 추상조각 1세대인 엄태정 서울대 명예교수(81)는 60년 걸어온 조각 인생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엄태정은 평생 금속의 물(物)성을 탐구하면서 '조각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며 수행하듯 작업을 해온 작가다. 개인전이 대대적으로 열리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21일 만난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조각을 하는 사람은 조각을 하지 않아야 제대로 조각을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물질 찬양주의자'라고 말하는 엄태정은 "손재간만 부리는 조각은 예술이 아니다"며 "물질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함부로 다루지 않고 과도한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가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를 예로 들었다. 엄태정은 최근까지도 브랑쿠시가 자신의 작업의 시작점이자 지향점이라고 말할 정도도 그의 작품 곳곳에는 브랑쿠시의 대표작 '무한주' 등이 등장한다.
이 조각은 요즘 유행어인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완벽한 미학이다.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엄태정(81)의 작품은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게 만든다.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는 조각가로 50년째, 금속의 물질에 헌신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철과 동을 사용한 금속 조각으로 한국 추상 조각 1세대로 입지를 굳혔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 대한 경외감은 '일체의 조각적 수사'를 빼게 했다. '현대조각의 아버지' 콘스탄틴 브랑쿠시에 영향 받았다. '형이하(形而下)의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 화려하거나 시각적으로 매료될 만한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은 브랑쿠시처럼 고유한 물성을 파고들면서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성찰해왔다. “나는 쇠의 물성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 집안이 쇠를 다루는 일을 했고 어려서부터 철사를 갖고 놀았다. 내가 쇠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건방진 생각이었다. 돌아보니 쇠가 나를 불렀다. 쇠는 언제나 내게 극복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초반 철의 물질성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도 금속 조각을 고수하며 재료와 물질을 탐구해오고 있다. 1967년 그의 대표적 철 조각 '절규'로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70년대 재료 내외부의 상반된 색과 질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구리 조각들을 발표했다. 1980-90년대에는 '천지인' 연작과 같이 수직 구조가 강화된 구리 조각들의 추상적 형태 안에 하늘과 땅과 인간과 같은 동양 사상을, 1990년대 '청동-기-시대' 연작에는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나 대들보 등의 형상들을 반영했다. 2000년대부터 작가는 알루미늄 판과 철 프레임을 주재료로 조형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수직과 수평, 면과 선의 조형성과 은빛과 검정의 색채 조화를 통해 음과 양, 시간과 공간 등 서로 다른 요소들 간의 공존과 어울림을 이야기했다.
[뉴시스] 박현주 | 201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