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훈춘시 조선족 동포들의 일상, 엄상빈 ‘두만강변 사람들’

2019.09.03

[뉴시스] 조수정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조선족 학교 ⓒ엄상빈

2000년 4월28일, 속초시와 러시아 자루비노를 잇는 뱃길이 열렸다. 이 ‘백두산 항로’로 속초시는 중국 훈춘시와 자매결연을 하게 됐다. 이 뱃길로 간단한 무역을 하는 상인, 여행객, 그리고 두 도시 간 문화예술교류를 위해 문화예술인들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훈춘시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국경이 맞닿아 있어 오래 전부터 홍수로 강이 범람하면 피해가 덜한 쪽으로 넘어가 살기도 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수가 강 건너 넓은 중국 땅으로 이주한 역사가 있다. 현재 훈춘시 주민의 42%가 조선족이다.

사진가 엄상빈(65)이 전북 전주 서학동사진관에서 ‘두만강변 사람들’ 전시를 열었다. 속초시와 훈춘시 간의 문화교류사업으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월 또는 6월 한 차례씩 훈춘시를 방문했다. 문화교류사업을 기록하며 짬짬이 두만강, 농촌마을, 시장, 학교 등 동포들이 사는 평범한 현장을 사진에 담았다.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고 말, 글, 음식, 문화까지 같으니 외국이라기보다는 함경북도 어디에 온 기분이었다고 한다.

조선족 학교 ⓒ엄상빈

조선족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1960년대 자신의 학창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간판의 글귀 하나를 이야기하며 미소 짓기도 한다. ‘새각시혼사방’이다. 우리 식으로는 ‘○○웨딩숍’, ‘○○스튜디오’였을 텐데 아직 우리말과 정서가 살아있는 옌볜이 고맙게 느껴졌다.

‘속초 아바이마을 사람들’, ‘동해안 군철책’, DMZ 등 분단 작업에 오랜 기간 매달려 온 작가에게 특히 눈길이 간 곳은 두만강이다. 첫해 항공편으로 옌지까지 가서 육로로 훈춘까지 이동할 때 처음으로 보게 된 두만강의 모습에는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그곳은 작가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헐벗은 민둥산과 강가 마을의 인적들을 보면서 “저 모습이 저들만의 탓일까?” 분단의 한을 곱씹고 곱씹었다.

35㎜ 단렌즈로 유유히 흐르는 강과 북녘의 산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제방이나 주택이 들어서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강 모습이 좋았고, 노 젓는 뱃사공이 있는 장면을 찍을 때는 유행가 가사와 함께 국민들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는 그 두만강이 바로 여기로구나, 하고 한을 삼켰다.

주민들의 생활 ⓒ엄상빈

작가는 4.27 판문점선언 이후 20여년 전 그때의 두만강을 떠올리며 필름을 꺼내 스캔하다가 ‘지금의 훈춘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변하기는 했을까?’ 궁금증이 커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9월6일 다시 옌지행 비행기에 올랐다.

주민들의 생활 ⓒ엄상빈

이제는 옌지에서 훈춘 가는 교통편도 고속도로나 고속열차가 일상화됐다. 고속열차로 40분이면 갈 수 있으니 과거와 비교도 안 된다. 훈춘에서 옛 정취를 느껴보려고 했던 인력거들은 다 어딘가로 사라지고 삼륜차로 바뀌어 경쾌하게 달린다. 죽죽 들어선 고층 건물과 넓어진 도로는 물론이고 깨끗해진 환경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자동차들도 넘쳐난다.

작가는 ‘15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감탄이 나왔다고. 삼국경이 맞닿아 있는 팡촨으로 가는 길은 옛 흙길을 2차로 포장도로로 확장한 이후 다시 4차로로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다. 훈춘이 유라시아대륙철도가 지나가는 길목으로 주목 받고 있음이 한눈에 읽힌다.

친한 훈춘 작가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궁금증이 풀렸다. 길거리나 주택가 등이 깨끗해진 데에는 ‘무명영웅’들의 수고가 있었다. 청소부, 가로수 정비원들을 ‘무명영웅’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노동의 가치, 인간 존중이 묻어났다. 또 ‘자가용 승용차 시대’는 대략 5년 정도 됐고 좀 더 빠른 사람은 10여년 전부터였다는 데 놀랐다. 이들의 대화 중 “나는 돼지 꼬리 잡고 순대 내놓으라고 할 정도로 성격이 급한 사람인데 차는 천천히 몰지 않나? 자네는 차를 너무 급하게 모는 경향이 있어”하자 주위에서도 다들 천천히 몬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고 회상한다.

주민들의 생활 ⓒ엄상빈

작가는 “이번 방문은 길게는 20여년 세월이 이어진 여정이었고, 짧게는 4박5일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애환이 담긴 훈춘임이 틀림없다. 이 애환과 간절한 통일의 소망을 함께 담았다”고 전한다.

전시는 10월27일까지.

주민들의 생활 ⓒ엄상빈

[email protected]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