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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이화익 "좋은 작가 있으면 컬렉터는 저절로 온다"

2016.10.19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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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익 이화익갤러리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0.1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한국의 아트파워 ④] 이화익 이화익갤러리 대표·한국화랑협회 부회장.

"좋은 작가가 있으면 컬렉터는 저절로 옵니다."

이화익 이화익갤러리 대표(한국화랑협회 부회장)는 될성 부른 신진작가, 혹은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유망 작가들을 찾아내 알리는 일을 가장 충실하게 해내는 대표적 화랑계 인사로 꼽힌다.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만난 이 대표는 "굳이 컬렉터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작가가 있으면 국내든 해외든 컬렉터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는 이유 때문이다.

19일부터 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소속 작가 안두진 역시 2012년 영국 런던의 명문 '사치갤러리'에서 열렸던 '코리안아이'전에 나가 미국 영화감독이자 세계 미술계 주요 컬렉터 중 한 명인 올리버 스톤 컬렉션에 이름을 올렸다.

'1호 붓' 같은 세필로 100호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안두진 작가를 포함, 이 대표가 좋아하는 작가는 대개 '노동집약적'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김동유, 신상호, 설원기, 김정선, 박상미, 노준 작가 등이 이화익갤러리를 거쳤고, 정소연, 임동식, 안두진, 최영걸 작가는 전속 개념으로 현재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시하는 데 있어 이 대표가 내세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갖고 싶은 작품을 전시한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6년, 국내 1세대 화랑인 갤러리현대에서 디렉터로 6년 일한 경험을 토대로 2001년 이화익갤러리의 문을 열었고, 2005년 모교인 덕성여중 옆 건물로 이전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자신이 좋아하는, 또는 믿는 작가들을 키우는데 열정을 쏟았다.

작가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안두진 작가의 경우 최근 서울 은평구에 개인 작업실을 냈는데, 이 대표의 힘이 컸다. 안 작가는 "작가 레지던시가 아니면 지하 셋방을 전전했는데, 드디어 햇빛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이 대표에게 국내 화랑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내년 2월 선거를 앞둔 차기 한국화랑협회장 자리를 두고, 정작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진 "모든 게 순리대로 되면 하는 거고, 아니면 다음에 해도 된다"며 승낙도 거절도 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정치인 정두언의 아내'라는 또 다른 '직업'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요즘 "이제 하고 싶은 미술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포부를 내비쳤을 뿐이다.

다음은 이화익 대표와의 일문일답.

이화익 이화익갤러리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0.1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올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이화익갤러리의 성과는 어땠나.

▶우리 화랑만 놓고 봤을 땐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해외에서 초청한 컬렉터들이 우리 작품을 많이 구입했고, 국내 컬렉터들도 젊고 신선한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다만 숫자만 놓고 본다면 지난해보다는 못 팔았지만, 가격 면에서는 좋은 성과가 있었다. 경기도 안 좋은 이 때에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단색화만 거래가 잘 됐는데, 올해 키아프에서는 조금 주춤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시장 분위기가 달라진건가.

▶지난 2~3년동안 단색화만 주목받은 건 사실이다. 시장에서도 그랬고. 특히 경매에서도 지속적으로 단색화만 거론되다 보니, 이제는 조금 식상하게 느끼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또 단색화 가격이 이미 많이 올랐기 때문에 '지금 사는 게 늦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 사실 '단색화 다음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정말 대답하기 어렵다. 그걸 내가 알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물론 예상은 하지만, 선뜻 말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유행에는 '업앤다운'(Up and down)이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추상화가 뜨는가 싶으면 다시 구상이 뜬다. 그러한 유행의 순환고리를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이화익 이화익갤러리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0.1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젊은 작가,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해 전시를 여는 꾸준함이 돋보인다.

▶미술을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했다. 갤러리현대 디렉터 시절에는 지금 뜨는 단색화 작가들, 원로작가들 전시도 많이 했다. 그러나 2001년 화랑을 시작하면서 차별화를 하고 싶었다. 과거에 전시했던 작가들을 또 하는게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크리스티 홍콩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함께 프로모션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너무 좋은 취지라고 생각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한국 작가들을 세계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세계적인 작가로 키우기 위해 크리스티 같은 경매회사와 같이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거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어떤 작가들이 이화익갤러리를 거쳤나.

