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 개요
학고재는 2021년 5월 14일(금)부터 6월 13일(일)까지 채림(b. 1963, 서울) 개인전 《옻, 삶의 한가운데》를 연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전통을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다. 채림은 옻칠에 기반한 조형적 실험을 전개한다. 보석 세공 장인들과 협업하여 순금, 순은, 도금, 도은, 진주, 자개, 보석 등 여러 귀금속을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단순한 기술 간 결합을 넘어 전통과 현대를 잇는 화폭이 구성된다.
채림은 2000년 보석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12월 학고재에서 연 개인전을 기점으로, 현대미술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지〉, 〈삶의 한가운데〉 등 새로운 연작을 선보인다. 옻칠의 한 기법인 ‘지태칠(紙胎漆)’을 변형한 표현 방식을 볼 수 있다. 채림의 작업은 전통 기법에서 출발하지만, 이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 전시를 통하여 그 과정과 결과물을 다채롭게 살펴볼 수 있다.
2. 전시 주제
전통 안에서 동시대의 자유로움을 찾다
동시대 미술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새로움’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곧 옛 것이 되기 마련이다. 세상은 쉽게 무뎌진다. 채림은 이 무뎌짐 속에서 또 다른 자극을 찾기보다는 기존의 것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기를 제안한다. 옻칠은 예전부터 우리의 삶에 녹아있던 전통 기법이다. 하지만 합성수지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공예의 한 분야로서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채림은 이러한 옻칠 안에서 동시대성을 찾는다.
채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로운 도전과 실험”이다. 온도와 습도에 변화를 주어 옻의 다양한 질감 표현을 발견한다. 농담을 조절하여 그에 맞는 표현 방식을 찾는다. 옻칠이 때로는 파스텔, 혹은 수채화, 때로는 유화처럼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옻의 윤기가 새 기법 안에서 또 다른 빛을 띤다. 재료의 점성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 점묘법을 구사할 때도 있다. 옻칠의 특성을 극복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한다. 까다롭고 복잡한 옻칠 기법을 재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채림의 시도는 아직도 많은 다양성과 실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랜 전통의 견고한 규칙 안에서 표현의 자유로움을 찾는다. 이 과정이 고스란히 화폭에 담긴다.
삶의 한가운데, 조용한 울림
옻칠은 “피어난다”. 처음에는 어두웠던 색상이 점차 밝아지면서 스스로의 빛을 발한다. 채림은 이러한 옻칠의 변화에서 삶의 치유와 회복을 본다. 다양한 색이 복잡하게 얽혀 어우러질 것 같지 않지만, 결국에는 저마다의 색을 환하게 드러내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작업은 채림에게 내면과의 만남이 된다. 여행을 하거나, 일상 속에서 봤던 기억 속 풍경들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옻칠, 한지, 삼베, 자개 등 자연적인 소재가 이런 풍경들을 서정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작품은 완성형으로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무의식 속 익숙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친숙한 향수(鄕愁)는 관객에게 말을 건다. 과거로부터 비롯되었을 이 목소리는 삶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현재 진행형의 조용한 울림이다.