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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아트1 아티스타-46]종이로 완성한 정교한 풍경…한국화가 이주희

2021.06.21

[뉴시스]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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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낯선 전에봤던 익숙한, 이주희, 2020, 종이에 먹, 분채, 70x180㎝ (사진=아트1 제공) 2021.06.15. [email protected]

무성한 이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은은하게 퍼지는 나무 향기. 이주희 작가(36)의 나무는 서정적인 분위기로 감상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작품이 주는 편안함과 달리 작업 과정은 쉽지 않다. 스텐실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 시간이 두배 이상으로 소요된다.

먼저 나무의 가지와 이파리까지 완벽하게 밑그림을 그린다. 이를 다시 반투명한 트레싱지에 옮기는데, 여기에 포스트잇을 부착한 후 칼로 오려내면 채색을 위한 밑바탕이 만들어진다.

포스트잇은 마스킹 테이프 역할을 한다. 여러 번의 채색 과정에서 물감이 번지거나 스며드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작가의 완벽주의적인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뭇잎의 세세한 부분까지 오려내다 보니 이 작업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작가는 오히려 이 과정을 하나의 수행처럼 여긴다.

[서울=뉴시스] 이주희 작가 작업 과정 (사진=아트1 제공) 2021.06.15. [email protected]

"예리한 칼날 끝을 통해 그날의 풍경, 분위기, 모습들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 오려내는 과정은 내면의 여러 감정을 입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하는 유용한 수단이에요. 힘이 들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변형하거나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해내고 싶었어요."

채색 과정에는 먹과 분채가 사용된다. 포스트잇이 부착된 종이 위에 여러 번의 채색을 거치면 점차 나무 형상이 드러난다.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분채를 미리 뽑아두는 그는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이를 반복한다. 모든 작업이 완료되면 마스킹 테이프를 제거하는데, 작가는 “채색을 마친 후 포스트잇을 떼어내는 과정은 떨림 그 자체”라며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긴 작업시간은 작품에 깊이를 더했다. 노동집약적 과정을 거쳐 작가와 혼연일체 된 나무는 아름다운 풍경을 정교하게 보여주며 화면을 풍성하게 채웠다.

나무 그림은 내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삶에 대한 고민과 회의가 넘쳐났을 때 스스로를 먼저 다독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나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꼭 제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어요."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를 본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는 가지에 흠집이 생기면 수액을 만들어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는데, 묵묵히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성장하는 나무를 본 그는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과 품어준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했다.

가을 낙엽처럼 빛바랜 색에는 그가 나무에서 느낀 순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떻게 하면 그날 받았던 위로를 색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작업을 시작해요. 작품마다 색감이 다른 이유입니다.”

[서울=뉴시스] 코모레비, 이주희, paper cutting series, 2018, 설치 (사진=아트1 제공) 2021.06.15. [email protected]

종이를 이용한 평면작업은 자연스럽게 설치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얇은 종이를 나뭇잎 모양으로 오려내 길게 늘어뜨린 ‘코모레비’ 페이퍼 커팅 시리즈는 작가에게 도전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코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의미하는 일본어에요. 햇빛이 나뭇가지와 나뭇잎마저 뚫고 내릴 때가 있잖아요. 바닥에 내려앉은 코모레비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흔들 움직이더라고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나뭇잎을 뚫고 내려오는 빛을 작업에 담기 위해 자연광이 있는 전시 공간도 섭외했다. 종이와 칼을 사용한다는 점은 기존 작업과 동일했지만, 온습도에 민감한 종이의 특성상 설치가 완료될 때까지 그 결과를 가늠할 수 없었다. 반복된 칼질은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기도 했는데, 운동과 치료를 병행하며 완성한 설치 작업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설치 작업은 처음이었고,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관객분들도 좋아해 주시고, 인상적이라고 해주시니 그동안의 과정이 보상받는 것 같네요."

하루도 쉬지 않고 작업실로 가서 작업을 하는 그는 스스로를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저는 제 자신에게 좀 엄격한 편이에요. 작업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날은 하루가 엉망이 되는 기분이죠. 늦잠이라도 잘까 겁나는 날에는 앉아서 자기도 해요.”

꾸준한 노력은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온라인 작가 발굴 프로그램 ‘2021 아티커버리’에서 TOP 1 작가로 선정되며, 대중과 전문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0년만 버티라고 하잖아요. 선배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그동안 버티며 작업해왔던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정말 제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눈에 선명해지고 있어요."

개인전 준비로 한참 분주한 그는 앞으로도 스스로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작업을 하고 싶다며,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평가하고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의 삶 하나만 두고 거기서 묵직하게, 은은하게 서있는 나무처럼요."

■아트1 성유미 큐레이터

[서울=뉴시스] 이주희 작가 (사진=아트1 제공) 2021.06.15. [email protected]

▲이주희는 동의대학교 미술학부에서 한국화 전공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 졸업했다. 레이어드 갤러리, 춘자아트갤러리, 갤러리토스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영은미술관, 맥화랑, 아트소향에서 작품이 소개되었다. 2021 아티커버리 TOP 1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온라인 아트플랫폼 아트1(http://art1.com)의 신규 플랫폼 작가로 작품은 ‘아트1 온라인 마켓’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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