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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루벤스 그림속 '조선옷 남자' 안토니오 코레아 아니다"

2015.10.19

[뉴시스]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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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미술의 거장 페테르 루벤스(1577~1640)가 그린 소묘 '조선 복식을 입은 남자'의 주인공은 조선인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술사학자 노성두(56)씨는 독서신문의 '책&삶'에 두 차례 글을 실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미술관에 있는 해당 그림의 주인공은 16세기 말 조선 시대에 왜구에게 잡혀 간 조선인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이어져왔다. 조선인이라는 뜻으로 '코레아'가 붙어 그림 속 남자의 이름은 '안토니오 코레아'로 굳어졌다.

게티 미술관의 공식 사이트도 이 그림을 '조선 복식을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로 소개하고 있다.

노씨는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다 헛짚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가 쓴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2004)의 내용을 반박하며 자신의 논지를 폈다.

우선, 학계에서는 대형 제단화의 준비그림으로 보는 견해가 우월하다고 짚었다. 작품 연대 추정이 가능한 루벤스의 제단화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이 1617~1618년께 완성됐다며 "학계의 추정대로 게티 소묘가 빈 제단화의 준비그림이라면 제작 시점을 1617년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책에서 소묘의 탄생 시점을 루벤스가 안토니오를 로마에서 만난 1607~1608년께로 앞당겨야 한다며 학계의 입장을 반박한다.

노씨는 이에 대해 "안토니오를 루벤스 소묘의 주인공과 연관짓기 위해 소묘의 제작시점을 자의로 앞당기면서 게티 소묘를 빈 제단화의 준비 소묘가 아닌 독립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반박했다.

게티 소묘의 주인공은 당초 중국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머리에 쓴 관모가 조선의 방건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작품 제목이 '조선 남자'로 바뀌었다.

1934년 C S 워틀리가 '조선인 특유의 투명한 말총 모자'를 지적하고, 곽 교수가 이것을 방건으로 확신하면서 현재까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제기 없이 수용돼 왔다는 것이 노씨의 지적이다.

그는 "방건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바뀌기는 하지만 원래 가로 세로 높이가 거의 같거나 납작한 정육면체에 가깝다. 그런데 제단화의 관모는 네모나게 각진 방건이 아니라 원통형"이라며 "게티 소묘의 관모도 원통형이고 각이 없다"고 설명했다.

"방건을 여러 해 사용하다 보면 세로로 각진 부분이 저절로 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방건은 벗어둘 때 납작하게 접어서 보관하기 때문에 해져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써도 각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노씨는 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해 허리에 연결시킨 포(袍)인 철릭도 게티 소묘와 실제 조선시대 것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조선 철릭은 일반적으로 무릎 아래에 살짝 내려온 깡총한 길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 니콜라스 트리고 또는 마테오 리치가 입은 중국식 철릭은 바닥에 쓸릴 정도로 길고 풍성해서, 게티 소묘의 주인공과 빈 제단화의 동양인이 입은 철릭과 더 가깝다"는 것이다.

결국 "조선 방건과 조선 철릭이 게티 소묘를 조선인으로 추정하게 하는 주요 근거라면, 여기서 출발한 모든 주장은 근거를 상실한 셈"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안토니오 코레아와 그의 로마 체류 시기가 겹치는 1607~1608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루벤스는 발리첼라 제단화 수령거부 사건, 교회 주제단부 장식 프로그램의 전면적 수정과 재작업, 또 시원치 않은 건강과 최악의 재정 상태로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때였다는 것이 근거다.

이를 토대로 "이 시기에 장차 10년쯤 뒤에 안트베르펜 예수회 교회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제단화 주문을 미리 예상하고, 유럽에 이미 꽤 진출해 있어서 모델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중국인은 제쳐놓고, 예수회 선교와도 상관없고 외교관계도 없어서 유럽 전체에 겨우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조선인을 굳이 수소문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조선인 노예 출신인 안토니오를 찾아낸 뒤, 그에게 혹시 동양의 고관대작이나 외교 관료나 고위 성직자가 걸칠 만한 의관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의관정제해 초상소묘의 모델로 서줄 것을 요청하고,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모델료를 지불했을까"라는 것이다.

게티 소묘 속 인물이 실제 누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추측이 대체로 우세한 가운데 한쪽에서는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조선시대 한복은 전쟁 등으로 인해 단순했는데 그림 속 옷은 화려하다는 등 의문도 여럿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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