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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살아온 과정 다 드러내"…한국현대미술 이끈 박서보 회고전(종합)

2019.05.16

[뉴스1] 이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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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9월1일까지 서울관서 '박서보' 회고전 개최
박서보 70여년 화업 담아…신작 및 미공개작도 최초 공개

16일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장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박서보 화백.© 뉴스1 이기림 기자

"내가 숨겨두고 싶었던 것들, 내 살아온 과정들을 다 드러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박서보(88) 화백은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자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박서보의 삶과 작품세계를 한 자리에 조망한 대규모 회고전인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 기자간담회였다.

박 화백은 "근육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배만 볼록 나온 노인이 됐다"며 "평생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 독자적인 세계 개척은 물론 중앙집권화가 아닌 모든 도시의 문화수도화를 고민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지난 1956년 도전과 창조정신을 촉구하는 '반국전 선언'을 발표하며 기성 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품 '회화 No.1'를 발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획을 그었다.

이후 물질과 추상의 관계와 의미를 고찰하며 이른바 '원형질' '유전질' 시기를 거쳐 1970년대부터 '묘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박 화백은 한국 추상미술의 발전을 주도했으며 현재까지 그 중심에 서있다. 또한 평론가, 행정가, 교육자로도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을 일구고, 국내외에 알려왔다.

박서보 화백, 허의 공간.(2019 재제작)© 뉴스1 이기림 기자

그런 박 화백의 삶과 70여년간 선보인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게 이번 전시다. 전시명도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예술'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묘법을 지속해 온 그의 화업을 지칭한다.

전시는 박 화백의 1950년대 초기 작품부터 2019년 신작까지 160여점의 작품 및 아카이브가 다섯 시기로 나뉘어 시대의 역순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원형질' 시기에는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1957)와 '원형질' 연작이 소개된다. 박 화백은 '회화 No.1'에서 당대의 불안과 고독을 분출하며 기존 가치관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러나 '원형질'에선 파괴로부터 절규로 나아가 생존의 몸부림을 표현했다.

두 번째 '유전질' 시기에는 19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 연작과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을 전개한다.

세 번째 '초기 묘법' 시기에는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한 1970년대 '연필 묘법'이, 네 번째는 '중기 묘법' 시기에는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이용한 '지그재그 묘법'이 소개된다.

마지막 '후기 묘법' 시기에는 1990년대 중반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 같은 도구로 일정한 간격의 파인 면들을 만들고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미공개 작품 일부를 비롯해 2019년 신작 2점이 최초 공개되며, 1970년 전시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상'도 볼 수 있다.

신작 앞에서 박서보 화백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그림을 "수신을 위한 수행도구"라고 여겼다는 박 화백. 그러나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몸 반쪽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뒤 "그 기본을 잊고 치유를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화백은 "10년 이상 이렇게 그리다보니 양식주의에 빠지겠다는 위험이 느껴졌고, 다르게 그리기로 생각했다"며 그 결과물인 신작 2점을 이번 전시에 공개했다.

신작은 그의 과거 '연필 묘법' 작품들처럼 연필로 그려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르다고 박 화백은 강조했다. 그는 "그때처럼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그림을 그리진 못했지만 신체에 맞는 예술을 했고, 색을 썼기 때문에 수신과 치유를 동시에 잡는 그림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화백은 "아날로그 시대엔 작가들이 이미지를 토해놓은 것을 사람들이 돈 주고 사서 이미지폭력을 당했다. 당시에는 용서가 됐지만 디지털 시대에선 이래선 안 된다"며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이 된 가운데 그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흡인하는, 불안했던 감정이 안정되고 행복해지도록 하는 게 그림과 예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서보 화백은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해 현재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혁신에 힘썼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석류장, 옥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전시는 9월1일까지.

박서보, 묘법(描法).(Écriture No.01-77, 1977, 르몽드지에 연필과 유채, 33.5x50㎝,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뉴스1

박서보 묘법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뉴스1

박서보, 묘법(描法).(Écriture No.190227, 2019, 130x170㎝, Pencil and oil on canvas,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뉴스1

lgi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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