▶10년 이상 크리스티 경매가 있을 때마다 내보내고 있는 최영걸 작가가 있다. 세필로 한국화를 하는 작가다. 사실 서울대 동양화과 시절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작가다. 한국의 아카데믹한 미술 교육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와 일하면서 해외 컬렉터들에게도 소개되고 꾸준히 잘 되고 있다. 홍콩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에릭 창이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더라. 작가 역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해서 밀도를 높이는 중이다. 흠이 있다면 1년에 작품 10점도 안 나온다는 점이다(웃음). 작가들을 해외시장에 소개하면서 안타까운 점은 정말 좋은 작가들이 해외에 컬렉션돼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거다. 우리 작가 작품을 우리가 알아보면 좋을텐데.

-지금까지 일했던 작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가 있다면.

▶김덕용 작가와 인연이 깊다. 내가 2001년 화랑을 시작해서 2003년에 위암이 걸린 적이 있었다. 결국 건강 때문에 화랑을 잠시 쉬게 됐는데, 당시 계원예고 선생님이었던 김덕용 작가를 '전업작가'로 부추긴 게 나였다. 물론 그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작업만 하고 싶어 했고. 도저히 안 되겠더라. 내가 저 작가를 위해 화랑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이 작품만 해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다. 안두진 작가만 해도,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만날 생활비가 없어 꿔주기가 일쑤다.

-화랑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든 점은 뭔가.

▶작가와의 관계가 가장 힘들다. 함께 열심히 일하다가 다른 더 큰 곳에서 제안이 들어올 때. 물론 작가들도 생활을 해야 하니까, 더 큰 화랑을 가는 거 괜찮다. 다만 작품을 판매하는 경우 미묘하게 얽히게 되는 문제들이 가끔 있다. 이런 경우 비교적 작가와 잘 타협해서 작가의 입장, 화랑의 입장을 조율하려고 하지만, 접점을 찾는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화익 이화익갤러리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사진취재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1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차기 화랑협회장으로 벌써부터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데.

▶화랑을 한 게 15년 밖에 되지 않았다. 선배님들도 많고 아직 내 화랑도 탄탄하게 만들지 못한 상태인데, 봉사를 한다는 게 이른 감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또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나 개인으로써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고 내 일만 열심히 하고 싶지만, 화랑 전체를 놓고 보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또 그동안 박우홍 회장이 키아프 등 굉장히 열심히 이끌어 왔는데, 누군가는 이걸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 회장이 되고자 하는 다른 분도 계신데, 그 분과 대적하면서까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모든 게 순리대로 되면 하는 거고, 아니면 다음에 해도 된다.

-한국화랑협회에서 총무, 홍보이사, 부회장 직을 맡으며 오래동안 일을 해왔다. 지금까지 봐 온 협회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협회는 기본적으로 친목단체다. 주인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무국장도 그렇고 직원들이 계속 많이 바뀐다. 회장도 계속 바뀌고. 지속적으로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시행착오의 차이는 엄청나다.

-박우홍 회장은 협회가 친목 단체지만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회장으로서 생각은 어떤가.

▶당연히 공공성이 중요하다. 화랑들이 잘 되려면, 협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모든 기관이 마찬가지다. 누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하느냐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협회도 화랑들이 힘을 합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있고, 미술시장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이번 키아프 때 해외 컬렉터들을 대거 초청해서 조금이나마 시장을 살렸다고 본다. 앞으로는 국내 시장만 갖고는 작가가 먹고 살기 힘들다.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한국, 대만, 싱가포르, 일본,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호주 등 아시아 8개국 화랑협회 연합체인 아시아·태평양 화랑협회 연합회(APAGA)를 중심으로 '원 아시아'(One Asia)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시아 작가라면 아시아 시장 전체에서 활발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말이다. 현재 대만화랑협회에서 APAGA 회장을 맡고 있는데 내년 쯤에는 한국에서 회장을 맡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랑주가 아닌 컬렉터로서 작품도 소장하고 있나.

▶물론이다. 작품 수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갖고 싶은 작품을 전시한다는 게 화랑주로서 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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