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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어쩌다 이 지경까지…” 간송, 서화 대신 불상 내놓은 까닭은

2020.05.21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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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재단, 상속세·살림 등 재정 어려움 속 30억대 보물 2점 경매에…“국가 위기 때 간송이 구한 우리 문화재 생각하니 가슴 아파”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사진제공=케이옥션

서울 대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간송 전형필(1906~1962)은 평생 문화재를 수집했다.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 문화재라면 돈이 얼마가 들든 가리지 않고 사들였다.

훈민정음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인 1000원에 10배에 해당하는 1만원을 주고 사 ‘훈민정음’의 정당한 가치를 보존하려 했고, 일본 거상으로부터 고려 최고 상감청자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 거금 2만원을 들여 구입했다.

그렇게 간송은 가진 돈 전부를 문화재 구입에 썼다. 하지만 광복 이후 간송은 문화재를 모으지 않았다. 해방 후의 문화재는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을 거라는 기대때문이었다. 그가 58세에 급성신우염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간송의 금전적 지원을 받지 않은 예술인은 거의 없었다.

한국 문화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원투수처럼 등판해 우리 문화를 지킨 간송미술관이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두 점을 내놓는 사상 초유의 일을 단행했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71년 간송미술관으로 개명)으로 문을 연 지 82년 만의 일이다.

오는 27일 케이옥션을 통해 경매에 출품되는 간송의 소장품은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과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이다. 청동에 금을 입힌 작품으로 보물 제284호와 285호로 지정됐다. 작품 경매가는 15억원씩 모두 30억원으로 추정된다.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 통일신라 조각 양식의 전환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양식상으로 매우 중요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유일한 신라지역 출토 불상인 금동보살입상은 백제 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봉보주보살상과 일본 초기 불상이 형성한 교류 속에 영향을 끼친 특별한 가치의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유출될 뻔한 서화, 도자기, 고서 등 국보급 문화재 5000여 점을 수집하며 “문화를 통해 나라를 지킨다”는 문화보국 정신을 확립했다.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켰지만, 간송 사후엔 빚쟁이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간송이 생전에 자기만 바라보고 예술활동을 하던 예술인과 단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빚까지 내 도와줬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그 빚은 (지금의) 종로4가 광장시장 맞은편에 위치한 집을 팔아 해결했다.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 /사진제공=케이옥션

간송미술관의 최근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2년 전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타계로 문화재를 승계한 이들에게 부과된 막대한 상속세와 정부 지원 한 푼 받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려던 어려운 살림(입장료, 수리비, 연주자료 발간비 등 자체 해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간송재단 한 관계자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면서 “그나마 자존심을 지킨 건 간송의 대표적 수집품이 서화나 도자, 고서인데 이를 내놓지 않고 4건밖에 없는 불상을 경매에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송미술관의 존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이번 일이 우리 사회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지 모른다”며 “우리 민족 유산 전체로 보면 정부든 민간이든 살려낸다는 공감대가 있으면 (간송미술관이) 살아낼 것이고, 아니면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신관 등을 새로 추진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보물을 내놓을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다”며 “간송미술관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가 주시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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