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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고궁서 받은 영감을 동물로 형상화 … 사석원 '고궁보월'展

2015.06.09

[뉴시스] 신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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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사석원. ( 사진=가나아트) 2015-06-08

명성황후는 꽃사슴, 정조는 수사슴.

형형색색의 물감이 캔버스 위에서 파도를 친다. 호젓한 고궁을 배경으로 사슴과 사자, 호랑이, 부엉이, 토끼, 돼지, 황소, 말 등 동물이 고고한 자태의 나무, 만개한 꽃과 어우러져 있다.

옛 궁궐에 이 동물들이 모두 살았을 리 없고 무슨 의미일까? 장중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들에는 뭔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강렬한 원색과 일필(一筆)적 드로잉으로 표현주의적 작품을 그려온 사석원 작가(55)가 오는 12일 3년 만에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고궁보월 古宮步月'을 연다.

어린 시절부터 고궁을 즐겨 찾던 사 작가는 이번에 600년 역사의 고궁을 구석구석 훑으며 이제는 아련해진 역사 속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 약 40여 점을 선보인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사석원 작가는 “궁궐은 정말이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며 “아름답지만 조선 역사의 상처와 질곡이 그곳에 어리비치는 것을 느낄 때, 아름다움에 비애가 겹쳤다”고 말했다.

경복궁 꽃사슴, 2014, oil on canvas, 130.3x193.9cm (사진=가나아트) 2015-06-08

“조선의 궁궐을 들락거리다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역사적 사건에 대처하던 방식, 인간적 감정을 상상하며 그때 그 감정을 동물로 상징화해 그렸다. 궁을 비춘 달처럼 궁 안 풍경을 은근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싶었다.”

‘경복궁 꽃사슴’은 영민해 보이는 꽃사슴이 둥근 달을 배경으로 하늘을 우아하게 달리고 있다. 사석원 작가는 “영국의 여성지리학자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을 보면 명성황후에 대해 우아한 자태의 늘씬한 여성이자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우며 예지가 빛났다고 써놓았다”며 명성황후가 꽃사슴으로 표현된 것임을 알렸다.

‘창덕궁 규장각 수사슴’에서 고귀한 자태의 수사슴은 까만 눈이 특히 명석해 보인다. 우아하게 뻗은 뿔에는 서양에서 ‘지혜의 상징’으로 통하는 부엉이가 여러 마리 앉아있다.

사 작가는 “수사슴은 정조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특히 정조와 고종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번 작품을 역사화로 받아들이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이 모티브가 돼 그린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조는 대단한 군주다. 반면 고종에 대한 평가는 분분한데, 정조의 포부를 이어받아 근대화의 씨를 뿌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미 국운이 쇠퇴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측면에서 측은한 마음이 든다.”

창덕궁 규장각 수사슴, 2014, oil on canvas, 130.3x162.2cm (사진=가나아트) 2015-06-08

손철주 평론가는 사석원의 작품을 '사실(史實)과 색다른 기색(氣色)'으로 해석했다. 그는 "무릇 모든 예술은 보이는 존재 뒤에 보이려는 존재를 숨기기 마련”이라며 “작품들 거의 전편에 징후와 예후(豫後)가 똬리 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도 드물고 신기한 소재와 짝을 이룬다”라고 썼다.

일례로 ‘1776년 3월 창덩궁 후원’의 경우 창덕궁 후원에 자리한 존덕정과 관람정 일대가 이 그림의 무대다. 1776년 3월, 정확히 3월10일은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가 옥좌에 오른 날이다.

손철주 평론가는 “정조가 이끌 새 시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라고 해석했다.

“그날 눈이 내린 기록이 없고, 홍매가 흐드러졌다는 기록 역시 안 보인다. 사석원은 일부러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려 했다. 눈은 서설(瑞雪·상서러운 눈)이요, 홍매화는 축복이랄까. (중략) 부엉이가 꿈틀대는 것 같더니만 한 마리가 마침내 날갯짓을 시작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돼야 날개를 편다. 이 말은 역사적 조건은 지나간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로 전용된다.”

사 작가가 이번에 선보인 그림에는 부엉이가 유난히 많다. 부엉이는 우리나라에서 흉조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들은 마을을 향해 부엉이가 울면 그 마을에서 상(喪)이 난다고 봤다. 반면 서양에서는 지혜의 상징, 부의 상징으로 인식돼왔다.

서석원 개인전.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 2014, oil on canvas, 162.1x227.3cm (사진=가나아트) 2015-06-08

사 작가는 부엉이에 대해 “지혜의 상징, 파수꾼의 의미로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올빼미, 부엉이류를 좋아한다고 밝힌 사 작가는 서울 토박이지만 방학 때는 시골에서 보냈다. 어느 날 그는 사냥꾼이 잡아온 올빼미를 처음 보고 단숨에 매료됐다고 했다.

“까치나 참새 등 그동안 제가 봐온 새와 달리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새라고 뇌리에 각인돼 버렸는데, 50년 전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석원은 둥국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국립파리 제8대학에서 원시미술로 석사과정을 수학했다. 동양의 전통적 조형 관념에 서양화의 채색효과를 조화시켜 새로운 회화영역을 개척했다.

이번에는 물감을 어느 때 보다 많이 썼다. 그야말로 ‘물감 천지’다.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어 물감을 두껍게 칠했다. 궁궐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물감의 양이 늘었다. 덕분에 물감을 말리는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 3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 물감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웃음)”

전시는 다음달 12일까지 열린다. 전시 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도슨트(안내원)가 작품설명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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