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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문화공간 기린미술관] 상생-합-한지에 펼쳐진 금빛 세상에 유留하다

2018.07.03

Writer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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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합-한지에 펼쳐진 금빛 세상에 유留하다

이철규展 / LEECHOULGYU / 李喆奎 / painting.installation

 

2018_0704 ▶ 2018_0724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기린미술관

CULTURAL SPACE GIRIN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4길 46

Tel. +82.(0)63.284.0888

 

 

 

우리 전통매체로 작업하면서 한국적 정서와 미감을 동시대와 연결하고자 집중하는 작가 중, 이철규는 최근 몇 해 동안 개금(蓋金, 改金)작업이라는 전통적인 금박도금 방식을 응용하여 한지 위에 순금박을 붙이는 평면·설치작업을 선보여 오고 있다. 시각예술에서 매체란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와 작가가 참조하는 일련의 관례들 모두를 의미한다. 이 매체는 불변하거나 특정한 대상으로 한정되지 않아 언제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 세계를 지각할 수 있고 개인에게 특정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땅에 뿌리박은 닥나무 펄프로 만든 한지 캐스팅 종이에, 하늘의 태양빛을 닮은 순금박을 붙여 인간과 나무, 새, 물고기 등을 배치함으로써 천지인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천지인 세 가지 요소의 상생 방식을 입자생물학자 이돈화는 자신의 저서 『라이프 사이언스』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생명체들이 현상적으로 느끼는 시간적 속도와 공간의 규모는 의식의 밀도와 상관이 있다. 기본에너지인 음양이 화합하면 안정된 정적상태를 유지하고, 음양이 화합된 상태에서 발현되는 에너지는 창조적 생명활성을 띤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는 우주가 우연에 의지해서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사실 우주는 마음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마음은 우주를 의지해서 발현한다. 마음은 마음의 자리에서 마음으로 작용하고 우주는 마음의 어느 지점과 더불어 스스로 창조하며, 우주의 현상인 만유는 스스로 조율하고 스스로 현상한다. 이것이 만유생명이 서로 공유하면서 상생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이 같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및 합일을 통한 상생의 길을 기저에 두고 작품 명제를 「상생-합, Living Together-Unity」으로 제시한다.

 

모든 것이 생성, 변화, 소멸의 과정을 거쳐 시간성을 드러내는 세상에서, 황금은 변하지 않는 영속성으로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이나 불멸의 개념과 연관되어 왔다. 또한 스스로 빛을 발하는 특성 때문에 생명력의 근원인 태양 빛에 비유되기도 했고, 금빛 색상 및 광휘가 내뿜는 '압도적인 힘' 덕분에 오랫동안 종교적 절대 신성과 숭배, 그리고 물질적 욕망의 상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에는 금본위 화폐제도로 글로벌 소통의 기본이 되고 언어나 물질을 넘어서는 수단으로써 만능의 대체물이다. 하지만 이런 절대 장점과 거대 위력 때문에 황금이 있는 곳이라면 누구든 집어등같이 몰려드는 보편의 현상이 우리 삶에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본 전시는 보여주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행동과 의지의 근거로 설정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인 자아를 부정하며, 자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무아론을 강조한다. 모든 번뇌와 갈애가 자아에 귀속되는 탐심에 집착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하늘과 땅과 중생을 금이라는 동일한 소재로 지었다. 소재의 동일성은 이 금빛 세상에서 각각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장치로 보인다. 우리 자아가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수용한다면, 자기본위의 착각과 집착에서 벗어나, 하늘과 땅과 중생의 그 어느 경계쯤에 서서 조화와 합일에 이르는 궁극의 길을 열어가는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생-합-독도무진도(獨島無盡圖) 연작시리즈 3점 ● 여기 연작시리즈 「상생-합-독도무진도(獨島無盡圖)」 세 점을 함께 보자. 우리 주변에 흔한 바위땅과 최고의 가치로 눈부신 황금을 합체한 독도 형태의 덩어리를 물 위에 띄웠다. 동해였을까. 푸른 바다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세 이미지 중에서 어느 것이 독도인가. 일견 세 점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다름의 실체는 결국 동일한 독도다. 다름과 같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인 것이다. 또한 합체된 이미지를 보면 각각의 바위섬 이미지는 동일한 대칭 형태의 황금 섬으로 수면에 드러난다. 순식간에 바위는 황금이 되고 황금은 바위가 된다. 섬뜩해지는 순간이다. 바위섬과 황금섬 역시 같은 독도의 실체라고 하는 점에서 물질과 비물질, 실재와 허구, 현실과 가상도 쉽게 두 얼굴의 두 얼굴이 될 수 있음이다. 바위섬이라는 보편의 외관이나 황금 섬이라는 비 환상 같은 자기본위의 개념, 편향된 시각 혹은 특정 언어의 한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이야기처럼 바위섬을 보며 황금섬을 생각하거나 황금섬을 보며 바위섬을 떠올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편향 속에 갇히지 않고 편향을 넘어 서는 것, 그 경계로 나아가는 것의 가치가 우리를 이끈다. 익숙하고 편안하고 잘 아는 것에 안착하는 것을 벗어난다는 것. 바위섬을 넘어 황금 섬 너머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그 지점에서 머무르고 묵으라. 그것이 좋겠다. 동일한 독도라는 실체를 여섯 개의 다른 이미지로 드러내는 그 경계와 낯섦, 그 간극을 유희하는 것, 그 것이 우리를 사유하게 하고 그 사유를 따라 또 다른 실천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점을 작가는 「상생-합-독도무진도(獨島無盡圖)」를 통해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무한 욕망의 상징인 황금을 희구하는 삶이 부질없고 헛된 것임을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현실적 인간에게 버겁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작가는 순금박을 하늘 끝까지 땅 끝까지 화면에 가득 차게 구성함으로써 그 방법을 모색하도록 돕는다. 갖고 싶은 것을 넘치도록 가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너머의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황금이 가진 거대한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힘이 우리가 평생을 두고 매달릴만한 유일한 대상은 아니라는 양가적 관점을 조명한다. 이로써 자본과 물질만능의 현대사회에서 관람객들이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한다. 경계에 서있거나 경계를 넘어서는 힘은 우리 인지와 감각 및 의식을 확장하는 첩경일 것이며 미지의 것과 조우하는 지점이 될 수도 있다. 한지 위 금빛 세상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외칠 수도 있다. "나는 미더스 왕이다! 황금이 최고다!" 이와 대조적으로 "황금이 최상의 가치는 아니다! 보다 나은 것을 찾고 싶다!" 이 두 가지 관점의 간극에서 삶을 유희적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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