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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국립민속박물관에서 청바지·쓰레기 전시하는 이유는?

2016.07.25

[머니투데이] 대담=신혜선 문화부장, 정리=김유진 기자, 사진=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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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지난 2011년 별정직 관장으로 임명해 올해로 5년째 관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올해로 박물관 근무 28년째"라며 "재미있고, 맛있는 박물관은 만들자는 것이 내 목표"라고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머투초대석]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연 200만명 외국인 관광객…비결요? 재밌고 신나니까"

열 평 남짓한 사무실 벽면을 둘러싼 나무 책장. 선반마다 잡동사니들이 놓여있다. 북유럽 전통의상을 입은 소년소녀 인형, 일본어가 쓰인 표지로 싸여있는 딱딱해진 쌀빵, 거친 갈색의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까지. 한편에는 손톱보다 작은, 유약을 발라 물기가 만져질 것처럼 촉촉해 보이는 도자기 개구리 3마리도 쪼르르 올려져 있다.

“물건 버리는 걸 잘못해요. 여기 있는 물건중에는 세계 민속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우리 박물관을 찾아오면서 선물로 주고 간 것도 있고, 내가 가져다 놓은 물건도 있고. 아, 이건 미국에 있는 청바지 박물관에서 가져온 건데….”

“뭐가 이렇게 많아요?” 말을 잘못 꺼냈다. 천진기(54)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인터뷰를 시작도 하기 전에 30분 넘게 물건을 소개하느라 바쁘다. 오래된 만물 잡화상 주인처럼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들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는 자신을 “안동 촌놈”이라 말한다. 어렵고 학술적인 것에서 재미를 못 느낀다. 박물관이 좀 더 재미있고, 신 나고, 심지어 맛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걸까. 국립민속박물관은 1년에 약 300만 명이 찾는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외국인이다.

민속자료를 연구·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생활사 박물관인 국립민속박물관. 1945년 한국 민속학의 선구자인 송석하의 수장품을 기증받아 개관한 국립 민족 박물관이 그 시초이나 6·25 전쟁으로 폐관된 후 1966년 경복궁 수정전에 소규모로 다시 지어졌다. 1975년 경복궁 내 현대미술관이 이전하면서 그 곳으로 이전했다가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던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물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이곳에서 28년째 근무 중이다. 그의 말처럼 “관장이 된 5년은 그중 짧은 기간”일 뿐이다.

- 국립민속박물관에 오면 음식도 먹고, 점도 봅니다. 전시가 색다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이 1년 동안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하며 생활하는지를 알려주는 박물관이잖아요? 멋진 유물을 떡 하니 갖다놓고 설명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

우리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나면 우리의 삶이 보여요. 한국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꾸미죠. 박물관에 왔는데 공연도 보고, 재미있는 놀이 체험도 하면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게 되니 말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경쟁 상대는 다른 박물관이 아니고,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테마파크여야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2014년 방문객 수는 327만 명이었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221만 명으로, 전체의 67.5%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국립중앙박물관 방문객 수는 354만 명. 외국인은 14만 명 정도로, 전체의 4% 수준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예산, 인력, 규모(건물) 등 모든 측면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8분의 1 수준이다. 이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이유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54)은 "우리 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이지 '한국'민속박물관이 아니다"라며 "한 개인이 국민이자 우주의 티끌로서 어떤 좌표를 찍고 살아갈 지를 인식하게 돕는 곳이 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 단체관광은 여행사가 수지를 고려해 동선을 잡죠. 지리적 조건 때문에 관람객이 많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경복궁 안에 박물관이 있고(정면에서 오른쪽) 관광코스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관람객이 많은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리적 이점이 관람객이 많은 이유라면, 같은 지역 내에 위치한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관람객 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하나요. 우리 박물관과 직원들의 색다른 시도에 대한 노력이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께서 “다들 전시하기 전에 국립민속박물관을 한번 가 봐라” 말씀하신 적도 있죠. 저희 전시를 한번 본다면 차별점을 알게 될 거라고 자부합니다.

- ‘민속’이라고 하면 왠지 한국적인 것만 해야 할 것 같은데, 전시 주제가 다양하고 엉뚱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지 ‘한국’민속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물, 식물, 인간, 자연, 우주를 모두 민속이라고 봐요. 박물관이 왜 필요한지에 먼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저는 한 개인이 국민이자 인류요, 자연이자 우주의 티끌로서 어떤 좌표를 형성하고 살아가야 할지를 박물관을 통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박물관이, 자연사박물관이 필요한 이유죠.

