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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돌아가다, 죽음의 허망·공포 달래다…박찬호 ‘귀(歸)’

2019.05.01

[뉴시스]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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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2017. 전라북도 부안. 뉴욕타임스 신문에 실린 사진이다. 누가 무엇을 하는 모습인지 작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한 사내가 흰 포말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바다를 향해 무언가를 뿌리거나 끌어당기는 뒷모습 때문에 수평선은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다. 흰 포말은 비단결처럼 풀려 흐르고 흰 도포자락은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홀로 선 이 사내는 하늘과 조응하고, 바다는 그 사이에서 뒤챈다. 저 멀리 새가 난다.

사진 안에 인력(引力)이 팽팽해 보는 이의 시선까지 강하게 끌어당기는 이 사진은 사진가 박찬호(48)의 작업 ‘귀(歸)’ 중 하나다.

박 작가는 30일부터 서울 종로구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 2관, 5월24일부터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6월15일부터는 광주 혜움 갤러리에서 ‘귀’를 순회 전시한다.

ⓒ박찬호. 2014, 제주 제주시, 굿-영감놀이.

‘돌아갈 귀(歸)’, 죽음을 표현하는 우리말 ‘돌아가셨다’에 잇닿아 있는 제목이다. 사진가 박찬호는 오랫동안, 살아있던 누군가가 이제 그만 ‘돌아갔다’고 한 그 지점으로 갔다. 종가 집의 유교식 제의, 입향조가 신격화되어 마을 주민들이 모시고 굿을 하는 본향당, 사찰의 다비식까지, 죽음과 마주해 이미 어디론가 돌아간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전통장례의 꽃상여를 따라나섰다.

박찬호의 무속 행위를 담은, 한국인의 눈에도 기이하고 아름다운 사진들과 작업세계는 2018년 4월 뉴욕타임스 에디터 존 오티스에 의해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둘러싼 제의를 촬영하다(Fearing Death, and Photographing the Rituals That Surround It)’라는 제목의 기사로 상세히 소개됐다. 한국사진가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박찬호. 2013, 제주도 남원, 동백나무가 있는 마을당, 조상신에게 바칠 제물을 태운 모닥불이 꺼져간다. 어디선가 동백꽃 한 송이가 떨어져 제물과 함께 타고 있다. 작가는 동백 꽃도 신에게 도달했을까 궁금하다고 말한다.

2016년 첫 개인전 ‘돌아올 귀’, 같은 해 SIPF 우수 포트폴리오로 선정된 ‘돌고 돌 회’, 그리고 2018년 전시 ‘근원을 향한 여정’ 등 작가의 사진은 시작도 과정도 죽음에 대한 시각적 탐구다. “왜”냐는 물음을 따라가보면 유년의 어느 지점에 어린 그를 두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다.

작가는 11세부터 3년동안 말기 암 환자들이 모여있었던 병실에서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호했다. 누군가 항암제라도 맞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병실 가득 울려 퍼지는 절규가 어린 그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하나, 둘, 주인을 잃어가는 침대, 죽음 그 자체보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비명이 더한 두려움으로 다가와 어린 그를 잠들지 못하게 했고 결국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14세가 되던 해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떠나야만 했다. 30대 후반에 우울증을 사진으로 벗어나고자 시작한 작업이었다.

ⓒ박찬호. 경기도 구리. 2017. 당제 지내는 제관이 신대를 잡고 액운을 물리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기에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인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억은 애써 묻어두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지만, 결국 그 기억은 ‘사진’이라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과 ‘돌아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움켜쥔 채 지난 십 여 년의 시간동안 작업에 몰두해왔다. 아니,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죽음’과 맞닥뜨려보고 싶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돌아간다’. 누군가 이승을 떠난 허망과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공포 사이에서, 돌아간다는 표현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온 곳으로 다시 간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곳은 그가 원래 있었던 곳이니, 그가 비록 여기를 떠났다 해도 덜 서럽고 덜 무서울 일이다. 어쩌면 박찬호는 죽음의 허망과 공포를 ‘돌아갔다’라는 말로 위무한 것과 같이, 사진이라는 시각언어로 우리를 혹은 그 자신을 위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박찬호. 2013. 경북 안동시 서후면

작가가 십 수 년 간 이어 온 작업을 80점의 흑백사진으로 보여주는 사진집 ‘귀(歸)’도 출간한다. 143쪽, 6만원,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류가헌 전시 개막식은 4월30일 오후 6시30분이다. 5월12일까지 오전 11시~오후 6시 관람할 수 있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는 6월6일까지, 혜움은 6월28일까지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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