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개요
학고재는 2021년 7월 28일(수)부터 8월 29일(일)까지 최수앙(b. 1975) 개인전 《Unfold》를 연다. 학고재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화되어 일상에 대해 재고할 기회가 많아진 요즘, 일상과 같던 작업 습관과 거리를 두어 변화를 시도한 중견 작가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쉬지 않고 작업 활동을 지속해온 최수앙은 2019년 봉산문화회관(대구)에서의 개인전 《몸을 벗은 사물들》 이후로 2년간의 공백 기간을 가졌다. 그간의 내적 여정을 학고재 본관에 20점의 작품으로 풀어놓는다
최수앙은 변형되거나 해체된 인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입체 작업을 주로 해왔다. 온전한 개인의 삶과 견고한 집단의 규범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서사들을 이러한 형상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양상의 작품을 평면,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인다. 지식과 실재 사이의 틈에 대해 얘기한다. 재현의 껍질을 걷어내어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관통할 전시다. 맹지영 독립큐레이터가 이번 전시의 서문을 썼다.
- 전시 주제
조각적 습관에서 벗어나 아직 만들지 않은 형상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기
2018년 여름, 최수앙은 외과 수술을 받았다. 오랫동안 작업에 임했던 양손에 과부하가 걸린 탓이다. 수술 후 재활 기간을 통해 최수앙은 그의 기존 작업 방식을 재고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기적인 물질들을 견디며 소진한 시간 동안 나의 몸에 배인 조각 행위의 습관은 제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몸에 남겨진 익숙함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재현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주체를 지워내는 일이다. 견고한 표피로서 닫힌 것을 열고, 새로운 사유가 개입할 여지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 《Unfold》에서 “조각가는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드러내어 그곳의 안내자가 된다. ” '방식’이라는 새로운 피부가 자라지 않은 발을 관객과 함께 내딛는다.
지식과 실재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이성적 서사
최수앙은 자신의 조각적 습관들이 “‘몸의 지식’으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는 ‘에코르셰(Écorché)’에 주목했다. 에코르셰는 피부가 없는 상태로 근육이 노출되어 있는 인체나 동물의 그림이나 모형을 말한다. 16세기부터 미술가들의 작업실에 구비되어, 미술 해부학 교육에 사용했다. 조소를 전공한 최수앙이 기초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된 만큼, 모든 에코르셰의 정보가 사실은 아니었다. 지식의 기초가 되었던 것들이 허구로서 실재했다. 그리고 이 에코르셰는 최수앙에게 더 나은 재현을 위한 것이 아닌, ‘빈틈’을 지닌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풀어온 “감정의 서사”와 거리를 둔 그의 어조는 자못 이성적이다. 공감을 부르기보다는 그가 시작한 퍼즐의 조각 맞춤에 동참하기를 제안하는 듯하다. 조립하면 완성될 것 같은 전개도는 온전하지 않은 도형을 가리킨다. 우리 몸의 구조를 나타낸 것만 같은 인체 표본은 허구다.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색은 구분을 위함일 뿐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그가 제시한 단서들이 이끄는 곳으로 가다 보면, 어느새 지식과 실재의 틈을 넘나드는 서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