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내 미술시장의 주요 화두는 '민중미술'이었다. 1970년대 단색화로 이른바 '재미'를 본 미술시장이 그 후속 기획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을 제시했다. 권력과 자본주의, 기득권에 저항하는 장르 본연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이 주를 이루는 미술시장에 또 하나의 상품으로 소환된 것이다.
민중미술은 '현실과 발언' 동인들이 이끌던 미술운동이다. 당시 화단의 풍조를 반성하며 신학철, 민정기, 오윤, 주재환, 김정헌, 임옥상, 안규철 작가 등을 주축으로 태동한 '현실과 발언'은 1980년 동산방화랑 창립전 이후 여러 차례 동인전을 열며 체제 저항적인 미술 흐름을 주도했다. 이들은 '민족미술가협회'(민미협)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민중미술은 1970년대 단색화만큼의 폭발력을 갖지 못했다. 이미 오늘날의 민중미술이 삼엄한 통제와 검열 속에 있었고, 시장은 물론,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는 비인기 장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 여만에 상황이 뒤집혔다.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시작된 '블랙리스트 정국'은 그동안 미술계에 꽉 차 있던 압력을 한꺼번에 분출시켰다. 그 중에서도 민중미술 본진에서 터져 나온 '더러운 잠'은 시장이 인위적으로 민중미술을 띄우려고 했건 것과는 대조적으로, 2017년 민중미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자발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 등 서양명화 속 여성 누드에 박근혜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이 작품은 지난달 24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 '곧,바이!'전에 민미협 소속 이구영 작가가 내 놨다가 보수단체에 의해 하루만에 훼손됐다.
논란이 격화하자 더불어민주당은 표 의원에 대해 6개월 당직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에 민미협을 비롯한 전국 56개 예술단체는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작품 훼손에 대한 사과와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구영 작가는 '더러운 잠' 후속으로 10일 '블랙'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엔 여성 누드 부분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박근혜 대통령 얼굴 대신 닭이 홰 치는 모습을 합성했다.
"블랙리스트 시국에 항거하는 점거 행위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작가를 비롯한 일부 민중미술 계열 미술인들과 "낮은 수준의 표현" 혹은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미술 비평가들, 여성민우회 등 여성 단체들의 팽팽한 논란 사이에서, '더러운 잠'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오늘날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써 민중미술이 가야할 길을 되묻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김아미 | 2017.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