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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이언주의 숨은그림찾기] 붓 아닌 '불로 드로잉'하는 조각가 이성민

2016.08.22

[뉴시스] 이언주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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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성민, Like-a-hand-caught-in-a-spider-web-40x39cm-epoxy-paint-on-the-iron-2016 2016-08-20

부스스 잠에서 깬 여섯 살 딸아이가 울상이다.

“왜? 나쁜 꿈꿨어?”

“그냥.. 거미줄에 걸린 손처럼 꿈을 꿨어.”

어느날 딸의 꿈 얘기를 들은 조각가 이성민(41)은 ‘너도 그렇구나, 어쩌면 우린 다 같구나’ 생각했다.

우리네 삶도 거미줄에 걸린 손과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그깟 거미줄이 뭐라고, 훅 떨쳐버릴 수 있는 것 조차 뿌리치지 못하고 살아간다. 실오라기 보다 가늘지만 끈적하게 관계를 이룬 그 줄 사이사이에서 연민을 느낀다.

【서울=뉴시스】이성민 개인전 2016-08-20

'이제 그 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성민의 고민도 끊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삶 속에 작업과, 가족, 그리고 책임감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현대 조각사에 큰 의미를 남기고 간 '큰 형님'들에게 묻기로 했다. 브랑쿠시, 자코메티, 김종영, 뒤샹을 먼저 떠올렸다.

‘그 분들이라고 쉬웠을까? 어떻게 극복하고 넘어갔을까, 과연 끝은 났을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담을 이어갔다. .

“자코메티는 소심하고 감성적이었을 것 같은데, 작업이 막힐 땐 어떤 식으로 풀었을지, 고집 센 독불장군 브랑쿠시는 돌을 갈아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테고, 상상할 수 없는 걸 하는 뒤상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서울=뉴시스】이성민 작가. 2016-08-20

작가는 존경하는 예술가들을 떠올리며 작업의 방향을 찾고자 그들을 조각하고 드로잉했다.

작업과정은 폭염보다 뜨겁다. 불로 쇳덩이를 깎아낸다. 작업복과 가죽 장갑,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쓰고 산소 절단기를 붙든다. 불로 쇠를 녹여 끊어내 이어붙이기를 반복한다. 불을 붓 삼아 철 덩어리 자체에 드로잉하는 셈이다. 산소절단기를 통한 '불꽃 드로잉'은 함부로 빽빽하게 치열하고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얼키설키 이어진듯 붙여진 조각은 마치 크로키처럼 찰나의 절정이다. 그래서 그는 '불로 드로잉 하는 조각가'로 불린다.

이토록 힘든 작업을 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정확히 얘기하면 작업행위 자체에서 유희를 느끼고, 알 수 없는 것에 이끌려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게 환영이나 환상이라면 무력감에 사로잡히겠지만, 제가 쏟는 에너지가 작업 행위를 거쳐 다시 저한테 들어오거든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요소가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하죠.”

【서울=뉴시스】이성민, Marcel-Duchamp, 55x61x12cm, iron-aluminum-mixed-media, 2016,(오른쪽) Alberto-Giacometti, 25x35cm-ink-on-paper, 2016 2016-08-20

2000년도부터 시작한 이 고난도의 작업이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털어놨다. 도착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호해 졌다는 것. 그래서인지 최근 선보인 작업에선 방향이 제 각각인 모두 다른 동작의 인체를 만날 수 있다.

독보적인 작업 방식과 고민으로 빚어낸 형상. 주로 팔은 없고 길쭉하고 삐쩍 마른 형태를 고수하며 방향과 다리의 동작으로 움직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불편하게 몸을 비튼 채 구부정하게 있기도 하고, 이제 막 달릴 준비를 하거나, 힘차게 달리고 있거나, 걷기도 하고, 또는 고개를 떨군 채 잠시 쉬고 있기도 한다.

“우리들 모두 이러고 있는 것 아닐까요?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어느 순간 목적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쉼도 필요하고, 주변도 봐야 하고요. 하지만 아예 멈출 수는 없는 무언가를 계속 이어가야만 하잖아요. 저 역시 ‘불 드로잉’을 멈출 수가 없네요. 끝도 없는 이 일을 이어갈 뿐이죠.”

수많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불꽃 드로잉'으로 나온 조각은 묵시적이다. 강렬한 '불의 미학'을 뚫고 나온 조각은 삶의 무게를 침묵으로 전하며 묵직한 여운을 준다.

【서울=뉴시스】이성민 개인전 2016-08-20

작가로서의 고뇌와 탐구, 또 작가로서의 창조의 유희를 느껴볼수 있는 이성민 개인전이 서울 평창동 키미아트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딸이 꾼 꿈 '거미줄에 걸린 손처럼'을 주제로 설치, 드로잉, 조각을 선보인다.

◆ 작가 이성민=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환경조각학과 석사 졸업(2016) △서울예술고등학교 강사 △작품은 이성민 작가 홈페이지(http://leesungmin.net/)에서 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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