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범죄사진·영화, 뿌리는 옛 과학사진 ‘박상우의 포톨로지’

2019.04.08

[뉴시스] 조수정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1839년 사진 발명 이후 서구 학자들의 사진 활용
알퐁스 베르티옹·프랜시스 골턴·토머스 헉슬리
쟝마르탱 샤르코·에티엔 쥘 마레 등
19세기 탄생한 범죄학·우생학·인류학·정신의학에 활용된 사진
영화의 시작도 19세기 마레의 연속촬영원리에서

베르티옹의 얼굴 측정

길을 걸어가는데 경찰관이 사진을 보더니 나를 연행하겠다고 한다. “너는 범죄자형 얼굴이니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어.”

정부 관계자가 나를 어떤 사진과 비교해 바라보면서 말한다. “너는 열성형 인간이야. 네가 아이를 낳으면 열성 인간이 나올 것이니 너에게 결혼 금지령을 내리겠어.”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로 가면 맞닥뜨릴 수 있는 불편한 상황들이다. 당시 서구 학자들은 사진을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의 도구로 활용했다.

“1839년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의 사진 발명 이후, 인류학·범죄학·범죄수사학·우생학·신경정신의학 등 인간을 연구하는 근대 학문이 탄생한 19세기 서구 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에 사진을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이 무렵 인간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을 학문 연구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어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과학성을 획득해야 했고 이를 위해 사진을 활용했습니다.”

말로 된 초상화 강의

박상우(51)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가 19세기 과학사진사를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철학적 미학적으로 분석한 ‘박상우의 포톨로지’를 펴냈다.

1999~2008년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언어학부(예술 및 문학전공)에서 석·박사 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누구나 읽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문헌을 참고한 것이 아니다. 모든 자료를 직접 찾아 분석했다. 332쪽, 1만6000원, 문학동네

19세기 파리 경시청은 형사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거리에서 인상을 파악해 범죄자를 잡을지 교육했다. 알퐁스 베르티옹(1853∼1914)은 규격화 된 초상사진, 말로 된 초상, 인체측정법, 마크(흉터·점), 네 가지 과학적인 식별방법을 고안해낸 과학적 범죄수사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범죄사진에서 중요한건 식별입니다. 식별을 잘 하기 위해서 선명하게 찍고, 정면·측면에서 찍죠. 그림, 문자하고 완전히 다른 사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식별이에요. 그러니까 신분증에 사진을 붙이는 거죠.”

규격화를 위한 사진장치, 1909년

박사 과정에서 박 교수는 범죄사진을 통해 ‘식별이 뭘까’를 연구했다. 파리 경시청에 베르티옹 관련 자료를 요청한 박 교수는 양팔을 크게 벌려 네모 모양을 그리며 “이 만한 크기의 자료 30박스가 있었다”고 했다.

그 방대한 자료를 누구도 연구한 적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금까지 사진은 진정한 학문의 대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사진의 역사를 다룬 책 중 가장 유명한 버몬트 뉴홀의 ‘사진의 역사’만 봐도 대부분 예술사진과 약간의 보도사진을 다뤘다.

조선인 인체측정, 도리이 류조, 1911년

“신분증 사진, 전 국민이 소지하고 국가도 소지하고, 이 거대한 사진 아카이브에 대해 기존의 사진 역사나 이론은 침묵한 거죠. 그래서 저는 신분증 사진을 공부하러 프랑스에 갔어요.”

박 교수는 범죄수사학, 특정집단 사람들을 촬영한 합성사진으로 그 집단의 전형 또는 평균인을 찾으려 한 우생학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 인체 측정사진으로 우월한 인종을 찾자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생물학자 겸 인류학자 토머스 헉슬리(1825~1895) 등 당대 학자들이 각자 자신의 학문 신뢰도를 높이려고 사진을 활용한 사례도 분석했다.

남성 히스테리 환자의 발작 과정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지배할 때 인류학자들을 동원해 원주민 옷을 벗겨서 찍었어요. 이 사진들이 100장, 200장 있는 게 아니에요. 충격적이죠. 인류학자들이 사진을 찍는 건 신체적으로 진화하지 않았다는 걸 설명하기 위함이었어요. 백인이 가장 진화했고, 흑인이 가장 덜 진화했고, 몽골족은 중간 쯤. ‘너희는 열등한 민족이니 우리가 도와줄게. 문명화 시켜줄게’하면서요. 그걸 과학적 증명하기 위해 동원된 게 인류학이고 인류학에 활용된 게 사진이었어요. 그 옛날, 외국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가 왜 읽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죠. 하지만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10년 한일합방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본 인류학자들이 온 한반도 전역을 다니며 마을사람들을 찍었어요. 서양에서 배운 거죠. 사진 속에 있는 분들이 바로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들이에요. 불과 얼마 안 된 얘기입니다.”

