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Trouble'미인도 법정' 서게 된 평론가…미술비평 설 자리는?

2016.12.21

[뉴스1] 김아미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검찰이 공개한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 News1

검찰, 국현 '혐의없음'…평론가는 불구속 기소.
'미인도' 사건으로 본 국내 미술평론계 현주소.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와 관련 소송에서 유일하게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 있다. 바로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자 미술평론가인 정준모 씨(59)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감정 위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국내 미술계에서 진위 문제를 비롯한 미술평론에 있어서 가장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는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 19일 검찰은 미인도에 '진품' 결론을 내리고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씨로부터 피고소·고발된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5명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지만, 정 씨는 '사자명예훼손'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1월 경 정 전 학예실장이 언론 기고문 등에 '이 사건은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KIST의 과학감정결과 진품으로 확정되고, 법원에서도 판단불가 판정을 내렸다'는 등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인 천경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불구속 기소 이유를 밝혔다.

정 씨는 이같은 사실에 "담담하다"면서도 동시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검찰을 통해 진위문제가 일단락됐으니 잘 된 것 아니냐"면서도 "미인도 논란에 가려져 천 화백의 미술사적 업적이 조명되지 않는 점이 안타까워 기고를 하고 논평을 한 것이 곡해된 것 같다"는 것이다.

25년 째 진위 논란을 반복하다 결국 사법영역까지 넘어가게 된 미인도, 검찰에서 진품 결론을 내렸음에도 유일하게 재판에 넘겨진 평론가,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천경자 미인도 사건'을 계기로 국내 주요 평론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아울러 한국의 미술 평론계 현실에 대해서도 함께 짚어봤다.

◇재판에 넘겨진 평론가 "비평가로서 할 말 한 것"

먼저 미인도와 관련, 재판에 넘겨지게 된 당사자인 정준모 평론가는 "무엇보다도 미인도 진위 논란이 계속돼 온 지난 25년 간 왜 비평가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그동안 미인도 관련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이에 대해 글로 견해를 피력한 미술계 인사는 자신이 유일했다는 것이다. "정기간행물에 실린 내 글이 천경자 관련 첫 비평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첫째, 평론가들이 미인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 국내 화단에 비평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작가 등) 일부 미술인들은 비평을 인신공격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실 비평을 한다는 건 그 작가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걸 의미하고, 미술비평 자체가 객관적 사실보다는 필자의 견해와 감정, 생각이 반영된 주관적인 글인데 이러한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 씨는 검찰의 기소 이유에 대해서는 "나는 비평가로서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글의 한 두 문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지만 그 내용은 이미 미술계에서 수십여년 전부터 회자되던 말을 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글을 쓴 이유에서도 밝혔듯 평소에도 천 화백의 화업이 진위 문제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지난 이야기들을 일단락 짓고 천 화백의 예술적 성과를 논의해보자는 뜻이었지 결코 사자의 명예를 훼손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평론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

많은 평론가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윤진섭 평론가는 "검찰에서는 진품이라고 했지만, 유족 측이 반발하고 있으니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면서 다만 "논쟁이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또 "천경자 선생(업적)에 대해 해야할 일이 많은데 모든 게 스톱된 상태로 안 좋은 이미지만 쌓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술 평론가들이 소신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현실인가"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인 답변을 했다. 그는 "평론가라는 직업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생계가 안 될 정도"라며 "원고료가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다, 기관에서 주최하는 전문가 회의에 자문으로 참여해도 자동차 기름값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또 "작가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평론가들도 미술계를 이루는 주체인데, 정부 지원이 작가에게만 치중돼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날선 평론을 하게 되면 소위 작가나 갤러리에 '미운털'이 박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평론가들도 지쳐 제 목소리를 못 낼 수 밖에 없다"며 "비평이 죽었다고들 하지만 속모르는 소리"라고 털어놨다.

윤범모 평론가(가천대 교수)는 "미술품 진위 문제를 사법 영역으로 끌고 간 것이나, 해외 감정단에 맡긴 것 자체가 불행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천 화백은 일본에서 수학한 화가이고 일본 물감을 사용했다"며 "객관성을 위해서라면 프랑스가 아닌 일본 채색화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겼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전통 채색화를 이해 못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감정을 맡긴 것과, 감정의 비용을 소송의 이해 당사자인 고소인 측에서 냈다는 것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윤 평론가는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소신을 피력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이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면 앞으로 어떤 평론가가 전문가적 소신을 밝힐 수 있겠느냐"며 "토론이나 비평 문화가 정착이 안 된 상태에서 재갈 물리듯 법정사건으로 비화하는 건 미술 발전의 저해 요인이자 문화 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진위감식은 평론 영역 아냐"…"비평 문화 정착 시급"

미술품 진위 문제는 평론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김복영 평론가(전 홍대 교수)는 "평론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만 평론가라고 치외법권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진위 문제는 사실(Fact)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평론가가 개입하면 안 된다"면서도 "다만 평론의 범위가 넓어서 진위 여부와 같은 사실 판단에도 관여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사실 판단과는 다른 '가치 판단'에 있어서 평론가의 진정성의 문제도 고려돼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임우근준 평론가는 "미술품 진위 감식은 과학의 영역이지 평론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안목 감식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최종 판단에서는 보조적 역할일 뿐"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소신있는 미술평론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인간 신념의 문제"라고 답했다. "젊은 비평가, 연구자들이 특정 인맥의 눈치를 보며 곡필하는 것은 풍토의 문제가 아닌 윤리적 자의식 결여의 문제"라면서 "구조만 탓하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인도 사건을 계기로 국내 미술 평론계의 고질적 문제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경한 평론가는 "미술시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담론을 생성하는 창구 중 하나인 미술비평이 '홍위병'으로 전락했거나 아트 비즈니스의 부역자로 역할이 변색됐다"며 "담론생성, 어젠다 창출, 미래지향적 이슈를 제공하고, 그에 걸맞은 시대적, 학술적 고민을 하던 풍토는 한없이 나약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평의 역할은 비난이나 비판과는 다른 영역인데, 우리 미술계는 이러한 비평이 설 자리가 없다"며 "이는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채, 마치 클라이언트에게 하청받는 듯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평이 독립되고 자율성을 지녀야 문화예술 창달이 가능하며, 미술과 미술계, 사회와 문화, 정부 정책의 방향이 올바르게 설정될 수 있도록 비평이 유익한 역할을 해야 하는 데 그 같은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그저 권위에 기댄 오염된 언어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amigo@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