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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활화산처럼 살다 바람처럼 갔다" 천경자 추도식

2015.10.30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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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도 그림같았다. 흑백 사진으로 돌아온 화가 천경자(1924~2015년 8월6일)는 애수에 가득찬 검은 눈빛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담배가 끼어있다. 여성 대표화가로서 당당함과 도도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담배, 술 좋아했지…. 나랑 새벽 네 시까지 술 마시던게 생생한데, 아이구…."

이신자(84)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이 사진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지었다. "괴팍하다고? 얼마나 다정다감했는데".

30일 서울시립미술관 1층 로비에서 열린 천경자 화백 추도식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천 화백의 장남, 차녀, 사위, 며느리가 주도한 추도식에는 미술계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2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애도했다. 이제 원로가 된 직계 제자 이숙자 화백도, 얼굴에 검버섯이 핀 전뢰진 조각가도 흰 국화를 헌화하며 사진 속 천경자를 올려다봤다.

영정사진은 이은주 사진가가 유족에게 내주었다. '미인도 위작사건' 논란으로 절필한 후인 1992년 천경자의 자택에서 찍은 것이다. 사위 문범강씨가 여러 장 중 골랐다.

추도위원장인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시인 고은과 함께 인연이 되어 만나 글과 그림 이야기로 교감하던 그때가 그립다"며 "용광로같은, 활화산처럼 뜨겁게 살다가 바람처럼 가버렸다"며 아쉬움 전했다. "1991년 미인도 위작사건 논란은 천 화백의 화가로서의 생명을 잃게 한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화백이 한평생을 통해 보여준 예술에 대한 애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게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유족대표로 나선 장남 이남훈씨는 "지난 10여년 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어머님의 심정을 해결해드리지 못하고 떠나게 하여 비참한 심정으로 죄인이 돼 있다"며 "어머님의 혼백 만이라도 자식같은 작품이 있는 이곳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머님이 남긴 수많은 글 중 한 구절을 인용하고 인사를 마치겠다"며 장남은 천 화백의 1978년 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의 일부분을 읽었다.

'서울에 새 눈이 내리고, 내가 적당히 가난하고, 이 땅에 꽃이 피고, 내 마음 속에 환상이 사는 이상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삶의 연장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리 걸어갈 것이다.'

김종규 이사장은 "2024년은 천 화백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며 "그때 고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제대로 된 추모식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고인의 고향인 고흥군과 협의해 유택과 미술관 등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주순선 전남 고흥군 부군수가 참석했다.

천 화백과 인연을 맺었던 문화계 원로들은 "화려했던 생전과 달리 너무 초라하다"면서 "괴기스런 일 아니냐"며 애통해했다. 장녀 홀로 장례를 치르고 유족조차 '유골함이 어디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두달전 사망사실을 알고도 함구한 것도 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고인의 명성, 또 생존여부가 불투명해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공적인 기관장이 입을 다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녀 김정희씨는 "아직도 언니와 연락이 안 됐다"면서 "오늘은 어머니를 따뜻하게 보내드리는 날"이라며 가족 분쟁에 대한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업적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녀는 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천 화백이 흑백사진으로 내려다 본 추도식은 1시간 만에 끝났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은 천경자의 작품세계를 조명는 대규모 전시를 연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천경자 상설전시실'에 많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애도를 표할 수 있는 추모공간을 11월1일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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