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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더러운 잠'으로 본 민중미술 1980 그리고 2017

2017.02.13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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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더러운 잠' 그림의 이구영 작가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곧, 바이! 展'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서 보수단체의 그림 훼손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7.1.2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2016년 국내 미술시장의 주요 화두는 '민중미술'이었다. 1970년대 단색화로 이른바 '재미'를 본 미술시장이 그 후속 기획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을 제시했다. 권력과 자본주의, 기득권에 저항하는 장르 본연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이 주를 이루는 미술시장에 또 하나의 상품으로 소환된 것이다.

민중미술은 '현실과 발언' 동인들이 이끌던 미술운동이다. 당시 화단의 풍조를 반성하며 신학철, 민정기, 오윤, 주재환, 김정헌, 임옥상, 안규철 작가 등을 주축으로 태동한 '현실과 발언'은 1980년 동산방화랑 창립전 이후 여러 차례 동인전을 열며 체제 저항적인 미술 흐름을 주도했다. 이들은 '민족미술가협회'(민미협)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민중미술은 1970년대 단색화만큼의 폭발력을 갖지 못했다. 이미 오늘날의 민중미술이 삼엄한 통제와 검열 속에 있었고, 시장은 물론,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는 비인기 장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 여만에 상황이 뒤집혔다.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시작된 '블랙리스트 정국'은 그동안 미술계에 꽉 차 있던 압력을 한꺼번에 분출시켰다. 그 중에서도 민중미술 본진에서 터져 나온 '더러운 잠'은 시장이 인위적으로 민중미술을 띄우려고 했건 것과는 대조적으로, 2017년 민중미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자발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 등 서양명화 속 여성 누드에 박근혜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이 작품은 지난달 24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 '곧,바이!'전에 민미협 소속 이구영 작가가 내 놨다가 보수단체에 의해 하루만에 훼손됐다.

논란이 격화하자 더불어민주당은 표 의원에 대해 6개월 당직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에 민미협을 비롯한 전국 56개 예술단체는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작품 훼손에 대한 사과와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구영 작가는 '더러운 잠' 후속으로 10일 '블랙'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엔 여성 누드 부분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박근혜 대통령 얼굴 대신 닭이 홰 치는 모습을 합성했다.

"블랙리스트 시국에 항거하는 점거 행위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작가를 비롯한 일부 민중미술 계열 미술인들과 "낮은 수준의 표현" 혹은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미술 비평가들, 여성민우회 등 여성 단체들의 팽팽한 논란 사이에서, '더러운 잠'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오늘날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써 민중미술이 가야할 길을 되묻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열린 '곧, 바이! 展'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서 참여 작가들이 보수단체의 '더러운 잠' 그림 훼손과 관련해 붓글씨를 쓰고 있다. 이날 보수단체 회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을 훼손했다. 2017.1.2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이구영 작가 "시국 이야기하는 풍자 미술은 (마음이) 급하다"

논란의 가운데에 선 이구영 작가는 일단 "여성에 대한 모욕이 결코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작품이 여성비하, 모욕이라는 비난을 가장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여성들을 비하하고 모욕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여성들을 욕 먹인 박 대통령이 결국 작가인 나로 하여금 그런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간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고만 몰아부치는 건 억울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풍자의 표현 방식은 논쟁거리다. 저항이 본질인 민중미술의 표현 양식은 다소 거칠어도 된다는 쪽도 있고, 풍자와 조롱의 메시지를 담는 민중미술이라도 시각예술 작품으로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 중에서도 비판적인 시선의 배경에는 통찰력과 미학적 고려가 부족한 작품이라는 논리가 있다. "대통령의 잘못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 꼭 나체를 통한 모독이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고, "21세기 민중미술은 미학적 고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냐"는 반문도 있다. "도상의 사용과 방식이 엉터리"라는 평가와 "날카로운 통찰과 재해석이 없는 게으른 미학"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더러운 잠의 원본 그림으로 인용된 마네의 '올랭피아' 속 창부가 화면 밖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시선의 역전'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고개 숙인 박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더러운 잠'은 대상화되는 여성의 몸만 부각시킨 일종의 성희롱에 가깝다는 비판이 있다. 원본 도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풍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맞서는 이구영 작가의 논리도 있다. 그는 일단 "민중미술처럼 시국을 이야기하는 풍자 미술의 맹점은 (마음이) 급하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몇 달 몇 년을 고민해서 만든 작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늘날 국정농단 사태를 작가가, 온 국민이 알게 된 게 불과 몇 달 안 됐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제대로 된 풍자를 위해서라면 (미학적으로) 좀 더 많은 장치들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는데, 무르익힌 다음 몇 년 뒤에 다룰 수도 있는 내용도 있지만, 시국이 급박할 때 시국을 이야기하는 미술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뤄져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또 "비판을 하더라도 좀 더 차분하게 지켜보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모든 게 빠르게 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공론의 장에서 얘기하게 된 건 어쨌거나 좋은 것 같다"며 다만 "편가르기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국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창작 표현의 자유 수호와 더러운 잠 작품 훼손에 대한 예술인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와 국회를 비판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국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은 '더러운 잠' 작품 훼손에 대한 사과와 법적 책임을 요구했다. 2017.2.6/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표현의 자유 중요하지만"…"이제 민중미술 형식도 새로워져야"

'더러운 잠' 논란을 바라보는 민중미술 진영의 원로 작가들의 시선은 각양각색이다. 현실과 발언 동인들은 표현의 자유는 옹호하면서도 표현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신학철 작가는 "재미있는 작품"이라며 "(민중미술을) 나처럼 심각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식으로 비판적이면서도 웃기게 할 수 있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강아지라던가, 사드 문제 등 작품 속에 탄핵 정국과 관련된 모든 게 다 들어 있다"며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다 보니 시각적으로 불필요하거나 불편한 부분들이 있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작가마다 느끼고 표현하는 게 다를 수 밖에 없으니, 이 또한 예술가로서 자기 표현의 욕구로 봐 주면 좋지 않을까"라고도 했다.

안규철 작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일단 "패러디가 논란이 된다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더러운 잠'을 '작품'이라는 용어 대신 '만화' 혹은 '농담'이라고 표현하면서 "만화 하나를 두고 의도를 문제삼아 공격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자유로운 표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안 작가는 그러면서도 "메시지가 정당하다고 형식까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라며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또 다른 엄격한 비판과 평가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민중미술 그룹에 대해 "정치 사회적으로는 진보를 지향하면서도 예술 형식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보수적이라는 게 심각한 모순"이라며 "이제 예술 형식도 새로워져야 하고, 틀에 박힌 구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젊은 미술평론가들의 시선은 조금 더 차갑다. 최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수문화에서 열린 비평가들의 전시 '비평실천'에 참여했던 이기원 평론가는 "'더러운 잠'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일베'(일간베스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짤방'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을 타자화해서 혐오하는 시각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혐오 발언은 삼가야한다는 기준은 필요한데, 이 작품은 그 기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이 평론가는 '더러운 잠'이 여성혐오 표현인 이유에 대해 "한국사회가 남녀를 바라보는 지형 자체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남성 대통령은 괜찮고 여성 대통령은 안 되느냐는 이분법적 논리를 적용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단지 국회 전시에 걸렸다는 것만으로 작품으로 이야기돼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이제 민중미술에 대한 시각도 '업데이트'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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