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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판빙빙도 반한 '향불 작가'…한국화의 실험은 계속된다

2016.11.30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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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가는길,스쳐지난길004.순지에 향불, 장지에 채색한지, 신문 한지에 프린트, 꼴라쥬, 배접, 코팅.80X80cm, 2016 (선화랑 제공) © News1

한국화가 이길우 30일부터 선화랑 개인전.

지난 8월 한국화가 이길우 씨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초상화를 그려 전달했다. 향불, 연필인두로 한지를 태우고 여러 겹의 이미지를 중첩, 배접하는 그의 독특한 작업방식을 본 모하메드 알 무자디디와 알 왈리드 왕자가 그에게 자신의 초상화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지난해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서 대형 압사 참사를 겪은 사우디 국민들에 대한 왕자의 위로와 헌신이 한국화가의 향불작업과 일맥상통한다며 흥미로워했다는 게 이길우 작가의 설명이다.

이길우 작가에게 '향불' 초상화를 의뢰한 건 사우디 왕자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중국 베이징에서 작가의 개인전을 본 중화권 톱여배우 판빙빙도 그에게 향불 초상화를 주문했다. 한지를 태워 미세한 점들을 남기고 그것이 하나의 군집을 이뤄 형상을 만들어 내는 그의 작업에 해외 유명인사들이 먼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198302, 순지에 향불, 장지에채색, 꼴라쥬, 배접, 코팅, 172X216cm, 2016 (선화랑 제공) © News1

새로운 한국화를 꾸준히 모색하고 있는 이길우 작가가 30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번에는 풍경이 위주다. 경기도 안성 시골마을에 위치한 작업실과 수원 영통 신도시의 자택을 오가며 보고 들은 풍경들을 주로 담은 근작 25점을 선보인다. 그래서 전시 주제도 '오고 가는 길, 스쳐 지난 풍경'이다.

작가가 '향불작가'가 된 건 10여년 전부터다. "늦가을 어느날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은행나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마른 잎들이 역광 때문에 까맣게 그을린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하늘이 한지고 그것을 마치 향불로 태운 것처럼 보였죠."

종교가 불교는 아니지만 향불에 담긴 종교적인 의미도 그의 마음에 와닿았다. "정화의 의미도 있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의미도 있다고 들었어요. 향불로 태워 소멸시킴으로써 작품이 생성되는거에요. 꼭 종교적이어서라기보다 기법적으로 향불을 쓰게 된 거죠."

이길우 작가에게 중국 여배우 판빙빙이 직접 주문해 만들어진 판빙빙의 초상화 (선화랑 제공) © News1

이번 전시에서는 선보인 작품들은 일상의 풍경을 그렸지만 추상적인 요소가 강하다. 작가는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시서화'(詩書畵)가 어우러지는 전통 한국화는 그의 화폭에서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됐다. '멈춰선 자리 바람불어 물을 흘려보내고 그 안에 검푸른 이끼는 억지로 떨쳐내기 힘들어 물을 살찌게 한다…' 같은 자작시 구절이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채 화면 한 가득 채워져 있다.

"작업을 하면서 혼자 있는 고독한 시간을 즐기는 편이에요. 남들은 힘들고 외롭지 않느냐고 하지만요. 오래된 물속 바위에 붙어 있는 이끼는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떨치기 힘들잖아요. 찌든 잔존물조차 시간의 흔적이니까요. 저의 고독을 그에 빗댄겁니다."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하며 2000년대 초 박선기, 김동유 작가 등과 이른바 '코리안 팝아트'로 꼽혔던 한국화가지만, 그의 작업은 전통 한국화에 근간한다. 중앙대학교에서 한국화를 가르치고 있는 그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전통과 기본이다. "전통적인 기법을 제대로 알고 가는 게 중요해요. 전통을 알아야 더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죠."

이길우 작가. © News1

그는 서양화와는 다른 한국화의 매력을 '깊이'라고 했다.

"모필을 다루는 건 오랜 연마가 필요해요. 붓을 쓰는 방법이나 먹을 가는 행위 등에서 한국화 재료들의 깊이가 나오죠. 한지를 만드는 제작 과정 역시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섬유질을 채취해서 추운 겨울 흐르는 물에 담궈 며칠을 정제하고, 또 그걸 잿물에 담그고…. 그 깊이감은 서양의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화가 서양화에 비해 덜 주목받는 현실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요즘 세태가 그렇잖아요. 깊이보다 눈에 도드라지는 것,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더 주목하죠. 한국화의 깊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워요."

전시는 12월13일까지.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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