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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미술이 된 문장이 어루만지는 상처…제니 홀저 展

2019.12.05

[뉴스1] 이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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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당신을 위하여: 제니 홀저'전…내년 7월5일까지
한강·김혜순 등 작가 글 발췌한 작품도 서울관에 전시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가 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전시된 작품 앞에 서있는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나는 단지 예술계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언어를 선택했다."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 69)의 말이다. 텍스트를 매개로 이뤄지는 그의 작업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그는 격언, 속담, 잠언 같은 형식으로 역사, 정치, 사회 문제를 대중들과 논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다.

4일 만난 홀저는 "추상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끔찍하게 실패했고, 이후 아주 명확하게 (의미가) 드러나는 콘텐츠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러나 둘 사이의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타인과 직접 의사소통되는 매개체인 언어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홀저는 티셔츠, 모자 같은 일상 사물부터 석조물, 건축물, 자연 풍경에 언어를 투사하는 초대형 프로젝션까지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지속했다.

그 결과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을 대표하는 첫 여성작가로 선정된 데 이어 황금사자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제니 홀저 '당신을 위하여', 로봇 LED 사인, 640.1x12.7x12.7㎝, 2019.© 뉴스1 이기림 기자

그런 홀저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관 로비 벽면에는 언어를 매체로 탐구하기 시작한 홀저의 초기 작품 '경구들'(Truisms)(1977-1979)과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1977-1982) 포스터가 설치됐다.

작품은 '선동적 에세이' 시리즈 25개 중 각기 다른 색상으로 구현한 12가지 포스터와 '경구들' 시리즈에서 발췌한 문장 240개를 인쇄한 포스터 등 총 1000장이 넘는 포스터로 구성됐다.

한글로 된 작품도 최초로 설치됐는데, 함축적인 작가의 언어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소설가인 한유주 번역가 등 전문가들과 안상수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등이 협업했다.

서울박스에는 전시명과 동일한 작품인 '당신을 위하여'(FOR YOU)(2019)가 설치됐다. 길이 6.4m의 직사각형 기둥 면을 둘러싼 LED 화면 위로 홀저가 선정한 작품 텍스트가 흘러가는 작품이다.

작업에는 여성 문학가 한강, 김혜순, 에밀리 정민 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호진 아지즈의 글이 발췌됐다. 글을 통해 차용된 여성 화자들의 목소리는 전쟁의 폭력, 정치적 억압 혹은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니 홀저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거나 아프게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것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삶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작가 마티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나와 타인을 걱정하게 하는 것들, 특히 착취당하는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니 홀저, 경구들에서 선정된 문구들(국문), 2019, 석조 난간 조각.(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뉴스1

과천관의 석조 다리 위에서는 홀저가 선정한 11개의 '경구들에서 선정된 문구들' 설치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홀저는 "오랫동안 회자돼왔고 모두가 호불호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들이면서 고요하다"며 "사람들이 아주 우연히 경구를 만나게 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했다.

홀저의 작품 앞에 서서 문장을 읽고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번역해도 좋다. 그저 앞에 서서 흘러가는 문장들을 느껴도 좋다. 그 자체로 미술관은 상처 받은 사람과 상처 준 사람이 화해하고 하나가 되는 장소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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