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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식물같은 동물의 기괴한 아름다움...허은경 '보태니멀 가든'

2018.05.09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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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허은경, BA-12, 2016, rice paper, acrylic, 40 x 30 cm

10일부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개인전
군번줄+사슬로 뜬 대형설치작품도 눈길

SF영화에 나올법한 생명체들이 화폭에서 기괴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식물도 동물도 아닌, 식물과 동물이 합쳐진 이상한 모습인데 마음을 끌어당긴다. 예쁜 그림과는 거리가 멀지만 '예쁘다'는 반응이 터진다. 단색화와 팝아트로 점령한 미술시장에 오랜만에 등장한 '희한한 그림'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허은경 작가의 '보태니멀 가든(Botanimal Garden)'전이다. 대형 설치작품과 140여점의 ‘보태니멀 드로잉’ 시리즈를 10일부터 선보인다.

‘보태니멀(botanimal)’은 식물이라는 의미의 ‘보태닉(botanic)’과 동물의 ‘애니멀(animal)’을 합성해 작가가 만든 신종어다.

작가는 세포의 이형적 증식과 교합을 통해 유기체에 기이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업을 펼쳐왔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위치한 아트센터(Art Center College of Design, Pasadena, CA)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 작가는 미국과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어왔다. 그동안 리안갤러리와 전시하다, 이번에 아라리오갤러리와 손을 잡았다.

8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식물도 동물도 아니지만 최대한 예뻐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예쁘다’는 반응에 화답했다.

이전엔 인터렉티브한 설치미술을 했던 작가는 2007년부터 회화로 돌아섰다. 매번 바뀌는 장르와 주제로 '허은경표' 작품은 딱히 없어 미술시장에서 아직 낯설다.

"하나 가지고 작업하는, 지겨운걸 못견딘다"는 작가는 굵고 큰 윤곽을 가진 얼굴때문인지 작가의 '보태니멀 드로잉' 같았다. 남성같은 여성, 여성같은 남성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분위기의 그는 "스물아홉된 딸이 있는 엄마"라며 껄껄 웃었다.

기괴함과 독특함이 무기지만, 작품은 섬세함의 극치다.

'보태니멀'시리즈는 "아름다움은 뭐지?"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다. 심장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는 심장에 호흡기를 달아야 했고, 그걸 떼는 순간 다리가 바로 썩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끔찍한 순간 꿈틀거리는 생명의 위대함을 봤다. 썩은 살에서도 환경에 적응하며 징그럽게 돋아나는 살들은 기괴하기보다 아름다웠다. 이 모습은 곧바로 작품으로 이어졌다. 둥근 원형에 반짝이는 큐빅을 달아 이어붙였다. 살색의 알들이 뭉쳐있는 것 같은 작품은 내용과 달리 '아름답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서울=뉴시스】허은경, BA-100, 2016, rice paper, acrylic, 40 x 30 cm

아라리오갤러리 1층에는 140개의 '보태니멀 드로잉’이 전시됐다. 살펴볼수록 동물과 식물의 분류, 아름다움과 낯선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한다.

어릴적 정원있는 집에서 살았다는 작가는 정원에 핀 꽃을 꺾어 해부한 버릇이 작품으로 이어진것 같다고 했다. 장미꽃잎을 하나씩 따내고, 꽃수술을 펼치고 줄기를 가르며 봤던 그 모습과 느낌이 식물도 동물도 아닌 생명체로 자연스럽게 그려졌다는 것.

보태니멀은 이파리 한 줄기, 풀대에 돋아난 솜털, 우주를 비추는 것 같은 반짝이는 눈알에서는 처절한 생명에너지까지도 느껴진다.

한지에 그려져 깊이감도 있다. 수십번 물감을 덧발라 올라온 색들로 이형생물체들이 바닥에까지 합체된 모습이다.

식물과 동물의 교합으로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 그림은 이런 생물체가 진짜 있을 것만 같은 착각도 선사한다. 생물의 유전자들이 얽힌 모습을 오로지 상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놀랍다. 그림만 보면 20~30대 작가처럼 보이지만 64년생 '아줌마 작가'의 깜짝 반전이다.

작가는 “생물을 창조하는 것은 누구인가”, “창조를 과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물학과 종교의 철학적 질문을 전복시키는 것은 물론, 극사실회화와 추상화로 물든 50대 후반의 기성세대 작가 이미지를 깨트려 신선함을 더한다.

【서울=뉴시스】 Installation view of Botanimal Garden, ARARIO GALLERY 2018

【서울=뉴시스】 Ruby Eunkyung Hur_Botanimal Garden_ARARIO GALLERY 2018 (11)

전시장 지하에서는 거미줄을 친것 같은 마치 성황당같은 분위기를 전하는 대형 설치 작품이 있다. 검은 배경에 '레이스 천막'처럼 드리워져 기묘함이 감돈다.

작가는 "군번줄과 사슬로 만든 이 작품은 고통을 동반하는 슬픈이야기가 담겼다"고 했다. "하늘의 능력중에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면 세상에 견디는, 우리끼리 만드는 하늘을 만들고 싶었다"며 6개월간 코바늘로 직접 뜨개질했다고 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호한 짙푸른 회화작품도 눈길을 끈다. 규정하고 딱 구분짓는 것에 반항하는 작가의 엉뚱발랄함이 담겼다. "하늘로 보이면 하늘이고, 바다로 보이면 바다다" 그래서 제목도 'SW-1'다. 스카이와 워터의 영문 앞자만 따왔다.

【서울=뉴시스】 Unkyung Hur, SW-3, 2018, rice papce, natural pigment, acrylic, 148 x 210 cm

새로운 생명체, ‘보태니멀’을 탄생시킨 작가는 "하찮고 부질없어 보이는 생명체들이 주변에 치열하게 적응하려는 모습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모든게 진화하는게 맞다면, 속도는 안보이지만 계속 변화하고 내 몸을 바꾸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작가는 “사실 우리는 정형보다는 기형에 가깝다"며 스스로 ‘변태 작가’라고 했다.

자신의 기형의 생물체처럼 나이도 장르도 허물고 고정관념도 깬 작가는 ‘아름다운 변종’을 강조했다.

"정말 아름다움은 뭘까요? 생명체들이 적응하는 모습처럼 우리도 계속 기형적으로 변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다'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요" 전시는 6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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