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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정재왈 “지역 문화행정, 예술인에게는 생존 걸린 사안”

2016.08.05

[뉴시스] 신동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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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로 잘 있던 사람이 지역 문화재단 대표로 갔다. 뜻밖이다. 기관장을 한다 해도 중앙 무대가 어울리는 이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장으로 몇 차례 일한 적도 있다. 여러모로 지역 재단은 하향지원처럼 보였다.

정재왈(52)이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도 100일이 넘었다.

“안양이 연고지가 아니니 매사 낯설었다. 길도, 사람도, 정서도, 문화도 다 그랬다. 때로는 모른다는 게 큰 장점이란 걸 알았다. 모든 걸 편견 없이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장점을 내면화하면서 지내다보니 조금씩 실체가 보이는 것 같다. 얼마 전 법륜스님이 안양에 와 평촌아트홀에서 특강을 했는데, 그분 말씀이 안양(安養)은 불교에서 극락을 뜻한다더라. 모든게 극락에서 일어나는 일이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한 단계씩 올라가는 삶이여야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디에나 계층은 있다. 공직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와 일하다가 지역, 특히 기초단체의 문화재단을 맡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나이도 젊으니 더 좋은 높은 자리를 욕심낼 수도 있었을 테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리보다 내용을 택했다. 지난 3월 대표 공모에 지원하려니 적잖은 상념이 떠올랐다. 문화예술계에서 한 일들을 되돌아보니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싶었고, 운좋게 다방면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빈 공간이 보였는데, 그게 지역 문화행정이었다. 됐다 싶어서 응모했고 또 운 좋게 됐다.”

운칠기삼, 운이 7할이요 기회가 3할이라는 뜻이지만 실력이 아닌 이런저런 변수가 인생을 좌우한다는 자조가 깔려 있는 말이다. 문화예술을 공통분모로 한 정 대표의 행적을 놓고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출발, 전문기자 반열에 오른 뒤 어느날 갑자기 극장 경영을 배우겠다며 유명 공연장의 운영국장으로 이직했다. 몇 년 뒤에는 정부 산하기관장으로 변신하고, 대학에도 적을 두는 등 행로가 꽤 변화무쌍했다. 문화예술 영역에서 거치지 않은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어코 빈 공간을 새로 찾아냈다.

“지역 문화행정? 그건 이렇다고 분명히 말하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자명하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가진 문화행정에 대한 기대치가 중앙정부보다는 훨씬 절박하다는 것.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 그런데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아직 탄탄하지 못하다.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게 지역 문화행정을 책임지는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이다.”

지역마다 연고주의, 쉽게 말해 텃세가 있게 마련이다.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문화재단 대표를 지역 밖 외부인에게 개방한 것을 안양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도 될는지.

“올해로 안양문화예술재단 출범 9년째다. 그 사이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의 대표를 거쳤는데, 모두 이 지역과 상관없이 활동하면서 문화예술행정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들이다. 그 분들이 쌓아놓은 업적 덕분에 이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다. 시장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이해도가 다른 지자체보다 높다.”

재단은 무슨 일을 할까, 중점사업 같은게 따로 있나. “기초단체 문화재단의 역할은 천차만별이다. 지역 문화행정의 최종 집행자라고 하지만, 어느 곳은 극장 등 공간 운영에 국한돼 있기도 하고 어느 곳은 순전히 정책 집행에만 치중해 있는 곳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양문화예술재단은 두 가지 기능이 비교적 조화롭게 구성돼 있어 지역 문화재단의 좋은 선례로 언급되곤 한다. 극장과 박물관 등 공간 운영을 통해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신장하고 생활밀착형 인문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의식을 높이는 교육사업 등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특히 올해 역점사업으로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꼽을 수 있다. 잘 돼야 할 텐데 걱정이다.”

APAP, 이게 뭔가. “공공예술(public arts)은 말 그대로 예술의 공공성을 극대화하는 예술활동을 이른다. 당초 미술에서 비롯됐는데, 예술 향유의 소수 독과점을 깨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기 위해 도시의 열린 공간을 지향하면서 그곳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감행하고 시민 대중과 만나려는 것이다. 건축과 디자인, 설치 작품들이 공공예술 초기를 장식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영상 등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작업과 퍼포먼스, 시민들과 직접적인 예술적 소통 행위까지도 포괄한다.”

