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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재현과 재연 틈에 갇힌 사진...이명호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2018.12.04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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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뒤에 흰 광목천 댄 'Tree' 사진으로 유명세
갤러리현대서 5년만에 개인전...신작 'Nothing But' 발표

【서울=뉴시스】Tree... #9, 2017

역발상이었다. 그리지 않고 떠내 유명해진 사진작가 이명호는 자연풍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무 뒤에 캔버스 하나 댔을 뿐인데, 그는 일약 스타 작가가 됐다.

화가가 물감과 붓으로 나무를 그린다면, 그는 진짜 나무 뒤에 흰 광목을 설치해놓고 사진을 찍는다. 미대 출신이 아닌 덕분이었다. 서울대 수학과를 다니던 그는 화가들이 나무를 똑같이 그리는 것이 이상했다. 똑같이 그리려면 사진만한게 없다. 수학과를 중퇴하고 시작한 사진은 그를 예술가로 살게했다.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0여년전 미술시장에 이명호를 각인 시킨 작품은 'Tree' 연작은 알고보면 단순하고 또 웅장하다. 일단 나무를 고르고 흰 광목(캔버스)를 나무 뒤에 댄다. 이후 사진을 찍는다. 여기까지 말로는 간단해보이지만 쉬운일은 아니다. 나무는 아무리 작아도 기본 2~3m가 넘는다. 그러려면 뒤에 대는 흰 광목, 화폭처럼 보이려면 10m는 돼야 '그림'이 된다. 나무뒤에 철골을 세우고 흰 광목천을 씌우는 작업은 마치 방송무대를 세우는 것처럼 거창하게 진행된다. 그렇게 자연에 가림막을 치면 고정관념을 깬 시공감각이 확장된다.

마치 캔버스 위에 나무 한 그루가 그려진 한 폭의 회화처럼 보여지는 인상 때문이다. 초기 사진의 역사에서 사진이 예술로서 취급 받지 못했던 이유는, 사진은 현실의 모방일 뿐, 회화나 조각이 보여주는 재현, 즉 새로운 세계의 창조이자 표현이라는 아우라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호의 'Tree' 연작은 그 논란의 지점을 건드린다. 사진 또한 ‘재현’을 담당하는 예술의 하나라는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체의 ‘재현’적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속에 담갔다가 꺼낸, 나무 한 그루 그 자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사진은 회화적인 느낌까지 재현하며, 그렇게 이명호는 유명세를 탔다.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사진 작업'이라는 평가로 프랑스국립도서관, 장폴게티미술관, 암스테르담사진미술관, 국립빅토리아갤러리등에서 작품을 소장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대표 연작인 'Tree', 'Mirage'등과 더불어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Nothing But', '9 Minutes’ Layers', 'stone……' 등 20여 점을 선보인다.

자연에 천을 대는 기법은 같다. 2004년부터 시작된 작가의 ‘사진-행위 프로젝트(Photography-Act Project)’는 진행중이다. ‘행위’를 통한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탐구이며, 동시에 ‘예술’의 역할과 본질을 환기시키는게 초점이다.

【서울=뉴시스】이명호, Nothing But #3, 2018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되는 'Nothing But'은 다대포와 서해안 갯벌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나무를 담았던 흰 캔버스는 이제 아무것도 없이 서 있다. 드러내지도 만들어내지도 않는 하얀 캔버스를 통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더불어 전시장 한 켠에는 이미지 채집에 대한 욕망과 허망을 다룬 또 다른 신작 '9 Minutes’ Layers'이 1분 단위로 촬영된 기록 사진과, 그 10점의 RGB 값이 쌓여 마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과 같이 하얀 잉크로 이루어진 결과물로 나뉘어 선보인다.

이명호의 나무가 나무였고, 이명호의 신기루가 신기루였다면, 작가가 'Nothing But'으로 내민 하얀 캔버스는 자신이 가리키는 대상이 어떤 것도 아님과 동시에 모든 것일 수도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비친다.

신기루(Mirage)연작도 전시됐다. 사막, 툰드라와 같은 지역에 엄청난 길이의 캔버스를 펼쳐놓은 광경을 보여준다. 몽골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아라비아 사막, 러시아의 툰트라 초원 등지에서 이루어진 촬영에서 수백 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캔버스가 펼쳐진 후, 그곳으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져 촬영이 이루어지는데, 결과적으로 작가는 불모의 땅 저 너머에 생명의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 혹은 오아시스가 존재하는 듯한 순간을 만들어내었다.

전체 사진 안에서 펼쳐진 캔버스의 너비는 매우 사소한 부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사소한 부분이 'Mirage' 연작의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고달픈 현실의 시공간을 희망의 순간으로 뒤바꾸는 것은, 결국 그러한 사소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이명호 Mirage #5_Patagonia, 2012

이명호의 작품은 온전한 현실의 드러냄을 지향하는 'Tree' 연작과 신기루와 같은 비현실의 만들어냄을 의도하는 'Mirage' 연작의 아이러니한 관계가 흥미롭다. 캔버스를 펼쳐놓는다는 한가지 방식을 통해 사진작가 이명호의 특유의 서정적 분위기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개념적으로는 정반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이명호 작품은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사진 작업으로 알려졌다. <사진비평상〉(사진비평상위원회, 2006), 〈내일의 작가상〉(성곡미술관, 2009)등을 수상하며 탄탄한 입지를 쌓아왔고, 요시밀로갤러리(Yossi Milo Gallery, 뉴욕, 2009/2017), 성곡미술관(서울, 2010), 갤러리현대(서울, 2013/2018), 사비나미술관(서울, 2017)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념 《Player Project》, 한국교직원공제회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 감상 공익 캠페인 《감각을 깨우다》, 프랑스 샤또라호크(Château Laroque) 및 샴페인 드라피에(Champagne Drappier)와의 협업, 라이카(Leica) 및 국립문화재연구소 홍보대사 등 전시 외 예술의 활용과 참여 등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갤러리 현대 전시장 1층에는 이명호의 대표 연작인 'tree' 3점이 있다. 지난 2013년 갤러리현대 전시 이후 제작된 작품들로, 제주도의 오름과 억새 밭을 오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2016년에 촬영된 'tree… #8' 의 경우, 이번 전시에서 9개의 대형 캔버스 구성된 대형 설치 작업으로 구현되어, 작가가 억새 밭에서 촬영하는 과정 속에서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전한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이명호의 또 다른 대표 연작이자, 비현실 세계로 이루어진 'Mirage'연작 3점이 검은 공간 안에서 전시된다.

그와 대조되는 하얀 공간에서는,기존의 수평적 시선에서 벗어나, 수직의 시선으로 이끼 밭에 놓인 돌과 그 흔적을 촬영한 'stone……'연작 4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안쪽에는 지난 여름 프랑스 생떼미리옹에 위치한 샤또라호크(Château Laroque) 와이너리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와인 라벨 프로젝트 'Vine…#1_Château Laroque'와 그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이 함께 소개됐다.

21세기 10년이면 강산도 몇번 변한다. 이명호의 10년 작업 ‘예술-행위프로젝트’도 LTE급 시대 유효기간이 짧은 탓일까. 신선했던 그의 사진도 '재현과 재연'의 틈에 갇힌 듯, 이번 전시 타이틀 처럼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가 되고 있다. 전시는 2019년 1월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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