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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글자 산수화' 부활…유승호 작가와 박여숙 화랑·이태원 P21

2017.10.27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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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유승호 작가가 서울 이태원 P21갤러리에서 박여숙·최수연 대표와 포즈를 취했다.

"16년전 프로포즈를 했는데 이제야 만났네요."

안목높은 갤러리스트인 박여숙 화랑 박여숙 대표가 옆에 앉은 유승호 작가(43)를 보며 짐짓 뿌듯한 모습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눈여겨봤던 작가였다.

유승호 작가는 '글자 산수화'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 홍콩크리스티경매에서 '한글 산수화' 작품이 추정가보다 2배 높은 HKD 56만4000(약 USD 7만2000)에 낙찰되면서 미술시장에 떠올랐다. 2005~2006년은 미술시장 최대 호황기로 이때 무명의 젊은작가들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유 작가도 그때 스타작가로 부상했다.

이후 국내외에서 러브콜이 이어지며 수많은 전시를 열었다. '글자 산수화'주문이 이어져 조수 5~6명 두고 작업할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미술시장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부터 불황이 다시 오면서 스타 작가들의 전시는 자취를 감췄고, 옥석이 가려졌다.

유승호 작가도 마찬가지. ‘echowords’(시늉말)시리즈의 독창적인 작품이지만 10여년전 처럼 전시가 활발하지 않아 이름 석자가 잊혀지고 있는때 그를 부활시킨건 화랑이다.

35여년간 화랑을 운영하며 박여숙 대표가 발휘한 연륜의 기술은 끈질김과 새로움이다.

"2016년도에 세계적인 미술시장 Abu Dhabi Art(아부다비ㆍ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올해 3월 아트바젤 홍콩에 출품시켰지요."

박여숙 대표는 "아트바젤홍콩에서는 설악의 작가 김종학과 한국의 풍경을 주제로 2인전을 진행했는데 홍콩과 인도네시아 등지로 판매되어 출품된 모든 작품이 팔렸다"면서 유승호 작가를 꾸준히 지원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깨알같은 작품을 하며 '까칠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작가도 박여숙화랑의 러브콜에 응답했다. 작년에 전속계약을 맺고 개인전을 연다. 미술관 이후 이름난 상업화랑에서 전시를 열기는 처음이다.

【서울=뉴시스】유승호, 흥이난다. 캔버스에 아크릴.

박여숙 화랑은 유승호 작가의 개인전을 대대적으로 펼친다. 청담동 박여숙화랑과 이태원동 'P21' 에서 동시에 작품을 선보인다. 'P 21' 은 박 대표의 딸 최수연씨가 맡아 운영하는 새로운 현대미술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주제로 달았다.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는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잉크를 사용해 중국의 풍경화를 그려낸 글자산수가 전시됐다. P21에서는 산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초서체(草書體)를 활용한 붓글씨 작품을 공개한다.

먼저 '유승호 표' 잉크와 펜으로 작업한 문자 산수 작품들은 박여숙화랑에서 만날 수 있다. '문자로 이루어진 산수화'는 단어나 문장의 의미가 풍경과는 관계 없고, 만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의성어와 의태어로 채워진다는 특징이 있다.

처음 글자 쓰기로 형상을 만들어간 것은 '으이구 무서워라'(1997)는 글자였다. 이후 '야~호'(1999)에서 무수한 손글씨 '야~호'들이 모여 산수화 형상이 처음 만들어졌고, 그 이후 이어진 '슈-'(1999~2000)부터는 송대의 산수화 등 명화를 원전으로 삼아 모방 및 변형을 가미한 글씨 그림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서울=뉴시스】Rainbow 무지개, 2017, gold leaf, ink on Korean Hanji paper, 226 x 143 cm

이번 전시에는 남종화의 시조로 여겨지는 중국 오대, 남당의 화승인 거연(居延)의 설경도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무지개(2017)'와 우리나라의 진경산수를 완성시킨 겸재정선(謙齋鄭敾)의 천불암을 차용한 '나잡아봐라'도 볼수 있다. 유승호가 지속적으로 작업해왔던 방식과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 들어간 작품이다.

이태원 'P21'에는 언어 유희적인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 전시장에서는 작가의 엉뚱함과 기발함을 만나볼수 있다. 보통 의성어와 의태어이거나 외국어의 음차를 이용한 작품은 문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뒤섞거나 이미지와의 연관성을 비틀어 사용한 경쾌한 작업이다.

가만히 보면 아재개그식이다. 예를 들어 ‘뇌출혈’은 우리말로는 뇌혈관이 터져 의식을 잃은 상태를 나타내지만 영어 natural을 읽는 발음기호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텍스트의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 그의 작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작업의 특성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지난 20여년간 해왔던 펜 작업에서 붓글씨 작업으로의 전환했다는 점이다.

【서울=뉴시스】유승호의 실험적인 작품이 전시된 서울 이태원 P21갤러리.

"이번 전시를 계기로 붓글씨를 화폭의 주요 요소로서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해왔지만 공개하지 않았던 형광색 화면을 보여준다."

터질듯 화려한 형광 화면에 검은 글자들이 꿈틀거리면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형상을 보인다.

3m가 넘는 기다란 형광 주홍빛의 화폭에 작품 ‘초 fool’(2017)는 작가의 발전과 의지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왕희지'를 좋아하지만 글자의 갑은 추사 김정희"라는 그는 이번 작품에 초서체로 쓴 다산초당의 현판의 ‘초(屮)'를 모티브로했다. 초서는 사실 이미지에 가까운 표현방법으로, 봤을때 직관적으로 그 의미가 전달 되는 특징이 있다. 북송의 휘종이든 조선의 추사나 석봉이든 초서를 즐겨 쓴 이들은 휘갈겨 씀으로써 역설적으로 글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랑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자신감이 생긴 덕분일까. 글씨면서 그림같고, 그림이면서 글씨같은 작품이 춤추듯 다가온다.

유승호 작가는 "실험적이고 프로젝트성 전시공간때문에 이러한 작품을 전시하게 됐다"며 "P 21 전시장이 작가들에게 허파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서울 이태원 P21갤러리에 전시된 유승호의 신작 '점순이'. 초서체를 작업하면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다 일필휘지로 나온 작품으로, 가만히 보니 여자 얼굴이 보여서 제목을 점순이로 달았다.

오랜만에 등장했지만 스타작가의 품위를 갖추고 구작과 신작을 동시에 선보인 전시는 미술시장에 의미가 크다.

화랑은 '돈 되는 작가'만 전시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은근히 보여준다. 작가 발굴과 제대로된 기획전은 건강한 미술시장을 조성하는 힘이다. K아트의 힘도 무대가 있어야 나온다.

박여숙 대표는 "그의 작품이 아부다비행정청과 도쿄의 모리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면서 그런 이유는 유승호 작품이 국경을 넘는 포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홍보도 아끼지 않았다. 전시는 11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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