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라이즈호텔은 개관 두 번째 전시로 인도네시아 작가 좀펫 쿠스위다난토, 중국작가 주 시앙민, 그리고 한국작가 백경호, 심래정이 참여하는 아시아작가 그룹전 <시차적응법 JET LAGGED>을 개최한다.
삶은 특정 대상과의 끝없는 대면, 이해, 다툼 그리고 조율의 미로 속을 헤매거나 새 좌표를 설계해 나가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 대상은 특정 인물일 수도 있지만, 사회 구조가 되거나 혹은 목표이자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 대상들과의 관계는 태생적 온도차로 인해 끊임없이 미끄러질 수 밖에 없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항상 그 차이에 적응하거나 조율해 나가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전시 <시차적응법 JET LAGGED>은 그 간극들이 만들어내는 시차에 대항해 다양한 시각 언어로 스스로의 좌표를 설계하고 적응해 나가는 4인의 작가로 구성된 전시이다.
인도네시아 작가 좀펫 쿠스위다난토(b.1976)는 오랜 식민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인도네시아 특유의 복잡한 문화적 풍경과 부조리한 사회역사적 구조, 그리고 피식민인으로서의 애환과 그 경계공간에서의 생존과 적응에의 고민을 비단 인도네시아적 층위가 아닌 범세계적 맥락에서 짚어내고 이를 설치작품과 영상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식민 역사 속에서 목숨을 잃어 신체가 없는 형상들의 대열과 이들이 치는 영혼없는 기계적 박수, 연주하는 이 없지만 혼자 움직이는 드럼, 그리고 식민 지배의 잔재이자 상징인 샹들리에 등의 배치는 오랜 식민 문화에서 형성된 벗어날 수 없는 정체성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좌절과 투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중국 젊은 작가 세대의 대표 주자 주 시앙민(b.1989)은 정치경제적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중국 동시대 젊은이의 모습과 행태, 그리고 그들의 감정 상태나 심리적 불안감을 회화라는 특정 매체를 통해 포착하고 사유하는 데 주력한다. 예를 들어, 몸에 문신을 한 젊은이들의 형상을 느리고 나태하게 표현하는 반면, 권투하는 젊은이들은 마치 너무 빠르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은유하듯 속도감 있고 거칠게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의도가 매체를 통해 극대화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비단 표현수단로서의 회화가 아닌 총체적인 감각의 장으로서의 회화를 강조하고, 회화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작가 백경호(b.1984)의 장점은 회화로의 끝없는 탐닉과 그 결과물로서 매체적 이상 구현을 위한 여러 조형적 시도들이 만들어내는 시지각적 유희이다. 백경호 작가는 회화라는 큰 구조 속에서 이미지나 색채들을 거침없이 배치하고 두서없이 표출함으로써 이미지의 조형적 가능성과 유희성의 한계를 끝없이 탐문하고 확장한다. 작가가 2011년부터 발전시켜오고 있는 시리즈 는 인간을 형상시키는 동그라미와 네모 캔버스의 분절과 조합이 그 특징이다. 과거 여행에서 마주했던 모아이 석상의 형상과, 그 형상이 공간 속에서 만들어내던 존재감을 회화 작품으로 구현해내기 위해 시작한 시리즈가 바로 시리즈다. 분절된 동그라미와 네모틀의 간단 조합이 만드는 윤곽은 천사 혹은 인간이라는 구상적 형상을 보는 즉시 명확히 제시하지만, 그 윤곽선 내부를 가득 채운 색채나 질감들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어지럽다. 그 즉각적 대비는 추상과 구상, 표출과 자제, 자유와 규율 등의 경계와 그로 인한 긴장감으로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이끈다.
작가 심래정(b.1983)은 인간의 원초적 내면 고백이나 태생적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극한의 강박과 집착을 검거나 흰, 대척점에 있는 두 색에 기댄 무겁고 음습한 기운의 드로잉, 그리고 강박적으로 수십 수백장씩 그려낸 드로잉들이 중첩되어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여과없이 분출한다. 큰 맥락에서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불안에 잠식된 구체적 서사 구조에서 시작하는 듯 하지만, 잠식된 영혼의 서사는 곧 조각조각 불규칙적으로 파편화되어 거침없이 흩어지고, 결국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에의 어설픈 시도나 갈망으로 귀결된다.
시리즈 <식인왕국 : 심령수사>는 작가가 지난 3년간 진행해오고 있는 <식인왕국>의 3번째 이야기로 전편인 <식인왕국 : 생산공장> 인육통조림의 식재료로 쓰여진 희생자 모넬라에 대한 이야기이다.심령수사는 사건이나 사고를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영적인 행위를 통해 수사를 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심령수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심령 수사 중에서도 작가는 사건과 연관된 물건에 손을 대어 사건 당시를 회상하는 수사법인 ‘사이코메트리’를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인다. 본 작품은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모넬라가 살해되던 당시에 입고 있던 티셔츠에 손을 대어 당시의 상황, 그리고 그녀의 과거를 읽어내고 그녀의 영혼과 대화하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벽화, 드로잉, 영상을 통해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