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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125년 전 오늘… 반 고흐를 '불멸의 존재'로 만든 동생 잠들다

2016.01.25

[머니투데이] 박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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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반 고흐/출처=반 고흐 뮤지엄

[역사 속 오늘]'빈센트 반 고흐 최대 이해자' 테오 반 고흐 사망.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가 1889년 1월28일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보낸 편지내용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눈을 감은 지 120여년이 지났지만 프랑스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는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 마을은 빈센트 반 고흐가 말년을 보내며 여러 작품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 곳이다.

그는 권총으로 스스로 자해한 뒤 이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재정적 지원자이자 그의 그림을 세상에 알리게 한 1등 공신인 테오 반 고흐도 이 곳에 그의 형과 함께 나란히 잠들어 있다.

'테오 반 고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빈센트 반 고흐는 없었다'로 평가될 만큼 테오 반 고흐가 빈센트 반 고흐에게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빈센트가 화랑 판매사원, 전도사 등 진로를 여러 번 바꾸다 스물일곱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테오의 권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한 그림 판매상으로 자리잡은 테오는 통찰력있는 투자가였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후원자였고 폴 고갱·폴 세잔 등 당시 파리의 신진 작가 작품을 거래했다. 그는 형의 그림도 유명해질 것으로 확신했다.

테오를 제외한 가족들은 감정조절에 미숙했던 빈센트에게 등을 돌렸지만 그는 형을 이해했고 죽는 날까지 헌신적으로 돌봐준다. 둘은 700여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 이 편지들은 두 사람 사후에 책으로 출간돼 두 형제의 관계와 빈센트의 심리 상태를 알게해 준다.

테오는 미술 재료값을 제외한 생활비로 매달 200프랑씩 빈센트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우체부의 월급이 약 135프랑인 점을 감안하면 적잖은 수준이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는 대신 그의 그림을 동생에게 선물로 건넨다. 테오는 이 그림들을 자신의 집에 걸어두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하는 데 힘쓴다.

프랑스 아를에서 귀를 짜르는 등 평범한 삶을 사는데 실패한 빈센트를 마지막 안식처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살게 도와준 것도 테오다. 죽기 전까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머문 빈센트는 그곳에서 생애 최고의 걸작들을 남긴다.

하지만 빈센트는 정신질환을 이기지 못한 채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고 테오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둔다. 형의 죽음을 목격한 테오도 6개월 뒤 충격으로 인해 눈을 감는다.

생전 빛을 못봤던 빈센트의 그림은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 봉허에 의해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빈센트가 그린 몇몇 그림들은 수십년이 지나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사이에 순위가 매겨지게 되고 그의 이름이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테오 반 고흐의 초상(Portrait of Theo Van Gogh, 1887)/출처=반 고흐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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