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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천경자 화백-화랑협 갈등 낳은 '두 장의 그림'

2016.06.08

[머니투데이]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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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천경자 화백의 '여인상'(장미와 여인, 왼쪽)과 진위 논란을 겪는 '미인도'. 고 천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는 "두 그림(장미와 여인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을 정밀히 분석해 보면 그 윤곽의 일치성이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 그림(장미와 여인)을 떠올린 것이 당연하다"고 회고했다.

고 천화백 차녀 김정희 교수 "미인도, '장미와 여인'과 일치성이 놀라워 어머니가 떠올릴 수밖에"

고(故) 천경자 화백(1924~2015년)의 진작인지를 두고 논란을 겪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는 그와 화랑 관계자 간 25년째 갈등을 증폭시킨 그림이다.

고 천 화백은 1991년 본인 작품으로 소개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를 위작으로 규정했다. 위작의 모델은 고 김창실(1935~2011년) 전 화랑협회장(전 선화랑 대표) 소장품인 ‘여인상’(1981년작, 27 x 22cm)이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한국화랑협회는 감정위원회 감정을 통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8일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에게 제출한 '천경자 작(作) 미인도 위작 시비 관련 경과보고' 문서에 따르면 천 화백은 1991년 4월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에 대해 "선화랑 소장 작품 가운데 하나인 '여인상'의 위작”으로 판단했다. 천 화백과 막역한 관계였던 김 전 대표 화랑의 소장품이 위작 제작에 악용됐다고 의심한 것.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감정을 의뢰받은 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1991년 4월 11일 미인도에 대한 진작 판정을 내렸다.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천 화백 차녀)는 7일 기자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말한 위작 제작에 사용된 여인상에 대해 "선화랑이 소장했던 1981년 작 ‘장미와 여인’”이라고 말했다. 장미와 여인은 천 화백이 김 교수를 모델로 그린 한 소묘작품을 기반으로 제작된 채색화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두 그림(장미와 여인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을 정밀히 분석해 보면 그 윤곽의 일치성이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 그림(장미와 여인)을 떠올린 것이 당연하다"고 회고했다.

화랑협회장이자 미인도 감정위원장을 맡은 김 전 대표는 1991년 4월 11일 당시 기자회견에서 “화랑협회 감정위원 7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미인도는 진작으로 판정됐다. 감정위원 가운데 어떤 분도 (진위가) ‘애매하다’는 분이 없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선화랑 관계자는 ‘장미의 여인’ 소장 여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당시 천 화백 딸을 모델로 그린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으나 이후 처분된 것으로 안다”며 “일부에서 제기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외압설 등 김 전 대표와 관련한 의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대표는 강직한 성품이셨고 명예를 굉장히 소중히 여긴 분이셨다"며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한 의혹(회유 또는 외압에 따른 졸속감정)은 그분의 성정을 감안할 때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답했다. 그는 "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화랑 주인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 교수, 평론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김 전 대표는 압력에 굴하는 등 연유로 타인에게 지시하거나 할 입장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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