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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美, 韓문화에 반하다··· 클리블랜드미술관 이야기

2013.08.16

[머니투데이] 선승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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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미술관 라파엘 비놀리가 설계한 리노베이션 중정에서. 오른쪽 2층이 한국실 입구

지난 6월 클리블랜드미술관은 설립 100년 만에 한국실을 오픈했다. 한국실과 일본실 오픈을 큐레이터로 담당한 나는 가슴 벅차다. 외국 미술관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한다는 것이 어떤지에 관한 그 숨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많이 질문 받고 대답했던 내용을 공개한다. 앞으로 한국 문화가 국제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나의 경험이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은 어떤 미술관인가요? -미국 아시아미술 3대 컬렉션

클리블랜드미술관은 1913년 설립된 미국 중서부를 대표하는 미술관입니다. 특히 아시아미술컬렉션의 수준은 미국 보스턴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함께 3대 컬렉션에 속합니다. 20세기 초중반 클리블랜드가 중공업이 발달했던 시절, 록펠러나 세브란스와 같은 대재벌을 배출한 도시입니다. 당시 미술관이 탄탄한 펀드 조성으로, 최고 수준의 미술품만을 소장하는 방침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실 설치는 1999년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관이 재편되면서 그전까지 일본실 한편에 전시되던 한국미술이 최초로 독립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국국제교류기금의 지원을 받아서 2013년 최초로 한국실을 오픈했습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일본미술큐레이터로 선임자는 누구인가요? -한국인 최초 임명

클리블랜드미술관 100년의 역사 속에서 셔먼 리 박사가 관장겸 아시아큐레이터를 역임했고, 마이클 커닝햄 박사가 1977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일본미술큐레이터로서 근무한 다음, 7년만의 공석이었습니다.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공식명칭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던 시절, 클리블랜드미술관의 한국 일본 미술 큐레이터로 발탁되어, 2010년 최초의 한국인 출신 한국일본큐레이터로 부임했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한국미술 외의 범위까지 담당하는 것은 드문 경우입니다.

어떻게 한국에서 미국으로 발탁되었나요? -본토 출신과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는 미국

왜 클리블랜드미술관은 한국인에 있는 나를 비자 절차를 거쳐, 이사 비용을 제공하면서까지 선발했을까. 그 대답은 내가 한국 본토 출신이며, 동시에 다양한 경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초중고 대학, 석사까지 한국에서 마친 것이 가장 평가 받았던 순간입니다. 조기유학과 반대로 한국에서 받은 교육이 중요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일본 도쿄대학미술사학과에서 박사를 하고, 하버드대학 엔칭펠로우로 선발되었던 경험이 개방적인 역량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본미술, 국외전시, 한국미술을 다양하게 기획했던 8년간의 경험이 핵심 경력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은 큐레이터의 절반 정도를 미국 외 국가에서 발탁합니다.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 국적을 불문하는 미국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여성 아시아인으로 불리한 점은 없었나요? -소수자를 보호하는 미국 문화

저와 경쟁한 최종후보는 미국인 남성으로 아이비리그에서 일본미술사로 박사를 마치고, 주요 미술관의 학예부장급이었습니다. 한국인 여성인 내가 경쟁하기에 버거운 상대였지만, 오히려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저에게 기회가 더 수월하게 오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월급은 얼마나 받으셨나요? -큐레이터를 채용하기 위한 펀드레이징

큐레이터를 임용하기 위한 재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체 예산 큐레이터, 기금 큐레이터입니다. 미국 큐레이터 중에서 직함 앞에 사람의 이름이 붙는 경우는 기금큐레이터 입니다. 큐레이터의 연봉을 기금의 이윤으로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한국일본미술큐레이터로 근무하게 된 재정은 미국 앤드류 멜런(Andrew Mellon)재단에서 3년간 45만 달러(한화 약 5억 원)을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일부를 큐레이터의 급여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오버헤드로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임용과 관련된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현재 한국의 재단은 한국실을 오픈하는 비용과 특별전을 위한 지원에만 투자합니다만, 국외에서 한국미술큐레이터를 더 안정적으로 양성하는 것은 기금 큐레이터를 늘리는 것입니다.