“우생학의 경우, 학문으로 판단한 모자란 인간들은 결혼을 못하게 하고 뛰어난 인간들은 출산을 장려시켜요. 그래서 우수한 인종이 사회에 많아지면 인간은 훨씬 더 진보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우생학이죠. 여기에 합성사진을 이용한 거에요. 강도, 폭력범 등 동일 범죄를 저지른 사람 얼굴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 거에요. 이걸 통해 범인을 잡고 우생 인종을 구별하고 이런 것들을 했던 거죠.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겁니다. 시각적으로 만이 아니라 이걸 통해서 정책이 실행되니까요. 형사들을 모아놓고 길거리에서 인상을 파악해서 어떻게 범죄자를 잡는지 교육하고 있는 것이지요.”

프랑스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정신병자(히스테리 환자)의 발작 현상을 유형화하는데 순간포착 사진을 도입해 거대한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정지사진에서 움직이는 영상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한 신경정신과 의사 장마르탱 샤르코(1825~1893)와 제자 알베르 롱드(1858~1917), 움직이는 인간과 동물의 미세한 동작들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측정 기계와 카메라 장치를 발명해 연속동작 사진을 촬영하고 그 영상촬영과 재생원리가 현대영화의 기술적 원리로 고스란히 승계된 프랑스 생리학자 에티엔 쥘 마레(1830~1904) 등의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

마레가 최종적으로 발명한 ‘움직이는 감광판의 크로노포토그라피’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공식적으로 영화를 발명하는 데 직접적인 원동력이 됐다. 영화의 시작을 뤼미에르 형제로 알고 있지만, 그들은 마레의 제자였고 마레의 기술을 영화에 활용한 것이라고 박 교수는 짚는다.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샤르코의 제자 롱드는 1872년부터 스승이 심혈을 기울인 히스테리 발작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관건은 빠른 동작을 어떻게 순간적으로 포착하느냐였다. 때마침 1880년대에 기존의 감광물질보다 훨씬 더 빛에 민감한 감광물질인 ‘젤라틴’이 출시된다. 이 무렵 롱드도 연속사진 카메라를 완성한다. 셔터 스피드 조절이 자유롭고 연속촬영이 가능한 아홉 개(나중에는 열두 개)의 렌즈가 달린 이 카메라를 사용해 순간포착사진을 찍는 데 성공한다. 연속동작을 분절해 촬영할 수 있는 이 카메라에서 영화의 발명은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우리가 보는 ‘사진’ 중 예술사진은 얼마나 될까. 박 교수는 작가들이 생산한 예술사진은 전체 생산된 사진의 0.01%도 안된다고 설명한다. 구글에서 단어를 검색하면 수억장의 사진이 보이고 거리의 상업사진, 메뉴판 사진, 포털, SNS 등 사진을 활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포톨+로지는 사진에 관한 학문입니다. 외국엔 사회학, 인류학 등 많은 학문이 있지만 사진학(포톨로지)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기존의 사진학이 연구한 예술사진 혹은 상업사진 말고 무수하게 우리 사회 모든 곳에 퍼져있는 사진,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은 너무 중요한 사진들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진지한 학문으로서 연구하려는 의지를 말하는 겁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박상우 서울대 미학과 교수가 29일 오후 서울대학교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지난해 출간한 ‘롤랑 바르트, 밝은 방’(커뮤니케이션북스)도 호평을 받고 있다.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밝은 방’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 너무 어려우니 대중서로 쉽게 풀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고 쓴 책이다.

“특히 번역본을 읽으면 더 힘들어요. 바르트가 은유적으로 많이 썼기 때문이에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난해하죠. 그래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습니다. 롤랑 바르트, 발터 벤야민, 빌렘 플루서 등 사진 철학가들이 썼던 글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 해설서로 쭉 써볼까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가 2008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언어학부(예술 및 문학 전공)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화: 사진, 흔적, 디지털’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연세대, 홍익대, 중앙대 등 여러 대학에서 사진철학과 영상미학을 강의했고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FSA 저서로는 ‘롤랑바르트, 밝은 방’(2018), ‘다큐멘터리의 두 얼굴: FSA 아카이브 사진’(2016·공저) 등이 있고 ‘빌렘 플루서의 매체 미학: 기술 이미지와 사진’, ‘롤랑바르트의 사진 수용론 재고’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6년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전시 기획과 현대 미술계를 은유적으로 비판한 사진들 ‘뉴 모노크롬-회화에서 사진으로’ 전시도 주목 받았다.

미국 농업안정국(FSA) 사진 프로젝트 결과물 중 기준 미달로 낙인 찍혀 구멍 뚫린 사진은 이영준 계원조형예술대 교수와 기획한 전시다. 사진의 3대 요소인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보는 사람 외에 사진을 선택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우리가 보고있는 사진은 무수히 많은 사진 중 누군가의 선택을 받은 사진이며 사진에 뜷린 구멍은 선택받지 못한, 실렉터의 흔적이라는 얘기다.

‘뉴 모노크롬-회화에서 사진으로’는 한국 현대미술계의 화두로 떠오른 단색화 혹은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작가의 성찰에서 시작된 사진이다. 멀리서 보면 사진으로 단색화를 표현했나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재미있는 사진들이다.


[email protected]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