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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한국 최초 누드 퍼포먼스' 했던 정강자 부활

2023.04.07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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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한국실험미술 이끈 1세대 전위 예술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서 개인전

<투명풍선과 누드>(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1968.5.30, 음악감상실 세시봉 ⓒ 2023 Kangja Jung 사진출처: “빛과 소리와 공간의 결합, 《청년작가연립전》의 ‘환경미술의 공동실현’에서”, 한국일보 (1968.6.2) (20(h)x9.5(w)㎝)사진=아라리오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68년 5월30일 음악감상실 세시봉은 떠들썩했다. 한국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었다. 정강자, 정찬승, 강국진이 함께 한 '투명풍선과 누드'. 당시 핫했던 존 케이지의 음악이 배경으로 흘러나왔다. 두 남자(정찬승-강국진)가 여자(장강자)의 옷을 찢으면 관객들이 정강자의 상반신에 투명 풍선을 붙인 후 다시 풍선을 터트리는 행위였다. 일상의 몸을 작품에 도입해 에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퍼포먼스였지만 세간의 관심은 벗은 몸에만 집중됐다. 지금 시대에도 파격적인 이 퍼포먼스는 한국 현대미술사에 故 정강자(1942-2017)의 이름을 새긴 파격 이벤트였다.

故정강자는 이름처럼 남성 작가들보다 더한 '강자'였다. 1960~70년대 전위적 실험미술을 이끌며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행보는 퍼포먼스 도중 경찰에 연행되거나 첫 개인전 '무체전(無體展)'은 강제 철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규제속 한계를 뚫으려 했다.

「무체전(無體展)」 리플렛 표지, 1970.8.20-24, 국립공보관 화랑 ⓒ 2023 Kangja Jung 원본 크기: 19(h)x18(w)㎝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계에 따르면 정강자는 1967년 국내최초 집단적으로 기성미술에 도전한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신전(新展)’ 동인으로 참여, 여성의 입술을 거대화한 조형작품 '키스 미'(1967)를 선보여 한국 화단에 큰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다. 이후 발표한 'STOP'(1968), '여인의 샘'(1970)에서도 둔부와 가슴 등 여성의 신체를 강조해 아름답고 강한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1977년 가족과 함께 돌연 싱가포르로 떠났다. 예술과 일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군분투한 작가는 남편과의 이혼 후,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한 뒤 1990년대까지 남미, 아마존, 남태평양 등 문명이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원시의 삶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삶과 꿈이 투영된 환상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았다. 말년에는 우주 만물의 최소 단위인 원과 인위적인 직선을 결합한 ‘반원’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로 모든 사물을 환원하는 실험에 집중했다. 201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예술적 도전을 이어갔다.

한국 실험미술의 최전선에서 가장 적극적 행보를 보였던 정강자는 오랜 기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2000년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그녀의 화업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화실(Art Studio), 1977, oil on canvas, 162.2(h)x130.3(w)㎝ ⓒ 2023 Kangja Jung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실험미술의 최전선에 있던 1세대 전위예술가 정강자의 예술세계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정강자 개인전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가 열린다. 1960년대 퍼포먼스 사진부터 작고 전 그린 영정(影幀) 회화까지 반세기에 걸친 시대별 자화상도 전시한다. 9월3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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