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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그림이 약, 병도 이겼죠" 이숙자-김형대 화백의 못말리는 열정

2016.04.08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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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8일 이숙자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80년대부터 그려온' 소 그림'을 이번엔 완성하겠다며 전시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2016-04-0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서 회고전 개최
60년대 스타 작가…50년 화업 한자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화려하다. 미술관 가는길은 그림속같다. 푸른 소나무사이로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가 수를 놓았고, 하얀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뤘다. 거무튀튀 나무도 연두빛 새싹이 돋아나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웅성웅성 소란스런 새봄이 장관을 이루는 자연속에 들어앉은 미술관은 생동감이 넘친다. '한국 미술'을 구축한 두 원로작가의 식지않은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 작가 시리즈'로 펼친 두 화백의 회고전이 열린다. 미술관 2층에 한국화가 이숙자(74)화백과 서양화가 김형대(81)화백이 마주했다.

두 화백은 60년대 스타작가였다. 천경자 화백의 직계제자인 이숙자 화백은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입선 이후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대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여성 한국화가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채색화의 맥을 잇는 대표작가로 '보리밭'화가로 유명하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7일 김형대 화백이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제작한 목판화를 설명하고 있다. 2016-04-08

김형대 화백은 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앵포르멜 추상작품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을 수상한 첫 추상미술 작가다. 60년대 기성화단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출발한 벽동인의 창립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사에 추상회화를 자리매김시키며 독창적인 화풍을 창조했다.

50여년간 화업은 멈추지 않고 있다. 우울증(이숙자)과 뇌졸증(김형대)의 병마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이겨냈다. 두 화백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회고전은 살아 있는 '현재', '생의 찬미'를 보여준다. "그림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고 싶다"는 이숙자·김형대 화백은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 '초록빛 환영-이숙자' "채색화 정통성 수립…한국화에 헌신"

전시장은 첫 발길부터 붙잡는다. 툭툭 알이 불거진 실감나는 '청보리밭' 그림때문이다. '진짜 보리인가?'하며 몸을 숙이게 하는 그림은 '채색화'에 헌신해온 작가의 진심을 느낄수 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이숙자화백의 회고전 '초록빛 환영_이숙자'전에 첫번째 작품으로 걸린 '청보리밭'그림을 관람객이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2016-04-08

특히 14.5m와 9m에 달하는 '백두산'그림 두점은 압도적이다. 50세가 되던 1992년 화두였던 한국성을 구현할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업을 남기고자 백두산을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다. 1999년 직접 백두산을 등정한 후 사명감이 강해졌다. 백두산 천지를 담은 '백두산'(14.5m)를 2001년 완성했다. 이후 백두산의 성스러움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작업했던 9m 규모 '백두성산'도 다시 그려냈다. 하얀 머리의 백두산을 해와 달을 거느린 초월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몰두했다.

이 화백은 "백두성산을 그리면서 창작하는 자세가 겸허해진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네가 대작을 쉽게 생각해? 어디 한번해봐라'며 야단을 치는 것 같았어요."

우울증으로 몸무게도 10kg 이상 빠져 힘이 든 상태였지만 이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노력과 시간을 바친 그림이지요. 하늘을 우러러 할만큼 했다고 자부합니다."

서양화와 달리 '한국화'는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특히 채색화는 일본화의 영향으로 왜곡된 인식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었다. 이 화백은 '채색화'가 일본화가 아니라 우리민족 전통에 뿌리를 둔 '한국화'라는 것을 증명해왔다. 채색화를 통해 위축된 한국화를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한국화가 한국 미술의 중심에 서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화가로서의 사명'이라고 여겼다. 한국적인 색채를 담고 있는 민예품부터 보리밭, 소, 한글, 민족정기의 상징 백두산까지 작업의 소재를 끊임없이 확장시켜왔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1999년 백두산을 다녀온후 2014~2016년 완성한 '백두성산'은 가로길이만 9m가 넘는 대작이다. 2016-04-08

작품은 장기 프로젝트다. "그림만 그리다보니 30년이 언제 훌쩍 지나가버렸다"는 이 화백은 전시장에서 매일 '얼룩소'을 그리고 있다. 아침 9시에 집에서 나와 미술관에 오면 앞치마를 두르고 붓을 든다. 80년대 스케치를 해놓은 작품으로 이번 전시 끝날때까지 완성하겠다는 목표다. 붓, 물감등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고 작업하면서 그림속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이 화백은 "이 작품이 끝나면 마리 관장과 와인잔을 부딪히며 기쁨을 나누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약 50여점의 작품과 드로잉 자료 등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채색화 작가의 개인전이다. 원죄를 짓기 이전의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담고자 했던 ‘이브’시리즈 작품 10여점도 전시됐다. 7월 17일 까지.