한국에 귀국하시고, 계속 컨설팅을 하셨나요? -문화기관의 유연한 조직 운영

2011년 성균관대학교로 부임하게 되면서, 클리블랜드미술관은 컨설팅큐레이터로 한국실과 일본실의 나의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유연한 조직 운영에 놀라웠습니다. 심야의 스카이프 화상회의와 방학을 이용한 현지 출장으로 오픈까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실 최초 오픈 2013.6.26. /사진제공=클리블랜드미술관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실 최초 오픈 2013.6.26 /사진제공=클리블랜드미술관

클리블랜드미술관에는 한국미술이 많은가요? -한국미술사의 핵심 작품을 소장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한국실은 자체 컬렉션으로 상설 전시실을 오픈했다는 점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국보급 미술품을 빌어 전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더 빛나는 성과입니다. 현재 미술관의 한국미술 소장품은 300여 점 내외로 중국, 일본, 인도 소장품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지만, 엄격한 기준에 의해 한국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로 컬렉션이 채워져 있습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은 회화가 강합니다. 특히 한국실 오픈에 전시된 고려 나한도는 국외 10 여점 밖에 현존하지 않는 작품입니다. 조선중기 김시의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 1584)와 조선후기 '칠보산병풍'은 국보급 작품입니다. 불교조각으로 조선초기의 삼존상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를 연결하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입니다. 한국도자로서 분청 태항아리는 한국에서도 볼 수 없는 크기와 수준의 예입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은 한국미술을 구입하나요? -최고만을 수집하는 클리블랜드미술관과 한국 미술

2014년 100주년 행사에 맞추어 2011년 구입한 '책거리 병풍'이 한국실에서 전시될 예정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동안 유럽으로 통해 미국으로 전해진 '책거리병풍'을 구입하였습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 미술품 컬렉션의 역사에 기여하여, 수준 높은 한국미술을 더 많은 미국인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뿌듯합니다. 국외에 있는 한국문화재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문화기관에 이미 소장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는 것보다 국제 미술 시장에 나오는 한국문화재의 구입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발로 뛰고, 국제적으로 신뢰 관계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명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시 준비 중에 무엇이 어려웠나요? -중국실·일본실과 경쟁, 그리기 어려운 한국 지도

한국실 전시는 비교적 순조로웠지만, 두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아시아관에서도 한중일의 전시 면적은 늘 경쟁하는 관계입니다. 한국실은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신축한 북관에 일본실과 이웃해 위치합니다. 라파엘 비뇰리의 리노베이션 설계가 전시실 입구의 방향이 바뀌면서 한국실의 위치가 일본실을 통해야만 한국실에 입장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한국과 일본미술을 동시에 관할하는 입장에서, 한일 공통문화인 불교미술로 중간지대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입구를 공유해야 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전시실 사이에 한일불교미술실이 생겼고, 양 옆으로 한국실과 일본실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국실은 원래 계획된 공간에 한일불교미술실 이라는 플러스 공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지도패널입니다. 미국에서 보는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불안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의 교육부서에서 한국실 지도에 남북분단을 표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실에 전시된 문화재가 조선시대까지 문화재로 분단을 표기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근거로, 하나의 한국 지도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희망은 무엇입니까? -전근대와 근현대 구분, 경쟁하는 아시아를 넘어서서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실은 미술관 설립 100년 만에 설치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한국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마련된 것입니다. 한국문화가 전근대와 근현대를 나누어서 전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19세기 이전까지의 문화를 20세기 이후와 단절시켜 과거의 전통에 대한 무의식적인 부정이 내포되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전통과 현대가 유기적으로 상호 호흡하며 전시 기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문화만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넘어섰으면 합니다. 또한 아시아문화가 지난 수천 년 간 상호작용하며 공통성을 유지하면서도 개성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관점에서 한중일문화가 정치적 갈등을 뛰어 넘어서, 상호 공존한다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참신한 관점을 우리 스스로가 구미지역에 발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실 고려청자 전시 /사진= Lisa DeJong, The Plain Dealer, 2013.6.28

↑TV 프로그램에서 상자 접기의 달인으로 소개된 김희진 위캔 직원. ⓒ이경숙 기자

선승혜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미학·미술사학)이며,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일본미술 큐레이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역임했다. 하버드대학 엔칭연구소 펠로우,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외국인 연구원을 거쳤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사, 석사, 그리고 일본 도쿄대학 미술사학 박사이다. 대표적인 저서로 The Lure of Painted Poetry: Korean and Japanese Art (2011), 일본미술의 복고풍(2008), 일본근대서양화(2008) 등이 있다.

그는 코너를 열며 유독 '행복'이라는 단어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통해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삶을 살 게 되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뜻밖의 기쁨은 우리의 매일 속에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예술을 보듬어 4가지로 나누어 글을 연재합니다. (1) '똘똘'--미술 책 속의 지혜 (2) '풋풋'--아티스트 인터뷰 (3) '반짝'--미학과 감성마케팅 (4) '방긋'--한국미의 재발견. 느끼는 만큼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함께 예술과 문화로 마음 흔들기 'heart storming' 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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