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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자하미술관] Go through-and then

2018.07.04

Writer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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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through-and then

2018_0706 ▶ 2018_0729 / 월,공휴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1,2전시실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com

blog.naver.com/artzaha

www.facebook.com/museumzaha

 

 

Go through展은 세대가 다른 작가들의 서로의 관점에서 지나간 세대와 동시대 미술세계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이해하는 장을 마련코자 합니다. 1부는 『and then 2018.7.6 ~ 7.29』 자하미술관의 신진작가 공모 ZAHARTIST에 선정된 작가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전시이며, 이어 『백수지년 2018. 9. 28 ~ 10.21』 100세를 바라보는 원로화가들의 풍부한 경험과 후배들에게 귀감되는 식지 않는 예술열정을 전시로 준비합니다. ■ 자하미술관

 

신진의 보호막을 치워버린 작가들을 다시 보다. ●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은 우리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다. ● 신진작가가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미술계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현대미술계는 더욱 그렇다. 수많은 공모전은 그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국공립과 사립미술관, 화랑과 대안공간을 막론하고 그 수와 양은 생각보다 많다. 그렇게 선발된 신진 작가들. 그 많던 신진 작가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무책임한 미술계의 관행 속에서 신진이란 이름의 젊은 작가들은 끊임없이 소비된다. 발탁된 후의 보장 따윈 전혀 없는 첫 번째 개인전을 장렬하게 치러내고 등용된 이들은 실상은 생각보다 초라하다. 또래 작가들의 약간의 시기와 격려, 막연한 희망고문의 첫 계단으로 올라섰을 뿐 여전히 방향 지시판도 미래를 약속하는 꿈의 갤러리도 등장하진 않는다. 

 

● 필자 역시 자하미술관 근무 당시 이와 같은 무책임한 일을 벌였고,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쩌면 잊었던, 혹은 오가며 만나던 작가들을 다시 볼 기회를 얻었다. 그때의 작가가 활발한 미술계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놀라운 확률이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 이제 신진이란 타이틀이 머쓱해진 허수영 작가를 만난 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대학원 실기실에서 만난 작가는 펼쳐놓은 그림 보다 더 많은 것들을 꾸역꾸역 끄집어냈다. 긴장과 기대감 사이의 동작과 시선으로 분주한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신진이란 낱말에 알맞은 날 것의 솔직함과 노동집약으로 무장된 열심의 화면들을 마주하며 솔직히 '대단한'이란 단어를 떠올리진 않았었다. 다만, '되겠다.'라는 촉이 감지됐다. 도감류의 책들에서 채집한 식물과 동물들이 화면에 가득한 작품들은 아직 작가의 생각이 오롯이 도출된 느낌보다는 시도-하고 싶은 말을 어떤 목소리와 어떤 톤으로 해야 하는지, 이렇게도 읽어보고, 저렇게도 읽어보는-로 읽혔다. 그 시도들은 완성된 목소리의 톤이 궁금할 정도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화면을 이끌어 가는 밀도 있는 구성력과 동어반복 식의 표현 기법에도 불구하고 비울 곳을 찾아낸 현명한 감각은 이미지 과잉이 화면에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흑백조의 톤조절과 풀컬러의 형태조절 능력을 통해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DNA를 내포하고 있음을 여실히 피력하고 있었다. 더구나 상당한 작업양은 불안전한 작품 세계를 조금 빨리 당겨줄 수 있는 작가의 긍정적 욕망으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오늘 약간 섭섭한 개념과 조금 아쉬운 화면에 내용은 조금 기다리며 지켜보아도 좋다는 판단을 이끌어 냈다. 

 

● 자하미술관의 신진작가공모 프로그램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치른 허수영 작가는 "3년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처럼 작업실을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서울, 인천, 청주, 광주로 이사를 다녔다." 전형이고 보편적인 미술계 진입방식이다. 그러는 동안 나열의 대상은 동물에서 테디페어로 새나 숲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작업환경에 알맞은 그 만의 적합한 나열 대상을 찾아낸다. 숲! 숲은 물고기, 새, 꽃, 벌레와는 다르다. 그 숲에 대한 허수영식 나열은 공간의 숲에 시간의 나열을 입히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수영은 숲의 시간 나열을 본격화하면 이제 일단계라 부를 수 있는 자신의 오롯한 작품세계의 첫 번째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전을 치르는 전시장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판매가 이루어지는 미술시스템 안에 서 있다는 것은 그가 이제 신진이란 수식어 없이도 활동 가능한 '작가'로 성장한 반증이다.

 

김진기 작가 역시 대학 내 있는 갤러리에서 과제전시를 하는 동안 만난 대학원생이었다. 질펀한 회식이 끝난 자리의 지저분한 모습을 '다이나믹'이란 표현으로 묘사하는 그는 용감하고 부정적인 화면 속 내용과는 달리 차분하고 진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내 갤러리였지만 규모가 상당했고 걸린 김진기의 작품 역시 꽤 많았다. '모듬 회식'시리즈가 눈길을 끌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후 'Trashtopia'라 이름 지은 폐기물처리장의 거친 화면들은 신진작가들에게 찾았던 감수성, 사회적 반응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기성이 되어버린 당시의 필자가 느낄 수 없는 불합리와 모순들을 신진의 눈을 통해 보고자 했던 기대치가 충족된 작품들이었다. 더구나 화면의 구성은 사진과 페인팅이 순서 없이 뒤섞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부딪혀서 불현한 마무리감을 주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작가의 태도가 역시나 '신진스럽다'라는 감상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안티주의자를 찾고자 한 것이 아닌 '일상'과 '개인'에 매몰된 그 당시(혹은 요즘도) 신진들 팀에서 사회와 환경, 이웃과 실존하지만 원치 않는 것들을 목격할 누군가가 찾아냈다는 뜻이다. 

