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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독일 뮌스터에서 '공공미술의 자존심' 엿보다

2017.07.03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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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장한 아이스링크 공간을 건축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생태 환경으로 탈바꿈시킨 피에르 위그의 작품. 공중에는 벌이 날아다니는가 하면 고인 웅덩이에는 물방개 같은 작은 생물들이 노닌다. 당초 이 공간에 새를 넣어놨는데, 갇힌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자 새 대신 벌로 교체했다는 후문이다. 2017.6.19/© News1 김아미 기자

[유럽 4대 그랜드 아트투어 ④·끝] 10년에 단 한번…"시대 바뀌어야 새 아이디어 생긴다"
참여작가 제레미 델러 "뮌스터는 미술의 상업주의·엘리트주의에 대한 해독제"

"10년은 좋은 '공백'(Gap)을 만들어낸다. 예술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길 수 있는 시간적 공백이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5년제'로 바뀐다면 전시가 망가질지도 모른다."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지역의 대학도시 뮌스터에서 10년에 한번씩 열리는 국제 공공미술전 '뮌스터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의 공동 큐레이터 브리타 피터스의 말이다. 독일의 5년제 국제 현대미술전 '카셀도큐멘타'와 시기를 맞춰 개최 빈도를 늘려달라는 뮌스터시의 요구를 일축한 발언이다.

1977년 이 미술전을 처음 만든 유럽의 존경받는 큐레이터 캐스퍼 쾨니히 전 쾰른 루트비히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2017년 뮌스터조각프로젝트 다섯번째 프로젝트의 공동 큐레이터를 맡은 마리안느 바그너와 브리타 피터스는 50주년을 맞은 올해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면서도 10년제라는 원칙만큼은 이 미술전의 정체성으로 지켜냈다.

샤니아 아난드, 아소크 수쿠마란 등 인도 출신 작가들로 구성된 예술가 그룹 '캠프'의 설치작업 '매트릭스'. 2차 세계대전 이후 붕괴된 옛 뮌스터 극장과 바로 옆에 새로 지어진 유리 건물의 지붕과 지붕을 전선으로 연결하고, 줄을 잡아 당기면 건너편 건물(맨 오른쪽 사진 붉은 건물)에서 실제 소녀가 나타나는 듯한 영상이 비친다. 2017.6.18/© News1 김아미 기자

현지 시간 지난 10일 개막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10월1일까지 계속될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더불어 5년제 현대미술전 '카셀도큐멘타14'와 연계한 이른바 독일 '아트투어'가 세계 각국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몸을 벗어나, 시간을 벗어나, 장소를 벗어나'(Out of Body, Out of Time, Out of Place)를 주제로 펼쳐지는 올해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는 19개국 작가 35명(팀)의 작품이 발표됐다.

그레고르 슈나이더, 토마스 쉬테, 안드레아스 분테, 히토 슈타이얼 등 참여 작가 약 25%가 독일 출신이고, 제레미 델러, 마이클 딘, 세리스 윈 에반스 등 영국 작가, 오스카 투아존, 마이클 스미스, 저스틴 매털리, 존 나이트 등 미국 작가, 피에르 위그 등 프랑스 작가가 포함됐다. 터키 출신 아이세 에르크만, 인도 출신 아티스트 그룹 '캠프'(CAMP) 등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올해에는 '캠프', 안드레아스 분테 등 디지털과의 접목을 시도한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캠프는 샤니아 아난드, 아소크 수쿠마란 등 인도 출신 작가들과 배우들로 구성된 예술가 그룹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부서진 옛 뮌스터 극장과 바로 옆에 새로 지어진 유리 건물의 지붕을 굵은 검은색 전선으로 연결한 장소특정적 설치작품 '매트릭스'(Matrix)를 선보였다.

