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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이명옥 "개성있는 사립미술관, 이제 정부가 지켜줘야"

2016.10.19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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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 인터뷰. 2016.10.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한국의 아트파워 ②] 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장.

이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미술품유통법)을 내놓기까지 과정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이다. 위작 거래 등 한국 미술계의 오랜 폐단에 대한 이 회장의 거침없는 직언이 정책에도 반영된 것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을 20년 넘게 운영한 그는 2011년 한국미술관협회의 전신인 한국사립미술관협회의 제3대 회장에 취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운영 자문위원,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 대표 등 외부 활동과 관련한 직함도 20여개 쯤 된다. 물론 화려한 컬러의 의상, 머리엔 늘 스카프나 두건을 하고 있는 그는 튀는 외모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 이 회장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최대 히트작은 2003년 명화 속 악녀들의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푼 책 '팜므파탈'(Femme Fatale)이다. '팜므 파탈'이라는 용어를 대중 언어로 끌어들인 이 책은 2005년 한국번역문화원의 '한국의 책 96'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 '그림 읽는 CEO' 등 30권 가까이 책을 냈다.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있는 이 회장을 지난 12일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났다. 인터뷰 전부터 "여자니까 나이는 '노코멘트'(No comment)하자"는 그는 나이는 물론 개인사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주목 받는 게 부질없고, 또 대단한 스토리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하는 게 개인적으로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미술관 관장으로서 남들이 하지 않은 것, 늘 새로운 전시를 하려고 노력해 온 그지만 "이젠 터닝포인트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안국동 전철역에서 2분 거리, 시내 한복판 역세권이라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가진 미술관이지만 "차라리 세를 줬으면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것"이라며, 미술관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 인터뷰. 2016.10.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최근 정부가 '미술품유통법'을 내 놨다. 사적 영역으로만 존재했던 미술시장에 공적 규제가 들어온 건데.

▶그동안 시각예술 분야와 관련된 규제는 거의 없었다. 사실 우리 미술판이 지난 20년간 변한 게 없다. 그런데 법이 생기면 위작 등 그동안 암암리에 이뤄졌던 것들이 아무래도 막히게 될 거다. 그런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유통과 관련해서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개인사가 거의 노출이 안 되는 것 같다.

▶워낙 사적인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20여년 전 미술판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외모도 그렇고 하는 짓도 워낙 튀고 그래서 주목도 많이 받고 시달리기도 했는데,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뭔가 대단한 스토리가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던가, 드라마를 만들려고 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불편하더라.

-그래도 과거 이야기를 조금 해 준다면.

▶1996년 갤러리사비나로 시작했다. 그 전에도 전시 기획이나 미술품 컬렉션을 하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미술에 뛰어든 건 이때부터다. 미술관 아니면 작품 판매를 하는 화랑 밖에 없던 시절, 주제를 갖고 기획전을 여는 독특한 콘셉트의 갤러리였고, 그런 부분들이 많이 화제가 됐다. 그러다가 2002년 미술관을 시작했다.

-갤러리사비나는 어떤 곳이었는지.

▶미술관과 상업화랑의 중간 지점 쯤에 있었다. 공공성이 큰 화랑이었다. '물의 풍경'전, 숲으로 가는 길'전, '날씨'전 등 판매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전을 주로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대안공간에 가까웠다.

-기획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금은 주제전, 기획전이 보편화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주로 '한국의 현대작가'전 같은 전시가 대부분이었다. 영화는 장르를 골라보면서 전시는 취향대로 골라볼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확실하게 주제를 갖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발소 그림'전, '교과서 미술'전, '오감'전, '띠'전 등 신생 갤러리인데도 새로운 것,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봤다. 요새 유행하는 융복합 전시도 10여년 전 사비나에서 했던 것들이다. 일단 새로운 것들은 시도하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기획전을 다들 많이 하니까. 남들도 다 하면 이상하게 재미가 없어지더라. 내 기질 자체가 남이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는 것 같다.

-전시는 늘 성공적이었나.