그런 것들이 안양과 어떻게 연계되는가. “우리 사회에 바로 그 공공예술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10여년 전, 안양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라는 놀라운 발상을 해서 이를 2, 3년 단위의 국제적 행사로 치르고 있다. 올해 5회째를 맞아 앞으로 트리엔날레(3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 행사)로 정착하고자 한다. 10월 중순 그 실체가 공개된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장편영화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미술작가 겸 영화감독 임흥순씨 등 국내외 24개 작가(팀)가 참가한다. 이 가운데 장기 존치 작품들은 오랜 기간 남아 안양시민들과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정 대표의 이름에는 특이하게도 ‘왈(曰)’자가 들어있다. ‘있을 재(在)’와 조합하면 ‘말이 있다’가 된다. 첫 직업인 신문기자와 통한다. “세상에 특이한 이름은 많지만 말한다는 의미, 즉 공자왈 맹자왈의 그 왈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예는 제주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한국화가 이왈종 화백뿐이다. 그 분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왈자 하나로 정서적으로는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할아버지가 한학자였다고는 하지만 장래 내 직업을 예상하고 지은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충남 당진 고향동네는 150여호가 모여 살던 정(鄭)씨 집성촌이었다. 그 가운데 재자 돌림이 유난히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같은 이름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피하려다 보니 왈자를 택했던 것 같다.”

그동안 가장 보람이 컸던 일터는 어디일까. “모든 과정이 다 즐거웠고 보람있었다. 안 믿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한국일보사로 입사해 중앙일보에서 마칠 때까지 13년 동안 현장을 누볐는데 문화예술 어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따라다녔다. 특히 연극과 뮤지컬, 무용, 음악, 전통예술 등 공연예술에선 전문성을 인정받아 평론 활동도 했다. 극장경영은 LG아트센터를 만나면서 크게 눈을 떴다.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 극장인 이곳에서 최전선에 있는 국내외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이른 나이에 공공기관장으로서 입신하는 영광도 누렸다. 서울예술단 이사장 겸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뮤지컬 ‘바람의 나라’를 만드는 등 공연기획제작을 지휘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를 맡아서는 정부정책과 연관된 예술경영의 실무적 영역을 공연예술에서 시각예술로까지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서울아트마켓(PAMS) 등 문화예술 국제교류 활동을 한류의 차원으로 이끈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책도 여러권 지었다. ‘나의 문화교과서’ 시리즈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쓴 것이 ‘나의 문화교과서’다. 한 마디로 교과서처럼 읽고 활용할 수 있는 청소년용 예술 안내서를 목표로 해서 나온 것인데, 뮤지컬과 발레 두 권을 냈다. ‘뮤지컬을 꿈꾸다’와 ‘발레에 반하다’가 그것이다. 둘 다 요즘 아동과 청소년들의 관심도가 높은 장르여서 스테디셀러는 되는 것 같다. 문화예술의 미래 관객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에서 비롯된 일이다.”

사반세기 이상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직장명과 직위는 많이 바뀌었지만 온전히, 올곧게 문화예술의 자장 속에 있었다. 남다른 자긍심을 느낄 만하다. 처리한 일들의 특성을 살피면, 하나라도 집중하기 어려운 성취들이다. 언론인으로서 문화예술을 거시적으로 보는 눈을 키웠다면, 극장과 제작 등 치열한 현장에서는 미시적인 디테일을 배웠다. 공직에서는 문화정책과 예술행정의 치밀한 집행자였고, 교육현장에서는 예술경영을 전파하는 유능한 스승이기도 했다. 현재도 언론 칼럼을 통해 따스한 시선으로 현장 보듬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르네상스인이 따로 없다.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무엇이 되고 싶나. “죽을 때까지 추구해도 끝이 나지 않을 엄청난 일들이 널려있다. 소박한 바람이라면 현장과 지식에 대한 갈망을 잃지 않으면서 문화예술계의 신뢰할 만한 지성인, 즉 공적(公的) 지식인으로 남고 싶다. 어떤 자리와 위치에 있더라도 일관성이 있어 보이는 그런 사람. 그것은 자리의 위상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다.”

◇정재왈 누구

▲1964년 당진 ▲호서고등학교-고려대 영문학과-고려대 언론대학원(석사)-고려대 대학원(박사)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연극평론가 ▲LG연암문화재단 LG아트센터 운영국장 ▲서울예술단 이사장 겸 예술감독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 ▲예술경영지원지원센터 대표이사 ▲성균관대 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초빙교수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주임(객원)교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객원교수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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