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자이니치 사진기록, 조지현 ‘이카이노 일본 속 작은 제주’

2019.02.26

[뉴시스] 조수정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조선시장 입구의 플래카드. 민주화를 갈망하는 한국 청년단체가 걸었다. ⓒ조지현

사진가 조지현(1938~2016) 회고전 ‘이카이노(猪飼野) 일본 속 작은 제주’가 서울 역삼동 스페이스22에서 개막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을 가리키는 ‘자이니치’ 조지현은 1938년 5월 3남2녀의 장남으로 바닷가 한촌인 제주도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신촌리는 제주 4.3사건의 전모를 다룬 김석범의 장편소설 ‘화산도’의 무대가 된 마을이다. 4.3사건으로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됐고 2만명의 주민이 일본으로 도망쳤는데 조지현은 10세 때인 1948년 8월 고모를 따라 아버지가 돈벌이를 하고 있는 일본 최대 조선인 밀집지역인 오사카의 이카이노로 갔고, 이후 54년간 인생의 대부분을 이카이노와 주변에서 살았다.

이카이노는 1973년 2월1일 행정상 지명이 사라진 일본 최대 조선인 밀집지역이다. 일본인에게 이카이노는 조선인을 연상시키는 기피 지역이었고 차별의 공간이었다. 옛날에는 이카이츠(猪甘津)라고 불렸는데 5세기부터 한반도에서 집단으로 도래한 백제인이 개척했다는 백제향(百済郷)이기도 하다. 1920년대 구다라가와(百済川)를 개수해 신히라노가와(新平野川) 운하를 팔 때 공사를 위해 모인 조선인이 그대로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그는 사진집에서 27세 때부터 5년에 걸쳐 이카이노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이유와 동력을 고백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소년기에 이카이노에서 맛 본 비애와 사춘기에 경험한 차별의 기억이 치유되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에 아픔과 굴욕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지현의 이카이노에는 ‘자이니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물으며 떠돌던 청춘의 순진했던 사색과 방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에게 제주도와 이카이노에서의 기억은 내 사진 표현의 원점이자 모티브와 주제였다. 사진에 담긴 소년들은 그의 분신이고, 어머니들은 가슴 깊이 남아 있던 어머니의 환영이다.

조지현이 이카이노를 촬영하기 사진한 때는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던 해인 1965년부터다. 조지현은 “이카이노 조선시장에는 남북 정치적 대립이 더욱 격화됐고 일반인의 일상까지도 스며들어 이웃끼리 말도 안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골목길을 걷고 있노라면 살벌함의 분위기가 스며들고 있었다”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조지현의 사진에는 남북 대립의 격랑 속에서도 순간의 삶을 살아가던 자이니치 역사의 진실들이 담겨 있다.

그의 ‘이카이노’ 사진에는 자이니치들의 생활과 연결되는 절대적 빈곤의 세계가 있다. 이카이노의 모습을 인화지에 극명히 남기고 싶다는 의식과 언젠가 역사의 증언이 될 수 있는 미래를 의식하면서 조지현은 사진을 찍었다. 조지현의 ‘이카이노’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담아낸 저항정신의 사진적 발현이다.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알지 못했던 한민족 이주사의 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조지현은 1989년 41년만에 어머니와 남동생이 살고 있는 고향 제주도에 돌아가기까지 연극 공연 사진을 시작으로 일본의 차별계급인 ‘부락민’을 기록했고, 한반도 도래인들의 역사를 찾아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2016년 4월 작고했다. 사진집으로 ‘부락’(1995) , ‘이카이노(猪飼野)-추억의 1960년대’(2003), ‘아메노히보코(天日槍)와 도래인(渡来人)의 족적’(2005) 등을 출간했다.

전시기획은 2016년 조지현 추모사진전을 기획한 사진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재일한국인의 이주사, 조선인 관련 전쟁 유적을 사진과 영상으로 작업하는 다큐멘터리감독 안해룡이 맡았다. 전시는 3월5일까지 오전 11시~오후 7시 관람할 수 있다. 공휴일은 휴관한다.

이카이노를 가로질러 흐르는 히라노가와는 원목들로 가득차 있다. ⓒ조지현

[email protected]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