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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남미 피카소’가 들려주는 코로나시대의 애도·분노·온유

2020.12.18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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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전, 한국 최초…19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 89점

'온유의 시대' 작품 중 '온유'(Tenderness), 캔버스에 유채, 135x100cm, 1989.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처음 볼 때 작품 ‘온유’에 그려진 어머니와 아이는 앙상한 몰골이 전부였다. 볼품없고 불편했다.

다시 접했을 땐 뼈의 윤곽이 제법 잡혀 시야에 들어왔고, 그 뼈 사이로 꼭 눌러 안은 어머니의 어깨, 껴안으며 눈을 감고 아이 머리에 볼을 짓누르는 그 모습이 보는 이의 심장을 아프게 후벼 팠다. 어머니의 온기로 감싸 안긴 아이는 눈을 또렷이 뜨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입체적 표현을 강조한 ‘큐비즘’에서 이런 사실적 서정을 맛보는 건 충격이다. 따뜻하고 아프고 정감 있으면서 슬프다. ‘남미의 피카소’로 통하는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드 과야사민의 작품 얘기다.

그의 작품은 상당수가 엑스레이를 촬영해 놓은 듯하다. 겉의 포장된 아름다움을 과감히 포기하고 안으로 진격해 결국 그 감정의 끝을 보고야 마는 작가의 진정성은 어느 시대를 관통해 살든 어김없이 이어졌다.

한 편 한 편이 깊은 감정의 실타래를 안은 듯한 그의 주요 작품 89점이 국내 최초로 전시된다. 그의 모든 작품은 에콰도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해외 반출이 불가능하다. 과야사민이 남긴 유작은 회화 총 5800여점, 조각 150여점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딸이자 큐레이터인 베레니세 과야사민이 16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 최초의 특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사비나미술관이 19일부터 2021년 1월 22일까지 마련하는 이번 특별 기획전은 과야사민 탄생 100주년인 지난해부터 한국과 에콰도르 간 문화교류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됐다.

과야사민의 작품은 크게 ‘애도의 길’(1946-1951), ‘분노의 시대’(1960-1970), ‘온유의 시대’(1980-1999)로 구분한다.

‘애도의 길’ 시절 작품들은 남미인들의 문화와 전통,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표현했다. ‘채찍질’ 같은 작품은 식민지 지배 시절, 유럽 백인의 노예가 돼 고통받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묘사한다.

사회, 정치적으로 가장 격정적인 순간은 ‘분노의 시대’에 이르러서다. 이 시대에 과야사민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전쟁의 참상과 폭력을 고발하고 고뇌하는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이 시대 연작은 과야사민의 작품 중 표현력이 가장 풍부하고 내용적으로도 가장 정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노의시대'의 작품 중 '펜타곤에서의 회의I~V'(Meeting at the Pentagon I~V) 캔버스에 유채, 각 179x179cm, 1970.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대표 작품이 ‘눈물 흘리는 여인들’인데, 과야사민이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스페인 내전으로 파괴된 가정을 목격하고 상중(喪中)인 여성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대형 정사각형 캔버스에 다섯 인물이 그려진 ‘펜타곤에서의 회의’도 ‘분노의 시대’를 함축적으로 상징한다. 제국주의의 권력자들이 어떤 폭력과 광기의 얼굴로 민중을 억압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

노년기에 접어든 ‘온유의 시대’에선 저항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인간 본연의 내면에 침잠하는 경향을 띤다. 무엇보다 어머니라는 존재로 집중되고, 나아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구현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당신을 기억합니다.” 어머니와 아이 그림 스케치에 요약된 문장은 그의 어머니 사랑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오스왈도 과야사민.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16일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 큐레이터로 나선 과야사민의 딸 베레니세 과야사민(69)은 “이번 한국 전시에서 처음으로 아버지 작품이 시대별로 전시돼 메시지 전달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며 “3개 시기를 보면 ‘애도의 길’에선 흑색으로 어둡고, ‘분노의 시대’에선 시대적 암담함을 표현하기 위해 강한 색깔을 쓰다가 ‘온유의 시대’에 오면서 온화하고 따뜻한 색으로 바뀌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에 대한 일화도 꺼냈다. 7세 때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미술학교에서 선생님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문제 등으로 3번 퇴학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베레니세는 “아버지는 멕시코 벽화 문화와 피카소 같은 거장의 큐비즘에 크게 영향받았다”며 “하지만 ‘분노의 시대’ 컬렉션을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화법과 비법을 드러내며 다른 라틴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또 “아버지는 그림은 세계 공통어라고 늘 강조했고 모든 화가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20세기를 살면서 직접 경험한 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실주의라는 말보다 표현주의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분노의 시대' 작품 중 '눈물 흘리는 여인들 I~VII'(Women Crying I~VII) 캔버스에 유채, 각 145x75cm, 1963-1965.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화풍은 디에고 리베라의 사실주의와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결합하며 자신만의 예술 사조를 개척해 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이미 반세기 전에 그가 훑었던 애도와 분노, 온유의 감정과 가치가 코로나19 시대 조용하지만 절박하게 포개지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특별전 개막식은 18일 오후 4시 사비나미술관 2층 전시장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과 주한 외국 대사, 에콰도르 문화부 앙헬리카 아리아스 장관, 작가의 딸 베레니세 과야사민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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