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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나이 먹어서 뭐 하나…있는 돈 가치있게 쓰는 거 말고"

2016.11.15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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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4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1.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한국의 아트파워 ⑥]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친구들과 점심 먹고 인사동 거리에 산책하러 나갔다. 그때부터였다. 이리저리 '그림 구경'을 하다가 판화를 샀다. 처음엔 30만원 하는 작품을 샀다. 200만원까지 구매가가 올라갔다.

이우환 백남준 등 국가 대표 작가들의 작품도 샀다. 루이스 부르주아, 쿠사마 야요이, 조지 콘도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도 품에 안았다. 그렇게 30여년이 지났다. 모은 미술품은 800여점으로 불어났다.

'큰 손' 컬렉터 김희근(70)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작품을 뭘 알겠어요? 그저 사람이 좋아서 산 겁니다."

김 회장은 국내 문화예술계 대표적인 후원자이기도 하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키아프)의 조직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 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세종솔로이스츠' 창단의 산파 역할을 맡고 '코리아심포니 오케스트라' '한국페스티발앙상블' 등 클래식 분야까지 문화예술을 전방위로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메세나 대상 메세나인상', 2013년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등을 수상한 김 회장은 정부 관계자들이 문화예술 관련 정책 자문을 얻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트파워'이기도 하다.

지난 4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벽산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기업인들이 더 많이 문화예술 후원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꼭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중소기업 사장들 허구헌날 해외 골프여행에는 돈을 쓰면서 문화예술에는 돈을 안 쓰잖아요. 말이 안되는 거에요."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4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1.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예술을 삶 속으로

벽산엔지니어링은 건축설계, 감리를 하는 회사라기 보다 갤러리, 혹은 미술관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벽산엔지니어링 본사에는 눈길 옮기는 데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미술 작품이 빼곡했다. 김희근 회장은 30여 년 모아 온 자신의 소장품을 그렇게 직원들과 향유하고 있었다.

김희근 회장이 미술품 컬렉션과 인연을 맺은 건 1985년 쯤이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경영자로 활동하는 친구들과 '싸고 맛있는' 점심을 먹는 모임을 만들었다. 인사동에서 기성 작가의 판화를 사기 시작한 게 오늘날 800여점 컬렉션에 이르렀다. 여느 갤러리스트나 미술관 관계자 못지 않은 수준의 전문 지식은 덤으로 따라 왔다.

작품을 구매하게 된 동기는 주로 '사람이 좋아서'라고 했다. 대표적인 게 회장 집무실에 놓인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다.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독특한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김선희 김창열미술관 관장이 일본 모리미술관 큐레이터 시절 부탁을 하더라고요. '좋은 작가가 있는데 많이 어렵다'면서요. 그래서 작가 작업실을 가 봤는데 도자기 조각들을 잔뜩 쌓아 놨더라고요. '평범하고 규격화된 삶을 사는 작가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죠."

해외 전시를 앞둔 작가를 경제적으로 돕기 위해 먼저 빌려준 돈은 '작가가 갚을 돈이 없어' 작품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불과 1~2년 만에 그 작가는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급성장했다.

본사 비서실 공간에 놓여진 백남준 작품도 그와 비슷한 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을 구입했는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값이 너무 저평가 돼 있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 작가 우리가 지키자'는 마음으로 경매에 뛰어 들었다.

그는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교양이나 배려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들마저도 라이프스타일이 거칠어요. 하다 못해 식사자리에서 옆에 앉는 사람의 외투를 받아주거나 의자를 빼 주는 것 같은 기본적인 에티켓도 없죠. 교양이나 배려가 우리와 소득 수준 비슷한 나라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 거에요. 원조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양적성장은 했지만, 질적성장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죠. 그림, 음악 등 문화예술을 통해 그 격차를 줄이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4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1.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사랑도 예술로

김회근 회장의 미술사랑은 미술을 통한 사랑으로도 이어졌다. 수년전 췌장암으로 투병했던 첫번째 아내를 떠나 보낸 후 남은 인생의 반려를 만났다. 청와대 옆 '갤러리인'의 양인 대표다.

"키아프 조직위원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는 운영위원이었고요. 제가 먼저 '집적'댔죠. 젊었을 땐 다들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서 결혼했습니다."

갤러리스트와 컬렉터 부부에게 미술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지만 종교도, 주량도 서로 많이 다르단다. 그래서 김 회장은 "잘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가 보면 아내는 박물관 안으로 들여보내고 남편은 밖에서 담배나 피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봐요. 장관, 은행장 하는 제 친구들만 봐도 음악회, 전시회는 아내만 보내죠. 부부가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고,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건 정말 중요해요. 몇 년 지나면 알아서 맞는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미술로 맺어진 사랑이지만, 양인 대표는 오래 해 왔던 갤러리를 정리하려는 중이다. 김 회장은 "내가 극구 부추겼다"고 말했다.

"26년을 혼자 살았더라고요. 결혼도 일찍 하고 이혼도 일찍 하고 애도 셋이나 있고. 사업을 하려면 전력을 다 해야 하는데, 일단 이 사람은 갤러리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요. 서양화 전공한 딸이 있지만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지를 않고. 게다가 주 고객들이 40~50대였는데 그들도 이젠 나이를 먹었고, 작품을 살 생각을 하기보다 샀던 작품을 팔아달라고 가져오죠. 경기도 힘들고 언젠간 문을 닫아야 하는데 '빚 없을 때 정리해라, 괜히 폼 잡지 말고' 했어요."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4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1.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예술에 돈을 써라"

김 회장은 '효과'를 기대하고 시작한 컬렉션은 아니었지만, 미술관 못지 않은 컬렉션으로 회사를 꾸민 덕분에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정서 함양에도 큰 효과가 있었지만, 특히 해외 바이어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메세나' 활동을 하는 다른 CEO들에 비해 경영 일선에서 자유로워 요즘 각종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있다는 김 회장은 "생돈이 들어가도 즐겁다"고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하고 살아야지요. 나이 들어 뭐 하겠어요. 있는 돈 값어치 있게 쓰는 것 말고."

그는 "나 하나의 작은 실천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단순하게는 주변 쓰레기를 치우는 일부터가 그렇다.

"연희동 뒷산을 종종 가요. 비닐 봉지 하나 들고 쓰레기 주우려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 쓰레기 줍는 사람들을 종종 봐요. 문화예술 후원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 후배들은 저보다 더 돈이 많으니 더 많은 돈을 문화예술에 썼으면 좋겠어요."

후원자로서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영화제며 비엔날레며 몇 개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디에 지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이게 다 '포퓰리즘' 때문인 것 같아요. '나눠먹기' 식으로 선심성 예산만 각 지역에 남발하는 거죠. 독일 '카셀도쿠멘타'를 보세요. 5년에 한번씩 제대로 준비해서 하잖아요. 우리같은 '촌놈'들도 보고 기억할 정도로요. 선진국이 괜히 선진국이겠어요. 우리도 가진 자들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4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1.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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