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전시소식[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 Dummy-Scape : 북쪽의 모양

2018.08.21

Writer : news
  • 페이스북


 

 

 

Dummy-Scape : 북쪽의 모양

이성준展 / LEESUNGJUNE / 李成俊 / photography

2018_0815 ▶︎ 2018_0828 / 월요일 휴관

 

 

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

Goyang Aram Nuri Gallery Nuri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마두동 816번지) 제2전시실

Tel. +82.(0)31.960.0182

www.artgy.or.kr

 

 

가장 소박한 숭고, 그 모양 - 이성준, 『Dummy-Scape : 북쪽의 모양』을 중심으로 예술가가 사용하는 도구나 매체는 그 예술가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가령 시인의 예술은 언어에 종속된다. 언어의 사회성, 역사성 등의 넓은 개념뿐 아니라 자신의 언어적 특성, 즉 모국어가 무엇인지, 사투리를 쓰고 있는지 등이 시인의 작품에 영향을 다. 무용가는 자신의 몸 자체가 가장 예민한 도구이기에, 팔과 다리의 길이, 관절의 유연성 등이 그의 예술을 표현하는 훌륭한 조건이 되기도 하고 한계가 되기도 한다. 사진가는 당연히 카메라가 그를 대변한다. 카메라는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하면(예컨대 언어나 몸) 매우 현대적인 도구이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며 나타난 사진, 그리고 카메라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장르-사진-가 예술로 자리 잡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중이다.

 

이성준의 세 번째 전시 『Dummy-Scape : 북쪽의 모양』은 얼핏 그의 이전 전시와는 결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첫 번째 전시 『Twin-Eyes reflex』(2010)에서 당시 9세였던 맏딸과 함께 한 작업을 소개했다. 같은 장소나 소재를, 이성준이 수동카메라로, 초등학생 딸이 자동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것을 발표한 것이다. 이성준은 그 작업을 통해 '사진'이라는 예술을 행하는 것이 과연 작가인가, 아니면 카메라란 기계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성준은 두 번째 전시인 『The Copy-light』(2015)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둘째딸과 함께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엔 딸이 찍은 장면을 '복제'해 따라 찍는 방식을 차용했다. 그를 통해 그는 사진예술에서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그런데 『Dummy-Scape : 북쪽의 모양』展엔 이전 작업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어린 사진가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오롯이 이성준 홀로 찍은 사진만 선보인다. 이렇게 내용적인 부분, 외형적인 부분에서 큰 변화를 겪은 것 같지만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의 기본 방향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사진가에게 사진 그 자체가 무엇인가, 그리고 사진예술에서 사진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Dummy-Scape : 북쪽의 모양』展에서 선보이는 피사체들은 흙더미나 흙바닥 위에 놓인 바위 등, 어떤 '덩어리'들이다. 촬영지는 고양, 파주, 양주 등 경기 북부 지역이다. 이곳들은 공통적으로 2, 30여 년 전에는 도시가 아니었다. 이성준의 작품 속의 대상들, 즉 환경적, 사회학적 사정에 의해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덩어리들을 보며 끝없는 개발 속에 놓여있는 우리 모습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전시는 단순히 세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도시 개발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흙더미'가 생겨난다. 그는 경기 북부에 거주하는 작가로서 자연스럽게 그런 흙더미와 마주하면서 그 외견이 자연, 특히 산과 닮아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Dummy-Scape : 북쪽의 모양』展의 주인공은 바로 '닮은 것'들이다. 그는 거대한 자연 자체를 찍지 않고 의도적으로 자연과 닮은 것을 찍었다. 이는 예술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관객들은, 이곳에 전시된 작품이 예술이라는 것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가 한 작품을 대할 때 거기서 '숭고'를 찾는 것은 학습된 결과에 의한 것일지 모른다. 광활한 자연의 풍광을 보면 인간은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칸트는 이런 감정을 '숭고'라 표현하고 숭고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를 크기에서 찾았다. 즉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감동하고 심지어 공포심까지 품게 되는데, 그것은 예술을 예술이라고 인지하게 되는 반응과 맞닿아 있다. 『Dummy-Scape: 북쪽의 모양』展을 보며 우리는 숭고라고 할 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성준의 작품에서 숭고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생겨난다. 예술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관객들의 의지(의도)가 있고, 외견이 닮아 보이는 두 대상을 통해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의지)가 있다. 그런 두 가지 의지(의도)를 통해 사진 속 흙더미는 거대한 산의 이미지로 읽힌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 어떤 숭고까지 깃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준이 보여주는 숭고는 일종의 페이크(fake)이다. 'Dummy-Scape'란 제목에서 보여주듯, 이성준의 작품 속 산은 산과 외형이 닮아 있는 모형일 뿐이다. 우리가 감동을 느끼는 대상은 실물이 아니라 외형만 닮은 복제품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복제품에 감동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아무리 잘 그린 정물화라도 그것 역시 실물은 아니다. 사진 또한 그런 속성을 갖고 있다. 실물을 찍었더라도 그건 실물을 복제한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 복제품에 의미가 없진 않다. 우리가 사진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실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실재(實在)의 복제이지만, 그것이 감동을 품고 있는 순간, 그 자체로 실제가 되는 것이다. 사

 

실 이성준의 작품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이미지' 뒤의 의미를 찾는 작업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전시에는 관람객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이성준이 찍은 '흙더미' 사진을 '산'으로 읽는 것은 작가의 의도일 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 숭고를 보여주는 척하지만, 사실 가장 가까운, 가장 소박한 것들에 대해 말하며, 그 이면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관람객 스스로 사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성준이 이끄는 사유는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가 선택한 이 '산맥처럼 보이는 흙더미' 작품이 회화로서도 의미가 있었을까? 물론 그건 별 의미가 없다. 산과 닮은 흙더미를 그림으로 그려봤자, 보는 사람에겐 그저 산의 외형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사진 속의 흙은, 산과 아무리 닮아 있더라도 흙으로 남아 있다. 사진이기 때문에, 보여지는 것의 문제를 넘어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성준은 『Dummy-Scape : 북쪽의 모양』展을 통해 새로운 소재, 그리고 '숭고의 소박화'라는 새로운 인식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그는 사진이라는 자신의 도구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것이 이성준이라는 사진가를 예술가로서 존재하게 한다. ■ 권민경​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