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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불에 태우지 않고도 버닝아트 감동을 줄 수 있다면?

2018.03.20

[테크M]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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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문화올림픽’ 공식행사 중 하나인 ‘파이어 아트 페스타 2018’의 풍경.

평창 동계올림픽을 목전에 둔 지난 2월 초순, 강릉 경포 해변이 고즈넉한 겨울 바다의 정취를 예의 간직한 채 차창 저 멀리서부터 다가온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휑할 것 같은 드넓은 겨울바닷가의 모래사장이 꽉 찬 느낌이라는 것. 해변 위에는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예술작품들이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거짓말처럼 들어서 있었다.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문화올림픽’ 공식행사 중 하나인 ‘파이어 아트 페스타 2018’의 풍경이다. ‘파이어 아트 페스타’는 미술 작품을 바닷가에 설치하고 이를 일정기간이 지나면 불태워 버리는 축제다. 통상 예술가들 대부분은 자신의 작품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페스티벌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기존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자들이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만든 작품을 한순간에 불에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들에게 작품소각행위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운동이자 일종의 제의와도 같다. 특히 이번 페스티벌은 문화올림픽을 계기로 지역의 문화예술이 불처럼 부흥하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 또한 담겼다고 한다.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맨 페스티벌

‘파이어 아트 페스타’는 말 그대로 ‘태워버리는’ 예술인 버닝아트(Burning Art) 축제다. 매년 8월 말이 되면 미국 네바다 주의 블랙록(Black Rock)이라는 사막에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든다. 광활한 모래 위에 다채로운 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이를 화려한 음악과 조명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다. ‘버닝맨(Burning Man) 페스티벌’은 현존하는 축제 중 가장 전위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 되면 축제의 모든 조형물을 완전히 불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바로 버닝아트다. 축제가 열리는 블랙록시티 또한 1년에 단 일주일, 페스티벌 기간에만 만들어졌다가 축제가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임시도시다. 축제의 막이 내림과 동시에 예술품도, 그 예술품을 품었던 도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홀연 모습을 감춘다. 버닝맨 페스티벌은 1986년 래리 하비(Larry Harvey)가 샌프란시스코의 베이커 비치(Baker Beach)에서 약 2미터 크기의 나무 인형을 불태운 데서 시작됐다. 기존 예술계에대한 도전과 환경보호의 메시지로 첫 출발부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후 개최지를 네바다 사막으로 옮기고 30년 이상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호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0년만 해도 5만 명이던 참가자가 2015년에는 7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한다.

매년 8월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맨 페스티벌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불과 관련된 예술로는 탄화목으로 만든 설치 미술이라든가 공연에 불을 도입한 파이어 퍼포먼스 등이 있다. ‘파이어 페스타’나 ‘버닝 맨’ 같은 의미의 본격적인 ‘버닝아트’는 2014년 강원도의 삼탄아트마인에서 열린 ‘정선 국제 불조각 축제’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지난해에는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열린 ‘바다미술제’에서도 버닝아트를 볼 수 있었는데 이 행사들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예술성 또한 인정받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주고 이 덕분에 불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최초의 불이 ‘도둑질’로 인간의 손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신화에 나타난다. 어느 경우건 일상에서 탈출해 인위적인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시도를 의미하는 엑스터시(Ecstas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말로 ‘황홀경’으로 번역되는 엑스터시는 보통 극단적인 자극을 통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니까 엑스터시는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자신의 상태를 응시해 자신에게 감동적이며 예술적인 새로운 인위를 추구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배철현, 2018). 예술혼의 산물을 스스로 태워 없애는 버닝아트는 일상탈출의 행위 그리고 새로운 예술적 인위의 추구 모두의 측면에서 ‘엑스터시의 예술’이라고 할 만하다.

등신불과 달집태우기

태우는 행위는 우리 민족에게도 서양 못지않게 친근하다. 교과서에 나오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은 우리의 상상력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이야기다. 어느 날 어머니의 죄를 탕감 받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주인공 만적은 자신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치기로 결심한다. 예정된 소신공양의 날, 만적의 몸에 불이 붙는 순간 억수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적의 몸에 붙은 불만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맹렬하게 타오르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이 끝나자 기적에 감화된 사람들은 숯이 된 만적의 몸에 금을 입혀 등신불로 모신다. 소설 ‘등신불’의 이 같은 줄거리에는 엑스터시의 예술적 감흥이 있다.

