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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한국 고고학·고건축 개척자, 김정기 박사 별세

2015.08.28

[뉴시스] 신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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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산문화재학술상 시상식 당시 김정기 박사(앞줄 가운데, 사진=문화재청). 2015-08-27

한국 고고학과 고건축의 개척자, 창산(昌山) 김정기(金正基) 박사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김 박사는 문화재 발굴과 보존에 한평생을 바쳤으며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40여 년에 걸쳐 유적발굴과 연구에 매진해 한국 고고학과 고건축 분야의 대부로 통했다.

문화재청은 27일 “창산 김정기 박사가 노환으로 26일 오후 7시 30분에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일제가 아닌 우리 손으로 유적발굴이 이뤄지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개발계획으로 인해 대규모 유적발굴이 시행된 1970년대 유적발굴을 이끌었다.

1959년 말 우리나라 기술과 인력으로 이뤄진 최초의 유적 발굴은 경주 감은사지 발굴이었다. 이를 주도한 주인공이 창산 고(故) 김정기 박사이다.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의 조화를 언급할 정도로 신념이 강했고 이를 수긍한 박 대통령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1975년 문화재관리국(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초대 소장 재임 시절 황남대총과 황룡사지, 안압지 등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경주지역 대부분 유적을 비롯해 익사 미륵사지 등 중요한 발굴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장고고학과 건축학의 기초를 세워 일제가 아닌 자생적인 학문의 토대를 구축해 후학 양성에도 이바지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퇴임 후 연구발전 격려를 위해 창산문화재 학술상을 마련하는 등 인재양성에도 꾸준히 애정을 보였다.

고인은 얼마 전부터 자신의 일대기를 비롯해 앞으로 학계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세상을 등졌다. 주요저서로 ‘한국의 유적을 발굴한다’(1977), ‘한국의 고건축’(1980) 등이 있다.

한편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동국로에 있는 동국대학교일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8일 오전 3시40분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장(葬)으로 치뤄진다

유족으로 부인 하상연 여사와 1남 김병곤 동국대 교수, 1녀 김정숙 씨가 있다. 장지는 고인이 출생한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선산이다. 031-961-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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