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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미인도' 수난사…현대사 격랑 속 김재규 손 거쳐 檢수사까지

2016.12.20

[뉴스1] 김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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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열린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논란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발표에서 노승권 제1차장검사(왼쪽)가 진품으로 밝혀진 '미인도' 원본을 살펴보고 있다. 2016.12.1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10.26이후 계엄사가 기부채납받아 국립미술관에.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미인도 위작논란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미인도 소장 이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원 주인이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그림이 진품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인도가 천 화백을 떠나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역추적했다. 검찰은 소장이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부터 2달간 국가기록원, 육군본부, 기무사, 재무부 등 온갖 부처에 남아 있는 미인도 관련 서류를 모두 뒤졌다.

검찰에 따르면 천 화백을 떠난 미인도를 가장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은 모 정보기관 대구분실장으로 근무하던 오모씨였다.

오씨는 1977년 무렵 대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미인도를 본 뒤 천 화백으로부터 그 그림을 구매했다. 검찰은 오씨가 미술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정보기관을 그만둔 뒤에는 화랑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오씨가 구입한 미인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오씨의 부인이 김 부장의 부인에게 미인도를 선물한 것이다. 검찰은 오씨의 부인과 김 부장의 부인이 학교 동문으로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미인도는 몇 년 동안 김 부장의 서울 성북구 보문동 자택 응접실에 걸려 있었다. 이 시기 김 부장의 자택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응접실에 걸려 있던 미인도를 직접 봤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런데 김 부장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하면서 미인도의 운명도 틀어졌다.

박 대통령이 죽은 뒤 들어선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는 1980년 2월 김 전 부장 측으로부터 미인도를 기부채납받았다. 미인도를 건네받은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는 재무부에 미인도의 처리를 의뢰했다.

당시까지는 이 그림에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지만 처리를 위한 감정과정에서 '미인도'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계엄사령부가 작성한 공문 내의 증여재산목록에는 '천경자 미인도 그림'이라는 문구가 분명히 기재돼 있다.

이후 미인도는 서울 영등포 물류창고, 문화공보부를 거쳐 1980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 인수됐다. 처음 미인도를 구입했던 오씨는 이 과정에 다시 등장해 미인도를 진품으로 판단하고 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시켰다.

김재규가 박 전 대통령 시해를 이유로 사형을 당한 1980년 5월부터 미인도는 현대미술관 수장고에 10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다.

미인도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은 1990년 10월로 현대미술관이 미인도를 확대해 포스터로 만들어 판매하면서부터다. 이 포스터를 우연히 발견한 천 화백이 본인의 그림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미인도는 '위작'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미인도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부터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위작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결국 천 화백 유족 측은 2016년 5월 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7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ability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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