대표적 세시풍속인 ‘달집태우기’도 있다. 달집은 음력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할 때 캄캄한 사위를 밝히기 위해 대나무로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짚 등으로 덮고 달이 뜨는 동쪽으로 문을 낸 구조물이다. 이 달집을 논에서 태우면 한 해 농사가 잘되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달집에 불을 지르면 아이를 순풍순풍 잘 낳는다고 한다. 이때 대나무로 기둥을 삼는 이유는 달집을 사를 때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터지는 소리에 마을의 악귀들이 달아난다는 속설 때문이다. 오늘날 달집태우기는 ‘제주 정월대보름 들불축제’의 메인 프로그램 ‘새별오름 태우기’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시각과 청각 등 공감각에 소구하는 하나의 제의이자 엑스터시를 추구하는 예술적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에겐 서양의 버닝아트에 버금가는 많은 전통 콘텐츠들이 있다.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인 ‘헌화가(獻火歌, A song dedicated to fire)’도 강원도 강릉과 삼척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인 헌화가의 배경이라는 데서 착안했다. 또 과거 황무지에 불을 피워 밭을 일구며 살았던 강원도 화전민도 연상케 한다. 그래서일까. 기록적인 한파 속에서도 모래가 섞인 강풍을 맞으며 파이어 페스타를 기다리는 관중들 대부분이 호기심 어린 눈빛의 외국인들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경포 바닷가에도 해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막식이 열리기로 한 저녁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미 당국으로부터 바람이 많이 불면 버닝 의식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버닝아트 행사는 모래가 섞여 날리는 강풍 속에 반쪽이 되고 말았다. 화재위험으로 작품을 태우지 못하고 촛불 몇 개로 대신하기로 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관람객들이 아쉬운 마음에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버닝아트를 보러가긴 했지만 막상 아름다운 작품을 접하다보니 순식간에 불길에 사라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시나브로 커지던 터였기 때문이다.

가상으로 불꽃을 대신하면 어떨까. 유사 홀로그램(Pseudo Hologram) 단계에 있는 기술이 못내 아쉬워졌다. 강풍에 홀로그램 영상을 반사하는 대형 투명막이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홀로그램으로 불꽃을 대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강풍에 견딜만한 투명막이 개발된다 해도 일정 방향에서만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경포 해변 같은 개방된 공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몇 해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테이블탑형 디스플레이 시스템 위에 3D 홀로그램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또한 360도 어느 방향에서나 볼 수 있기는 하지만 3인치 정도의 크기로 야외에서 구현하기엔 턱없이 작다.

최근에는 HMD(Head Mounted Display)용 홀로그램의 상용화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이 기술이 성공하면 세계 최초로 휴대폰을 통해 공중에 5인치 정도의 홀로그램 영상을 띄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해변의 예술품을 가상으로 태울만큼의 불꽃 크기를 가지려면 향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HMD 홀로그램은 개인미디어라는 한계 또한 극복해야 한다.

유비쿼터스 버닝아트

사람들이 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은 열과 빛을 발산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홀로그램(설령 증강현실이라 하더라도)이 제 불이 주는 효과를 얼마나 구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건담에 등장하는 빔샤벨 광선검 같은 기술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크다.

거리 그림, 모래 예술작품, 얼음 조각, 대지 예술 등은 시간이 나면 자연히 사라진다. 이렇게 없어지는 예술품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일부러 예술을 파괴할 필요까지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30점 이상의 작품을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모네(Claude onet)처럼 일부 예술가들은 자신감 부족 등의 이유로 혹은 새로운 예술적 동인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기도 한다.

또한 작품의 수를 제한해 작품을 부족하게 만듦으로써 나중에 평가할 때 명성이 높아지는 계기로 삼기 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순간적인 엑스터시를 얻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불로 태우는 행위는 다소 심한 일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역발상과 전, 새로운 문화의 창조, 자연으로의 귀소…. 이 모두가 예술이 구해야 할 가치이겠지만 모름지기 좋은 예술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향유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때마침 불어온 강풍이 34명의 국내외 예술작품을 구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견강부회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모처럼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바닷가에서 접하는 감흥의 기회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허락한 셈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이 불꽃에 휩싸여 타오르는 장관이 주는 엑스터시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또 한 번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경포 앞바다를 비롯해 어디서든,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버닝아트를 구현할 기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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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으로 예술작품이 불꽃에 휩싸여 타오르는 장관은 볼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또 한 번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경포 앞바다를 비롯해 어디서든,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버닝아트를 구현할 기술 말이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9호(2018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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