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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뜨겁게 살다가 바람처럼 갔다" 故 천경자 화백 추도식

2015.10.30

[머니투데이]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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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고 천경자 화백의 추도식에는 1층 로비를 가득 메운 250여명의 추도객이 모여 명복을 빌고 헌화를 했다. /사진=김유진 기자 yoojin@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천 화백 추도식, 250여명 모여 명복 빌어.

"당신은 우리의 문화예술을 위해 뜨겁게 사시다가 바람처럼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8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한 천경자 화백이지만 가는 길은 따뜻했다.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천 화백의 추도식에는 1층 로비를 가득 메운 250여 명의 추도객이 모여 명복을 빌고 헌화했다.

추도위원장을 맡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천경자 선생님은 근대 학파를 대표하는 여류 화가로서 추앙받아왔다"며 "시간을 초월한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그림들은 글과 교류하며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1991년 미인도 위작사건 논란은 천 화백의 화가로서의 생명을 잃게 한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화백이 한평생을 통해 보여준 예술에 대한 애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게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고 천경자 화백의 추도식에 참석한 추도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 yoojin@

유가족 대표로 나선 장남 이남훈씨는 "어머니 사망 소식에 허망하고 가슴이 저려 차마 어떤 말씀도 드리기 어렵다"며 "그토록 사랑하시던 예술의 마지막 장을 활짝 펼치지 못하시고 별세의 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해 지극히 참회하는 심정"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그는 "오로지 바라는 것은 어머니께서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던 한국으로 돌아오셨으니 편히 쉬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마지막으로 천 화백의 회고록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서울에 새 눈이 내리고, 내가 적당히 가난하고, 이 땅에 꽃이 피고, 내 마음속에 환상이 사는 이상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삶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리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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