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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아트스페이스HOSEO <정희경작가 10.2411.07>

2018.10.30

Writer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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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경 작가 "속삭있는 빛"

2018. 10. 24 (수) ~ 11. 07 (수)
아트스페이스HOSEO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9 1층 )
월-토 10am-6 pm 일요일휴관
  
날개가 품은 빛과 치유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정희경의 그림은 어두운 배경을 뒤로 하고 커다란 알 혹은 날개의 형상을 한 형태가 부유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전적으로 색이 우선한다. 화면을 색을 지닌 면이 분할했고 공간은 색으로 칠해졌으며 색의 농도와 명암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이다. 단색으로 칠해진 단호한 면과 작고 조심스레 찍힌, 칠해진 색들이 위태롭게 공존한다. 더불어 화면은 단호하게 구획되었다. 그림은 대체로 화면 중심부에 설정된 밝은 공간과 그 주위를 감싼 어두운 공간으로 나뉘어져있다. 공간을 분절하는 선은 유기적인 곡선으로 더러 날카로운 기하학적 선으로 이루어져있다. 타원형으로 절개된 화면은 하나 혹은 두 개의 화면이 만나 한 쌍을 이루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게 겹쳐진 화면은 마치 날개나 하트 형상, 혹은 만다라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어둠을 배경으로 앞으로 돌출하는 듯도 하고 경계가 흐릿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내부에 만들어놓은 공간은 흡사 달처럼 환하게 부풀어 올라 팽창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 안에는 불분명한, 차마 재현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반복해서 칠해지고 겹쳐져 있다. 작은 것들이 아주 희박하고 섬세하며 조심스럽게 채워져 있다.
작가에게 이러한 형태는 매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믿음에 의해 설정된 영역인데 쉽게 말해 천사의 날개이고 치유적이며 보서의 공간을 암시한다고 한다. 신의 영역 같은 것일까? 작가는 자신이 그려놓은 공간 안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고 진정한다. 그러니 이 작가에게 그림은 구원 같고 적극적인 자기 치유의 행위인 셈이다. 저 커다란 날개가 자신을 사랑으로 품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자신은 크고 밝은 날개 안에서 보호 받고 싶고 안정을 취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 사랑 안에 은거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종교인으로서의 인식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천사의 날개 아래 있으면 항상 평안하고 안락하다는 것을 그린 것이다. 병아리가 즐겁게 놀다가 위협을 느낄 때 어미 닭의 날개 아래 숨는 것처럼 그 날개 아래는 늘 평안하고 따뜻하고 안락한 곳이며 그 곳에서 쉴 때 새 힘을 얻어 새롭게 살 양분을 얻는 곳이므로 평안함, 따뜻함과 즐거움 기쁨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시도해 보았다.”(작가노트)
캔버스에 물감(유화, 아크릴)과 여러 도구(다양한 붓, 스폰지, 쑤세미 등)를 활용해 만든 흔적들이 모종의 회화를 만들어 보인다. 그것은 붓질과 동시에 압력을 가해 자신의 온몸으로 화면을 누르고 미는 여러 제스처를 반영하는 작업이다. 이런바 신체의 흔적, 행위의 결과물이 그림이 되었다. 그 행위는 주어진 화면 안, 프레임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작가는 다시 화면 안에 또 다른 공간을 설정하고 그 내부를 채워나간다. 특정 형태 안, 테두리 내부를 화사하고 영롱한 색채와 환한 빛으로 물들이듯 장식을 한다. 식물의 형태를 닮은 자취들이 꽃가루처럼 부유하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화면 안에서 외부세계를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날 수 없다. 물감으로 칠해진 면과 붓 자국, 물감이 흐르고 튕겨지고 찍힌 자취들만이 풀처럼 무성하고 꽃처럼 감각적으로 피어있다. 이런 그림을 우리는 흔히 추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희경의 그림 안에는 추상과 함께 구상적인, 재현적인 욕구도 공존한다. 날개와 하트, 풀과 꽃을 연상시키는 형태, 형상은 모방이나 재현은 아니지만 형태적으로 유사한 대상을 부단히 떠올려준다. 따라서 그림을 보는 관자들은 자연스레 친숙한 형상을 통해, 무언인가가 떠오르는 형태 안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밝음과 어둠으로 극명하게 분할된 화면은 또한 단색으로 단호하게 칠해진 화면과 스폰지나 붓질로 이뤄진, 자잘한 흔적과 다양한 색채로 가득한 회화적 공간으로 구분된다. 다분히 이원론적인 화면구성이 인상적이다. 단색의 색면 추상과 무수한 몸짓을 반영하는 몸짓과 감정의 파고를 암시하는 영역(다양한 색상으로 이루어진)이 공존하고 있다. 다채로운 색채는 무수한 인간관계, 타자와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의 망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작업 할 때 최대한 많은 색을 쓰려고 노력한다. 마치 많은 빛을 품은 무지개처럼. 그 무지개의 많은 빛 들은 희망을 노래하듯 나의 작품에도 많은 빛들이 희망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품어내길 염원하면서...”(작가노트) 

이처럼 작가의 화면은 정적인 영역과 동적인 영역, 외부와 내부, 밖과 안, 두려움과 안정, 단색과 다색, 강함과 유약함, 차가움과 따뜻함 등이 함께 하고 서로 길항한다. 추상과 구상적인 요소의 공존도 그렇고 선과 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등등 정희경의 그림은 상극적인 요소들이 공존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부드러움과 밝음과 유연함으로 밀고 나간다. 짙고 단호한 어둠으로부터 부단히 밀고 올라오면서 가볍게, 더없이 가볍게 떠오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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