▶예산이나 인력이 많았다면 완성도가 높았을 텐데, 규모가 못 받쳐주니까 시도는 열심히 했지만 열매를 못 맺었던 것 같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 사비나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수확하는 것 같다(웃음). 트렌드를 빨리 읽어서 새로운 걸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구글아트프로젝트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국공립도 안한 것들을 최초로 시도한 게 많았으니까. 사실 2010년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도슨트'도 특허를 내려고 신청했었는데 반려된 적이 있었다.

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 인터뷰. 2016.10.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미술관 운영도 생각해야 하질 않나.

▶그래서 고민이다. 전시 기획만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볼거리는 물론, 즐길거리도 있어야 하고, 차도 마셔야 하고, 휴식공간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런 곳으로 몰리니까. 사비나만의 색깔도 있고, 마니아 관람객들도 있지만 전시만 보는 공간이라 힘든 건 사실이다. 이 공간에 갑자기 식당을 낼 수도 없는 거고. 지금이 '터닝포인트'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어디 변두리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입장료 수입으로는 전기요금 밖에 안 나온다. 언제까지 이 소모적인 걸 해야 하는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미술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이다.

-재정적으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가.

▶공공기금 외에는 기댈 데가 없다는 거다. 그나마 공공기금은 1년 단위로 끊어진다. 올해 받았지만 내년에 또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늘 불안하다. 기업 협찬도 쉽지 않다. 왠만한 기업은 다 자체 미술관을 갖고 있고, 또 기업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결국 나중에 갚아야 하는 빚이다. 미술관 관장이라는 게 겉은 근사해 보이지만 속은 타들어간다. 결국 외부 강연도 하고, 책도 팔아서 사재를 털어넣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들이 많이 생겨나는 추세이지 않나.

▶미술을 구색으로만 갖추고 돈을 벌려는 목적이 더 큰 미술관들도 있는 것 같다. 다른 목적으로 미술판을 기웃거리는 게 못마땅하기도 하다. 컬렉션도 좋고, 전시 기획력도 좋은데 '고객 서비스'까지 좋다면 좋겠지만, 미술을 상업 수단으로만 전락시킨 건 불쾌하다. 최소 20년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미술관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미술관이 전시 기획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시대흐름이 요구하는 무언가를 병행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답이 없는건가.

▶화랑과 달리 작품 판매가 금지된 사립미술관의 경우 미술관 등록할 때부터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은데, 정작 등록을 하고 나면 알아서 하라는 식이 되는 거다. 그런데 국공립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사립미술관들도 많다. 특히 잘하는 미술관들, 개성강한 사립미술관들은 정체성을 지켜주면서 공적자금도 수혈해줘야 한다. 대신 평가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 제안하고 싶은 것도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미술관을 새로 지으려고 할 게 아니라, 인프라를 잘 갖춘 기존의 사립미술관들로부터 컬렉션을 기증받고, 운영권을 주는 방식이다.

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 인터뷰. 2016.10.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또 새 책을 낸다고 들었다.

▶이번에는 시(詩), 소설, 영화를 접목한 책이다. 9월 말 탈고했고, 12월 말 쯤 출간 예정이다. 책 이름은 아직 못 정했다. 어린 시절 꿈이 시인이었고, 그 다음이 화가였다. 하지만 재능은 없었다(웃음). 신춘문예도 몇 번 시도했는데 떨어졌고, 그림도 못 그렸다. 대신 경영은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순발력이 좋은 편이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사실 미술계에선 아이디어를 얻을 게 별로 없다. 거의 다른 쪽에서 얻는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미술계 분들이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순발력은 부족한 것 같다. 관객들의 성향에 대한 분석이랄까. 작가는 차치하고라도, 갤러리스트, 전시 기획자들은 관객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은 죽을 지경일 거다. 관장이 귀신이라도 씌인 것처럼 만날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니.

-쉴 틈이 없어 보인다.

▶계속 새로운 걸 하려다보니 지난 20여년 간 너무 힘들었다. 안 하면 좋겠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까. 몸은 쉬는데 머리가 쉬지 않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밤에도 계속 머리가 움직인다. 그런데 어쩌면 새로운 걸 찾겠다며 '방방 뜨는' 걸 책 쓰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 관장)이 현재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바디 페인팅 아티스트 엠마 헥 전시 의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했다. 2016.10.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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