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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rief민족시인 이상화와 예술인의 이야기 품은 병풍 대구시 기증

2020.12.02

[뉴시스] 정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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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대구 중구 이상화 고택 전경. 뉴시스DB. 2020.12.01. photo@newsis.com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하던 민족시인 이상화와 함께 대구를 중심으로 교류하던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품은 병풍 한 점이 대구시에 기증된다.

1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시에 기증되는 병풍은 ‘금강산 구곡담 시’를 담은 10폭 병풍으로 죽농 서동균(1903-1978년)이 행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병풍의 마지막 폭에는 1932년 죽농 서동균이 글씨를 쓰고 시인 이상화(1901-1943년)가 포해 김정규(대구 출신, 1899-1974년)에게 선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서화 작품 가운데 이처럼 제작 연도와 얽힌 사연이 뚜렷하게 기록된 것은 드문 사례라는 것이 대구시의 설명이다.

병풍 공개 행사는 오는 3일 오전 10시 30분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며,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과 기증자 김종해(포해 김정규의 세째 아들), 이원호(이상화기념관 관장), 대구미술관장 등이 참석한다.

김종해 씨는 생전에 선친이 소중하게 여겼던 이 병풍을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직접 대구시로 연락했고,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이 즉각 작품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기증 절차를 밟았다.

이상화는 근대기 민족시인이고, 죽농 서동균 또한 잘 알려진 근현대기에 걸쳐 활동한 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수묵화가이다.

포해 김정규는 합천 초계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1924년 대구노동공제회 집행위원이었다. 일본에 유학해 주오(中央)대학, 메이지(明治)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신간회 활동도 한 민족지사다.

1932년 이 병풍이 제작될 당시 서동균은 30세, 이상화는 32세, 김정규는 34세의 청년으로 각각 두 살씩 차이 나는 또래였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던 대구의 젊은 엘리트였으나 이들이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었다.

이상화는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로 있으며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사건에 연루돼 대구 경찰서에 구금됐고, 활동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김정규는 1920년대 항일운동으로 2년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고 신간회 활동에도 관여했다.

김종해 씨는 “1974년 선친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집에서 소중히 보관해오다가 상화 시인의 고향인 대구가 이 작품을 보관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화연구자 이인숙 박사(경북대 외래교수)는 “이 병풍은 이상화의 국토에 대한 생각, 교유 관계, 문화 활동을 알려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근대기 대구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채홍호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이 병풍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면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증을 계기로 근대기 예술가들의 교류, 독립운동 관련 연구가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jc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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