 

● 김진기 작가는 바로 그 이듬해 OCI미술관에서 지원을 받아 다시 한 번 개인전을 짧은 시간 안에 치러내야 했다. 신진작가에게 운이 좋다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OCI미술관의 신진작가 육성프로그램은 분명 실력과 운이 모두 좋아야 획득할 만한 중요한 인정지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준비기간이 너무 확보되지 못했다는 필자의 개인적인 사견이다. 이유는 이미 대학내 갤러리에서의 과제전에서 폭발적인 다양한 작품을 쏟아 냈었기에 그것들을 다시 재정비하여 키워나갈 부분과 멈출 부분을 분리하고 판단하는 데는 충분한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미술계에서 보이지 않았던 김진기 작가가 필자는 내심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는 주어진 만큼의 사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뿐 멈추거나 이탈하지 않았다. 2008년부터 시작된 「오빠」 시리즈들이 보다 분명해지는 있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들이 사진으로 등장한다. 수많은 영화 클리세 중에 '통속'에 가까운 장면과 '오빠'로 시작하는 자막들은 이후 군산에서 「명화극장」과 「군산 아메리카타운의 캄보디아 언니들」 시리즈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보다 능동적이 되었지만, 시선은 객관을 유지하려 한다. 대상을 사진으로 펼쳐 보이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동정, 연민, 대안 등의 감상적 단어는 빠진 그저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시리즈와 무관하지 않다. 역시 그런 맥락으로 작가는 계속 작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Trashtopia」 시리즈도 역시 개념과 표현이 분명하고 김진기 본연의 개념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의 사진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내가 플래쉬를 터뜨리자 적목현상으로 화답했다」 작품은 사진콜라쥬다. 음식물 쓰레기와 개와 소. 그 단촐한 등장 대상들은 이전 작품인 「Trashtopia」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분명한 작품이다. 군산의 레지던시의 경험과 그 간의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채 엉켜있었다면 이제 작가의 시각적 습관과 개념의 분명해진 어조가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음이 읽혀진다. 김진기 역시 '신진'이란 보호장치 없이도 설 수 있는 작가로 성장했음이 분명하다.

 

10년. 신진으로 발탁(?)한 후 그 동안 작가들은 이렇게 자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하미술관에서 기획하는 Go through - and then展은 그러한 성장을 지켜보기 위한 자세로서 그 의미는 특별하다. 신진이란 이름으로 발탁한 작가들의 10년후 모습을 재조명하는 일은 책임 있는 사회적 관으로서 역할이다. 역할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신진이었던 그들은 신진의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 이제 미술관, 혹은 필자와 같이 시스템 안의 매개자들이 본연의 역할을 어떻게 좀 더 충실하게 수행해 나갈지 고민할 때다. 그 고민의 첫걸음을 자하미술관이 내딛었다. 

 

● 서해근은 주로 전투기나 총 등 전쟁무기를 주제로 꾸준히 작품을 제작해오고 있다. 냉전시대가 끝난 현시점에서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강대국들의 무분별한 무기개발 사업들을 보며 이들의 목적이 비단 세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것들이 아니라 무력과 기술, 자본을 토대로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것임에 대해 비판의 눈초리를 보냈고, 이러한 일련의 사업들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과시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에서 빈 껍데기, 즉 허물과 같지 않을까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 "실체로써 존재하고 있으나 그 목적이 전도된 첨단의 무기들. 평화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삶의 이면에서 은폐하고 있는 것들을 껍데기 혹은 허물을 통해 드러내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호하고 있으며 무엇을 통해 안전을 찾는가에 대한 의미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서해근) ■ 김최은영

 

2012년, 13년에 진행된 자하미술관의 신진작가 공모에 선정된 작가는 김은영, 김혜나, 노정희, 안경진, 윤성필, 이희명, 임장환 작가로 총 7명이다. 이중 현재까지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는 5명이다. 

 

● 이희명 작가는 복잡하고 불균형적인 도상들이 가득한 화면을 통해, 연약한 인간으로써 경험한 개인적, 사회적 부정적 시선과 비틀어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잃은 불안정한 자아를 표현하며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을 드러내었다. 현재의 그의 작업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미지의 조합과 출동을 조합하여 방황하는 자화상을 표현하고 있다. 기존의 작품에서 드러났던 무채색과 공허했던 배경과 이미지들 대신 풍만한 식물들이 우거진 숲으로 무한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작가의 홀로 서 있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생명력으로 가득 찬 자연과 죽음과 외로움 앞에 놓인 불완전한 인간과 같이 대비되는 이미지의 조합과 출동을 통해 고독과 연민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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