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개요
학고재는 2020년 11월 25일(수)부터 12월 27일(일)까지 《춘추 IV. 황중통리黃中通理: 김종훈 도자》를 연다. 김종훈은 20여 년 동안 정호다완을 연구하고 제작하며 한국 도예의 맥을 이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종훈이 최근 3년간 제작한 정호다완 75점과 분인다완 3점, 백자 대호 6점을 선보인다. 더불어 조선 시대의 다완 3점과 달항아리 1점을 함께 전시한다.
학고재는 학고창신(學古創新)의 실현을 목표로 기획한 ‘춘추(春秋)’ 전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2010년 《장왕고래(章徃考來)》와 2015년 《추사와 우성》전, 2016년 《함영저화(含英咀華)》전에 이어 이번 전시가 네 번째다. 과거 3번의 전시에서는 우리 고서화와 현대의 회화, 조각, 서예, 중국 고 문물 등의 작품을 선보였고, 이번 전시에서 17~18세기의 고 도자기와 현대 김종훈 작가의 찻사발과 항아리 두 종의 작품으로 전시를 꾸몄다.
주역 곤괘에 따르면 땅의 아름다움을 ‘황중통리’라는 말로 표현했다. 내면의 지성을 갈고닦아서 이치에 통달하는 마음 자세를 말한다. 생각과 감정이 한 덩어리로 순수해져서 잡다한 생각이 제거된 이상적 내면 상태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곧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과 행위의 아름다움을 이루어낸다. 주역은 이것을 ‘황중통리’라 했다. 황중이란 내면의 응축된 황색, 곧, 땅의 색을 말한다. 조선 시대를 대변하는 18세기 백자 달항아리 1점과 김종훈 작가의 백자 항아리 6점도 함께 선보인다.
- 전시 주제
언 컨택트 시대에 더욱 강조되는 전통성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회고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했다. 차를 즐기는 것은 과거 선비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한 생활 문화이다. 차를 즐기는 데 있어서 다기들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 동적인 생활보다 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면서 차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 시점에 고 도자와 김종훈 작가의 정호다완 및 백자 항아리를 함께 펼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전시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숲에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시도다.
자신만의 사유로 해석해낸 김종훈의 정호다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사발과 정호다완은 생김새가 비슷하여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정호다완은 14~16세기 제작되었다면, 우리가 흔히 막사발이라 부르는 도자기들은 17~19세기 임진왜란 이후 제작되어 서민들이 사용했던 도자기를 총칭하는 말이다. 김종훈 작가가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찻사발(다완)은 현재 일본에서 극진히 대우받고 있는 약 20여 점의 국보 및 보물급과 민간 유력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300여 점의 다완들을 15년에 걸쳐 수십 차례 일본에 방문하여 실사하고 내면에 용해하여 그것에서 얻어진 이해를 통하여 구현한 작업이다. 일부의 작품에선 과거의 정호다완에서 보이는 석열과 빙열, 유약의 뭉침이 다시 재현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을 따라 만든 것이 아니다. 과거 정호다완을 만들었던 사기장의 마음과 생각을 받아들여 내면에서 곱씹고 정제하여 밖으로 쏟아낸 결과물이다.
- 전시 서문
황중통리(黃中通理)
학고재 전시 기획실
「군자는 황색으로 안을 채우고 이치에 통달(黃中通理)하여 바른 자리의 중심에 선다.
아름다움을 내면에 길러서 온몸에 펼치고 사업에 뻗어나가게 한다.
미(美)의 극치라 하겠다!」
주역 곤괘에 나오는 말이다. 학고재 ‘춘추’ 4번째 주제를 황중통리로 잡았다. 곤괘는 땅을 상징하는 괘다. 사람에 있어서는 여성을 상징하고 어머니를 상징한다. 땅은 끝 모를 두터움으로 산천초목을 싣고 살린다. 어머니는 가 없는 사랑으로 자식을 낳고 기른다. 주역은 그것을 충만한 황색이라 했다.
황색은 땅의 정색이다. 학고재는 조선 전기 16세기에 만들어진 우리의 정호다완(井戶茶碗)이 한없이 깊고 끝없이 두터운 대지의 색을 머금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뒤로한 채 오직 자식만을 위하는 어머니의 덕이 그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동안 그 가치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참으로 아쉽다. 소홀히 취급한 탓일까. 이때 만들어진 정호다완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마저 모두 일본인 손에 있다. 국내엔 전무하다. 제작된 도요지와 확실한 용도도 아직 합의된 정설이 없다. 연구하고 자리매김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이번 전시에 전성기의 정호다완은 출품하지 못했다. 대여해올 방법이 없었다. 다만, 그와 연관성이 있는 작품 3점을 출품하는 것으로 위로를 삼을 뿐이다.
전통의 가치는 그것이 창조의 뿌리가 된다는 데에 있다. 도예가 김종훈 선생은 이 시대 어둠으로 남아있는 도예계의 한구석에 등불을 밝힌 분이다. 도예 작업에 발 들인 날부터 지난 20여 년 동안 정호다완을 연구하고 제작해왔다. 일본을 이웃처럼 드나들며 중요한 정호다완을 모두 실사했다. 그와 관련된 전시는 언제 어느 곳이든 놓치지 않고 찾아가서 실견했다. 정호다완이라는 꽃봉오리 속에 숨겨진 꿀물을 저작(咀嚼)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 여정을 거듭하여 내면에 쌓은 자양을 이번 전시에 70여 점의 정화로 토해냈다. 보는 이들은 이 작품에서 축적된 세월의 흔적과 갈고 닦은 생각의 깊이를 확인하게 되리라 믿는다. 황중통리의 뜻을 도예로 해석해 냈다고 하겠다.
대지의 정색이 황색이라면 조선 시대를 품은 색은 백색일 것이다. 18세기 백자 항아리는 조선의 심성을 대변하는 백색 도자기다. 이번 전시에 18세기의 듬직한 맏며느리 닮은 달항아리 1점과 김종훈 선생의 겨울날 시골마을 뒷동산에 소복이 쌓인 흰 눈 같은 백자 항아리 6점을 함께 펼쳤다. 전통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기름으로 현대를 이끌어 갈 등불을 켜고자 한 것이다.
우리의 황색 다완과 백색 항아리는 서릿발처럼 차갑거나 송곳처럼 뾰족한 색이 아니다. 겨울날 우리네 황톳빛 들녘 위에 느릿느릿 내려 쌓이는 함박눈처럼 따스한 색이다. 오늘을 품어주고 내일을 열어갈 복된 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