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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故 류경채 화백 "추상은 마음에 비치는 심상의 에센스"

2016.12.28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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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류경채, 계절 63-5, 1963, 캔버스에 유채, 116.5x91cm

■ 26년만에 회고전…현대화랑 1월 5일 개막

“내 그림은 살 사람도 없지만, 팔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그림일로 안색을 바꾸는 일도 싫고, 돈 받으려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죽기보다 더 싫다. 차라리 한 끼를 굶는 것이 뱃속이 편하다.”

그의 제자 유희영 화백은 스승이 '작가 노트'에 쓴 이 말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림을 통한 경제적 관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좀처럼 개인전을 갖지 않으셨지요. 전시에 나갈 작품이 없어서만은 아니었고 의무적으로 수십 점 진열한다는 일 자체가 그 분에게는 부담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그는 생전 두 차례(1983년,1990년)의 개인전만 열었다. 2~3년에 한번씩 작품을 발표하는 화가들의 행보와는 다른 면모다.

【서울=뉴시스】류경채, 날 84-5, 1984, 캔버스에 유채, 130x97cm

유 화백은 이러한 스승의 모습을 "완벽주의에서 오는 극도의 신중함"으로 봤다. 그는 "작업에 임하는 자세가 얼마나 엄격하고 순수 지향적인 면모를 지녔는지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라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로서 일련의 서양추상과 대면하면서도 여러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본인의 작품세계를 더욱 견고히 구축했다는 점은 스승을 떠나 미술계 선배로서도 존경스럽다"고 회상했다.

추상화가 고 류경채 화백(1920~1995)의 개인전이 26년만에 열린다.

1990년 현대화랑에서 개최된 이후, 다시 현대화랑에서 류 화백을 불러냈다. 새해 1월 5일부터 1960년부터 1995년까지의 35년간의 작품중 골라 회화 30점을 선보인다.

【서울=뉴시스】류경채, 축전 91-4, 1991, 캔버스에 유채, 134x134cm

고 류경채 화백은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1957년에 결성된 창작미술협회에 참여하여 한국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1961~1986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87~1989년까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요절 천재 조각가' 류인(1956~199)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김환기 화백과 더불어 최초의 ‘서정주의 추상화가’로 한국적 추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힌다. 1940~1950년대 작품에서 자연주의적 화풍을 통해 단순한 재현이 아닌 서정성이 높은 작품을 선보인후, 60년대에 이르면서 조형적 재해석의 결과인 반추상 작품으로 전환했다. 이후 80년대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로 들어서 단순 명쾌한 작품을 담아냈다.

이번 전시 서문을 쓴 김희영 국민대학교 교수는 "류경채는 추상 언어를 독자적으로 구축하였으나 한국미술사의 기록 안에서는 제1회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가라는 언급에 그치고 있다"며 "아마도 작가가 특정 시기의 지배적인 회화 양식에 경도되기 보다는 독자적인 추상 언어를 찾고자 노력하였기에 그의 작업을 집단적인 창작 경향과 연계하여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부분적인 이유가 될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류경채, 비원 80-2, 1980,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이번 회고전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작가가 자율적인 미적 논리를 꾸준히 모색했던 궤적을 되돌아보면서 한국 전쟁 이후 한국 추상회화가 전개되는 과정을 회고하게 되는 의미있는 자리입니다."

당시엔 '앵포르멜(Informel)그림'으로 불리던 한국의 추상미술이, 느닷없이 '단색화'로 변신한 '한국 추상미술'이 단순히 '단색화'라고만 할수 없다는 것을 류경채 화백의 그림이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적 화풍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단순히 재현적 사실이 아닌 조형적 시각에 의한 재해석의 서정성이 높은 작품을 구사’해 왔다. 초기 작품은 구상에서 비구상을 거쳐 후반에는 완전한 추상을 구현한 양식의 점진적인 변천 과정을 보여주지만, 작품의 근간에서는 ‘자연과의 원천적인 교감’을 추구한 점이 주목된다.

【서울=뉴시스】고 류경채 화백은 고 김환기 화백과 더불어 최초의 ‘서정주의 추상화가’로 한국적 추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히힌다.

사각형과 원, 모서리에서 작게 진입하는 예각의 삼각형 형태가 주된 구성을 이루며 제한된 색채의 강한 대비에서 정사각형을 꽉 채운 큰 원으로 구성된 기하학적인 화면도 시도되었다. 1960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추상 실험은 이후 35년 간 다양한 구성과 색채를 탐구하면서 1990년대에 단순한 기학학적인 색면추상에 이르렀다.

류경채 화백은 생전 추상에 대해 "추상은 마음에 비치는 심상의 에센스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제자이자 '색면 추상화가' 유희영 화백은 "가로 세로의 기본적인 구성만으로 화면을 구획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자연 음률의 깊은 울림을 담아내고자 애쓰셨다"며 온화했던 표정의 류 화백이 남긴 말을 전했다.

“저는 원래 그림을 빛으로 형상화한 시이자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마음속에서 시처럼 읊으면 이내 그 소리가 빛으로 떠오르고 이를 화폭에 그립니다. 그 빛의 소리를 직접 들려주기보다 하나의 울림처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얀색으로 보일 듯 말 듯 가려보았지요.” 전시는 2017년 2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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