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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뉴시스 인터뷰]조폭사진 양승우, 광주사진 백승우···‘나쁜 새로운 날들’

2018.12.14

[뉴시스]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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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페이스 22에서 열린 개관 5주년 기념전 ‘나쁜 새로운 날들 :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개막식에서 자신의 '청춘길일' 작업 앞에 선 양승우(위)와 전남일보에 실린 '기억법' 앞에 선 백승우(아래). [email protected]

서울 역삼동 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 개관 5주년 기념 특별전 ‘나쁜 새로운 날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가 12일 개막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사진가 양승우(52)의 ‘청춘길일’과 백승우(45)의 ‘기억법’ 사진들이 각각 다른 전시 형태로 펼쳐져 있다.

지극히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양승우, 관객 각자의 해석을 유도하는 백승우의 사진, 달라도 너무 다른 사진들이다. 한 공간에 전시한 이들의 사진은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기억’을 이야기 한다. 화법이 다를뿐이다. 양승우는 개인적 기억을 작업으로 이끌어 냈고, 백승우는 사회적 기억을 개인화했다.

양승우 '청춘길일'

양승우의 ‘청춘길일’은 작가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조직폭력배’를 찍은 사진들이다. 몸을 휘감은 용 문신을 한 남성, 가득 쌓인 돈다발, 피사체의 겉모습은 보는이를 움찔하게 만든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무장해제’ 상태다. 대체 어찌 찍었을까 궁금해지는 ‘조폭의 일상’이다.

그는 ‘기억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의 죽음이 계기다. 사진 한 장 남겨놓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친구가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 너무 슬퍼 시작했다고 한다. 두 달간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나도 죽으면 이렇게 잊혀지겠구나 싶어 시작한 작업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양승우 '청춘길일'

중요한 것은 ‘조폭’을 찍은 게 아니라 ‘친구’를 찍었다는 점이다. 친구들과의 시간들을 ‘청춘’의 ‘베스트 데이스’라고 말한다. 청춘길일의 영어제명 또한 ‘Best Days’다.

우리나라에서의 작업은 그의 중고교 친구들 중 조폭이 된 이들의 일상이다. 일본에서의 작업은 1998년부터 일본공예대학대학원 예술학연구과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마주한 ‘야쿠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야쿠자를 마주했을 때는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다. 그날 집에 가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다음날 ‘한대 맞더라도 꼭 찍고 와야지’하곤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니 다섯명의 야쿠자들은 흔쾌히 ‘찍어도 된다’고 했다. 바로 암실에서 현상을 해 그들에게 사진을 전달했다. ‘컬러사진’ 시대에 그의 ‘흑백사진’은 야쿠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맘에 든다며 우리 사무실로 놀러가자, 다른 동료도 많이 있다는 야쿠자들의 손에 이끌려 지금까지 그들에게 허락된 사진가가 됐다. 여전히 사진을 찍으면 그들에게 현상해 가져다준다. 적나라한 사진집을 내도, 전시를 해도 언제나 ‘오케이’다.

그의 사진을 보면 손가락이 잘린 조폭들이 많다. 잘린 손가락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물으니 “병에 포르말린을 넣고 담가 놓는다”고 그들은 답했다. 이것도 사진으로 기록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양승우 작가의 '청춘길일'이 전시돼 있다. [email protected]

위험하거나 겁이 나지는 않을까. 위험한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 작업을 할 때 신주쿠 거리에서 박스를 깔고 잠을 자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렇게 작업하는 그에게 “너 여기서 뭣하느냐. 밥은 먹었느냐. 밥 사줄게 가자”며 그를 챙겼다고 한다. 서로에게 친구였고 그는 친구를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 작업이 됐다.

가을 겨울에는 찻잎을 따거나 귤을 수확하고 막노동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말레이시아와 아프리카 콩고 등지에서 유전을 찾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콩고에서 유전을 찾던 중 계약에 문제가 생겨 1주간 감금당하기도 했다. 작가는 “가둬놨어도 밥은 다 줬다”며 웃었다.

백승우 '기억법'

백승우는 영국 미들섹스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이론을 전공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창문을 타고 넘고, 건물을 집어삼킨 초록빛 나무줄기, 또 다른 사진의 중앙,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은 언뜻 봐도 전혀 따뜻하지 않다. ‘기억법’이라고 제목을 붙인 그의 사진 속 공간은 30년 전 폐쇄된 전남 광주 옛 국군병원이다.

백승우 '기억법'

촬영 장소에서 “음침함을 느꼈다”고 한다. ‘예민해지는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공간이 주는 불안정, 불안이 컸다. 누구도 없을 것만 같은 그곳에서 길 잃은 등산객이나 촬영하는 다른 사진가를 갑작스레 만나 놀라기도 했다.

백승우의 ‘기억법’ 시리즈는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건물을 기록하고 자료화한 62점의 사진이다. 지난 8월27일부터 11월9일까지 75일간 전남일보 지면에 실었다. 그의 사진에서 38년 전 그날은 당연히 볼 수 없다. 단지 당시 기억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작업이라고 한다.

“사진이라는 본질적 역할이 사진을 봄으로 인해서 기억들이 다시 올라오는 거잖아요. 사진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인 기록하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제 기준점을 만드는 거죠. 그게 제 작업입니다.”

그는 이번 작업에 대해 “이미 30년 전 폐쇄된 공간을 찍어서 그것들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의미를 지금의 시점으로 돌리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신문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매일 한 장의 사진을 신문 전면에 게재하면 신문을 보는 독자들이 각자 해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백승우 작가의 '기억법'. 전남일보에 실렸던 자신의 사진 위에 광주국군병원 모은 유리조각을 녹여 씌운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email protected]

전시장에는 그의 사진이 실린 신문이 나무 판에 전시돼 있다. 신문에는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이 없다. 병원의 깨진 유리조각을 작가가 녹여서 사진 위에 씌운 설치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사진의 가장 큰 힘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치에 맞는 나름의 해석”이라고 한다.

“기억은 망각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사실이라도 어떤 의미를 생산하느냐에 따라 망각이 아닌 기억과 역사가 된다”는 백 작가는 ‘사진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저항하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반복적으로 어떤 의미를 정박시키는 아카이브’라고 규정한다.

양승우의 ‘날것’과 백승우의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사진자료’간에는 온도차가 분명하다. 양승우의 사진은 뜨겁고, 백승우의 사진은 차갑고 차분하다. 하지만 이 두 사진가의 사진은 모두 ‘기억의 이미지로서의 사진은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다. 전시는 ‘승우’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을 통해 사진의 두 가지 길을 조명한다.

양승우는 2005년 ‘일본 데이즈 재팬’이 주관하는 다큐멘터리상과 2017년 일본 최고 권위의 상인 마이니치 신문사 제36회 도몬켄 사진상 등, 백승우는 일우재단의 2009년 제1회 일우사진상,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선정하는 2016년 올해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전시 제목은 벤야민과 브레히트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고 쓴 미국 미술비평가 할 포스터의 책 ‘나쁜 새로운 날들(Bad New Days)’에서 차용했다.

전시장 한편에는 그들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지켜볼 수 있다. 1월5일까지 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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