우리가 2014년 열었던 ‘청바지 특별전’을 예로 들어보죠. 1년에 18억 개가 팔리는 청바지는 세계 공통의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 청바지에 대한 인식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미국에서는 90살 넘은 할머니가 “섹시하다”는 이유로 입죠. 인도에서는 “청바지를 입으면 몸 파는 여자”라고 말하죠.

지구라는 작디작은 행성에서 우리가 왜 치고받고 싸울까요.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만 최고라는 인식, 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박물관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임 5년입니다. ‘이건 잘했다’고 자부할 만한 성과가 있다면요.
▶민속학 현장조사를 예로 들겠습니다. 2박 3일 답사 다녀오면 책 한 권 논문 몇 편으로 나오죠. 진정한 연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래서 연구자들을 8개월~1년씩 현장에서 살게 했어요. ‘현장학’으로서 민속학은 현지조사가 필수니 그 부분을 강화한 거죠.

“가정이 있는데 어떻게 생판 모르는 지역에 가서 1년씩 살다 오냐”는 등 직원들이 반발했어요. 하지만 취지를 이해해주는 직원들이 하나둘씩 생겼습니다. 그 결과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는 학예사들이 하나둘 생겨났다는 겁니다. 전시 한번 하고 하면 그 분야 전문가 한 명은 나와야 하지 않겠나요?

또 하나는 박물관을 추가로 짓지 않고도 전국 각지에서 전시한 일입니다. 박물관은 이미 많다는 데 착안했죠. 우리가 가진 전시 기획 능력을 활용해 지역의 작은 박물관에서 전시를 여는 거죠. 1년에 9개 박물관을 선정해 특별전을 함께 엽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천 관장 취임 1년 차에 예산 15억 원의 확보 작업을 마치고 2013년부터 지역 소규모 박물관과 공동기획전을 해 왔다. 충남 아산시 영인산산림박물관, 대구대 중앙박물관 등 매년 9개 박물관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변신'했다. 박물관이 변하고 관람객이 증가하자 지자체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특별 예산을 편성해 박물관을 리모델링하는 등, 프로젝트로 인해 지역 박물관이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진기(54) 국립민속박물관은 '1인칭 박물관', '타인 소장품으로 만드는 박물관' 등 다양한 목표를 갖고 있다. 그는 "박물관을 통해 사람들이 재미를 얻는 것은 물론,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 ‘이런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나요.
▶나의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설명 가능한 ‘1인칭 박물관’, 소장 대신 기탁 형식으로 유물을 보존 및 전시하는 ‘타인 소장품으로 만드는 박물관’, 박물관에 어떤 것이 있는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박물관’ 등 이루고 싶은 목표가 많습니다. 민속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박물관’도 목표 중 하나죠.

박물관에서는 음식을 조리할 수 없으니 쉽지 않아요.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우리 생활 속 음식들을 찾고 있는데, 조만간 박물관 내에 설치할 ‘사과 자판기’가 그 예입니다. 경북 청송군에서 개발한 이 사과 자판기는 돈을 넣으면 세척 사과가 예쁜 포장에 담겨 나와요. 관람하다가 물 대신 상큼한 사과를 먹는거죠.

열린 박물관을 위해서는 하반기에 박물관 문을 활짝 열어젖힐 생각입니다. 박물관에서 직장인들이 회의도 하고, 아이들 생일파티도 하면 안되나요? 박물관 앞에 있는 ‘오촌댁’(1848년 경북 영덕군에서 지어진 한옥집으로, 통째로 옮겨와 현재는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 있다)부터 제 사무실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입니다.

- 국립민속박물관에 아직 오지 않은 국민에게 ‘이래서 와야 한다’ 말씀하신다면.
▶간송미술관에 새끼 원숭이가 달려 있는 연적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앞에 서서 펑펑 우는 사람이 있어요. 모자지정(母子之情), 부모 자식 간의 이별의 슬픔을 느끼는 거죠. 울다 보면 마음이 위로받고 치유되죠.

저는 박물관은 교육기관이나 문화재 기관이 아닌 위로받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위로를 얻고, 박물관에서 맛있는 음식을 맛본 뒤 그 맛을 기억할 수 있는 곳. 국립민속박물관은 그런 곳입니다.

2017년 하반기에는 ‘쓰레기’를 주제로 하는 아주 특별한 전시를 계획 중입니다. 궁금하신가요?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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