건물 옆에 드리워진 줄을 누르면 건너 편 건물 창에서 한 소녀가 등장하는 영상이 비치는데, 마치 실제 사람이 나오는 것 같은 착시를 준다. 뮌스터 측은 "전후 모더니즘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과 현재의 관계를 묻는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안드레아스 분테의 작업은 엘베엘(LWL) 미술관 근처 건물들의 벽면에 전시됐다. '래버러터리 라이프'(Laboratory Life)라는 제목의 영상 작업인데, 포스터 형태로 붙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포스터에 있는 QR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영상 작품이 극장 등 특정한 전시 공간이 아닌 관람객의 스마트폰에 '소장'되는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 공공미술의 한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엘베엘미술관 4층에서 선보이고 있는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작품. 2017.6.19/ © News1 김아미 기자

올해 뮌스터에서 가장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품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교수이자 최근 유럽 지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N. Schmidt, Pferdegasse 19 , 48143 Münster, Deutschland'다. 엘베엘(LWL)미술관 4층에 구현한 슈나이더의 공간 작업은 한 사람씩만 관람이 허용되는 탓에 대기하는데만 1시간쯤 걸린다.

공간은 크게 4곳으로 구획됐다. 4층까지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복도, 거실, 안방, 화장실을 통과하고,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된다. 어두컴컴한 방에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방 안에는 모니터 한 대가 설치돼 있고, CCTV에 찍힌 다른 관람객의 모습이 영상으로 보인다.

방을 지나면 바로 옆 화장실에서 샤워기의 물 떨어지는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낯선 공간에 침입한 것 같은, 혹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인간의 실존'(existential state)을 묻는 작업"이라고 소개됐다.

피에르 위그의 작품. 2017.6.19/© News1 김아미 기자

피에르 위그의 작품 역시 소수의 관람객들만 입장을 시키는 탓에 오전 개장 전부터 줄을 서야 하는 인기 관람 목록 중 하나다. 뮌스터 서북부 쪽에 지난해 폐장한 아이스링크 건물을 건축적으로 해체하고 진흙투성이 바닥의 새로운 생태환경으로 구축한 이 생명공학적 조형의 주제는 '애프터 어라이프 어헤드'(After Alife Ahead)다.

건물 밖에는 '벌조심'(Warning bees)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람과 동물, 생물과 무생물,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무너뜨린 이 공간에는 벌이 날아다니는가 하면, 작게 패인 물웅덩이에는 물방개 같은 생물들이 노닌다. 작가는 당초 새를 공간에 넣었는데, 새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벌로 교체했다는 후문이다. 위그의 작업에는 약 100만유로(13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토마스 쉬테의 작품 '뉴클리어 템플'. 관람객들은 작품을 둘러싸고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작품 안으로 직접 들어가보기도 하면서 즐기는 모습이었다. 2017.6.18/ © News1 김아미 기자

뮌스터 남동쪽 볼프강보르헤르트 극장 인근 도심천에 철제 구조물을 가라앉혀 물 위를 걷게 만든 터키 작가 아이세 에르크만의 '온 워터'(On Water)나, LBS은행 인근 옛 동물원 공원 부지에 설치된 토마스 쉬테의 철조각물 '뉴클리어 템플'(Nuclear Temple)을 둘러싸고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작품 안으로 직접 들어가 즐기는 모습은 이 공공미술전이 무엇을 향해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뮌스터는 예술작품으로써의 공공미술과 시민들의 즐길거리로써의 공공미술 사이의 '간극'을 어떠한 방식으로 메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범'(典範)이라는 평가를받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뜨거운 논란이 됐던 서울역 '슈즈트리'나, '2018 평창올림픽'을 불과 일곱달 남짓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기관에서 공공미술 작품을 공모하는 국내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한편 글로벌 미술전문 매체 아트뉴스페이퍼는 예술가들이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선호하는 이유를 분석한 최근 보도에서 예술가들의 재량을 존중하는 기획자들의 태도를 꼽았다. 올해 참여작가인 제레미 델러의 인터뷰를 통해 뮌스터가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주제를 향해 제한을 두지 않으며, 오로지 뮌스터 안에서만 가능한 장소특정적 예술을 추구함을 강조했다.

델러는 2007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10년 동안 '지구에게 말하라, 그러면 지구가 너에게 말할 것이다'(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라는 주제로 환경과 기후에 대한 장기간 작업을 이어 온 작가다.

"뮌스터에는 이탈리아 베니스의 '팔라조'(Palazzo·궁)들을 잠식한 상업적인 갤러리 전시가 없습니다. '시간을 존중하는' 쾨니히의 뮌스터조각 시리즈는 베니스(상업주의)를 비롯한 미술의 모든 '엘리트주의'에 대한 '해독제'(antidote)이기도 합니다. 특히 뮌스터에는 요트가 없다는 것, 그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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