◆'회화와 목판화'를 탐구한 김형대 화백 "추상화는 사람의 원동력"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고등학교 2학년때 서울대 미술대학에 다니던 친구(양남정)의 유화를 보며 회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미대에 가겠다'는 아들을 아버지는 반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의 집에서 그림 연습을 했고 기어이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합격했다. 나이 21세였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김형대_환원 B_162x112cm_1961_캔버스에 유채 2016-04-08

김형대 화백은 "미술공부는 뒤늦게 시작했지만 '화가는 내 운명'"이라며 "그 운명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추상회화의 세계로 들어온건 '저항의식'이 바탕이 됐다. 스물다섯 대학 3학년때 권옥연 화백의 '예술사'수강을 통해 파리 미술계의 동향과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자극을 받았다. 당시 수업은 인물화와 정물화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수업 이외의 시간을 들여 추상화 연습을 시작했다. 58학번이 주축이 되어 기획된 '벽동인'의 창립멤버로 제 1회 벽동인회전에 제안받았다. 하지만 당시 지도교수는 '재학생 교외전 금지'의 학칙을 근거로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퇴학시키세요"라며 맞대응하며 전시에 참여했다. 추상작업 '환원'시리즈중 '환원B'가 국전에서 수상하면서 '추상화가 김형대'로 부각됐다.

김 화백은 이번 전시에 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총 110여점을 선보인다. 평생 추상회화로 일관한 그의 화업은 1960년대 앵포르멜 추상을 격정적인 도전으로, 고유의 전통과 정신성을 강조한 1970년대 단색조 회화를 한국적 모더니즘의 실현으로 설명하는 한국 현대미술사와 궤를 함께하면서도 색을 탐구함으로써 독자적인 영역을 이루었다.

전시는 2000년대에 제작한 '단색조의 색면추상회화'가 눈길을 끈다. 샛노랗고, 형광의 분홍색 화폭은 물감의 층으로 이뤄진 독특한 무늬가 반복되어 있다. 마치 숫자가 흘러내리는 매트리스 화면같아 보이기도 하는 화면은 김 화백도 모르게 변신한 색이다. 칠하고 긁어내고, 칠하고 긁어내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 물감 자체가 스스로 섞여서 자연스럽게 발색이 되어 나온 '후광(後光)' 연작이다.

“한국 고유의 것을 찾아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었다. 삼원색을 바탕으로 작품의 빛이 내면으로부터 밖으로 비춰 나오는 새로운 기법으로 중첩된 색면과 두꺼운 물감으로 나타난 표면의 마티에르가 특징이다. 시간이 지나면 유연성이 없어 갈라지는 유화대신 자연스럽게 시대와 작업에 맞춰 아크릴 물감과 조개가루를 활용한 모델링 컴파운드(Modelling Compound)를 이용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한국현대추상미술의 흐름속에 독창적인 화풍을 창조한 김형대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50년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회고전을 선보인다. 2016-04-08

"추상회화는 어떤 느낌이나 감각을 인식시키는 작업"이라는 김 화백은 "우리나라에서 인정못받았지만, 내가 죽어서 30년후에서는 내 그림이 앞에서 얘기가 있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미셀라궁이 쓴 '추상회화의 모험'을 3000번을 읽었다. 옆길로 새지도 않고, 다른길로 눈길도 주지않고 평생 한 우물만 팠다. 1961년 '친구들이여 돌아오라'는 의미를 담은 '환원'작품으로 '후광'을 받은 김 화백은 "아무도 내 그림을 그릴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여전히 붓을 들고 있다.

"어렵게 보이지만 추상회화는 사람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김 화백은 "추상화는 기본적인 것"이라며 "색의 아름다움, 색의 변화, 계절이 다 담겨있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추상회화가 발전할 수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붉게 물든 단풍, 산허리를 물들인 설경과 푸른 가을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잖아요?" 전시는 7월 17일까지.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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